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지난해 가계의 교육비 지출액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보다 높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소득 수준별로 순서를 세웠을 때 가장 ‘중간 계층’에 해당하는 가구에서 교육비 지출 증가 폭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을 ‘카르텔’로 규정해 곳곳에 메스를 들이댔던 정부의 백약이 무효했단 평가가 나온다.
1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3년 전국 가구의 교육비 지출(명목)은 월평균 21만1632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6% 상승한 것보다 더 높은 증가세를 기록한 것이다.
◇ 자녀 있는 가구, 중간 소득일수록 교육비 ‘급증’
조사 결과를 보면, 자녀 수에 따라 교육비 지출액과 증가 폭은 큰 차이가 났다. 미혼 자녀가 1명 포함된 가구의 교육비는 월평균 25만9822원으로 전년 대비 8.5% 증가했고, 2명 이상인 가구는 71만7550원으로 10.8%나 늘어났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민생 악화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관련 지출액을 물가 상승률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데 당장 평균 결괏값부터 목표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면면을 따져보면 소득이 중간 수준인 가구의 교육비 지출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5분위별 가계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월 소득 상위 40~60%로 중간층에 해당하는 3분위 가구는 교육비로 월 14만9345원을 지출했다. 전년 대비 14.2%나 증가한 수치다.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가구는 전년 대비 7.1% 증가한 월 53만8180만원을 교육비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적인 금액은 3분위보다 훨씬 많지만 증가율은 낮았다. 반면 하위 20~40%에 해당하는 2분위 가구는 15.7% 줄어든 5만9993원을 썼다. 1·4분위는 1%대 증감률을 기록해 지출액 지난해와 유사했다.
◇ 올해도 교육 물가는↑… “정부 사교육 대책 무색”
올해 들어서도 교육비 물가는 지속해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교육 분야 소비자 물가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1월 1.7%, 2월 1.6% 등이다. 유치원 및 초등교육 물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고등교육과 기타 교육 항목에서의 상승세가 더 강하다.
이런 문제를 의식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6일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학원비의 경우 지자체별 교습비 조정 기준을 위반할 경우 과태료 부과 등 엄정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간 교육비 지출액이 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게 튀어 오른 데다 ‘경제적 보통 사람’의 교육비 부담은 되레 늘어난 양상을 두고, 지난해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쏟아냈던 정부 정책이 무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교육당국은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경찰 등을 동원해 대형 입시 학원과 ‘일타 강사’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또 수능 ‘킬러문항’ 배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영어유치원’ 편법 운영 단속, ‘초등 의대 입시반’ 실태 점검, 늘봄학교 확대 등을 사교육 경감 종합 대책으로 내놓은 바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 지출은 기본적으로 가계의 의사결정”이라면서 “킬러문항을 없애는 등 정부가 아무리 각종 대책을 내놔도 명문대나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 기대 수익은 여전하다. 사교육이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구조로 탈바꿈하지 않는 이상 사교육비를 줄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소득 중간 계층의 교육비 급증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상위 계층은 교육에 많이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밑에 위치한 중간층이 이를 따라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출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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