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임의제출된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휴대전화가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제기 뒤 새로 개통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 대사 출국으로 인한 수사차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공수처는 이날 이례적으로 “추가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 대사를 공개 압박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조사 당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추가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소환조사가 원칙’이라는 수사팀 입장은 확고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물리적 거리는 있지만 외교관 신분으로서도 국내로 들어오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소환조사가)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언제라도 출석일자를 조율해 이 대사 조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이 대사는 다음달 예정인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보통 매년 3월 열리지만 올해는 총선 이후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가 이 대사 수사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가 수사 외압 의혹의 시작점이자, 윤 대통령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 대사는 지난해 7월30일 채상병 순직사건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직접 결재했다가 윤 대통령이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 혐의 특정 사실에 격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돌연 언론 브리핑을 취소시키는 등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 1월 이 대사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국방부 검찰단 등이 압수수색 대상이 됐는데, 이들은 ‘혐의를 특정하지 말라’, ‘수사의뢰 대상을 줄여라’ 등의 지침을 수사부서에 전달한 장본인들이다. 이 대사의 ‘직권남용’ 행위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한 주 사이 이 대사의 주호주 대사 임명(4일)부터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8일), 출국(10일)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지면서 이 대사 포함 이들 수사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 연루 의혹 관련 수사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에 이 대사의 지시 번복의 배경에 윤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고, 공수처도 이 의혹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등 이 대사 ‘윗선’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대사 등 관련자들 대면조사 등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그의 출국이 부담되는 상황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여러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한 차질 없도록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정혜민 기자 /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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