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추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들이 약 두 달여 만에 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자신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해 경찰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해명을 거부했다. 야권 추천 위원들이 해촉되기 전 안건으로 올렸던 민원사주 진상규명 안건들 역시 자동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열린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업무에 복귀한 김유진 위원이 류희림 위원장 가족, 지인 등을 동원해 방심위에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에 대해 당사자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자 류 위원장은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권익위 조사, 방심위 자체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라며 “다 마무리되고 난 뒤에 입장을 밝히는 게 맞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이 부분 더 이상 회의석상에서 얘기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간의 방심위 심의가 정치심의라는 야권 추천 위원들의 비판에 대해서도 류 위원장은 “규정과 법에 따라 정당하게 심의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대통령 풍자영상을 차단했다고 하는데 경찰이 요청한 22개의 영상 가운데 하나만 ‘가상’이라는 제목이 붙었다”며 “누가봐도 진짜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허위조작 영상인데 이게 풍자영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심의는 지난 1월 방심위 운영의 부당함을 비판하며 ‘심의 보이콧’하던 윤성옥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과 위원장 민원사주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해촉됐던 김유진 위원(문재인 대통령 추천)이 법원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해 참석했다. 김 위원과 마찬가지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위원장에 욕설한 옥시찬 전 위원은 가처분이 기각됐다.
지난 1월3일 야권 추천 위원 3인(김유진·옥시찬·윤성옥)이 임시 전체회의를 소집하며 상정했던 민원사주 의혹 관련 안건들은 자동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회의는 여권 추천 위원 전원이 회의 3시간 전 전원 불참하며 정족수 미달로 취소됐고 이후 1월8일 회의에서 야권 추천 위원들이 재논의하려 하였으나 류희림 위원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정회된 채로 회의가 종료돼 논의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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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사무처는 “정회되고 나서 따로 입법례를 찾아보니 찾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국회법, 방통위 설치법 등 모두 (입법례가) 없었다”면서도 “일부 지방의회 규칙을 봤더니 정회 후 자정을 넘겨도 속개가 되지 않는다면 회의가 산회되는 것으로 봤다.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유사한 판례가 있어 그런 식으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즉 기존 안건은 폐기됐으니 다시 상정하기 위해선 위원들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상정하려면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나머지 야권 추천 위원을 임명하지 않고 있어 안건 상정을 위한 위원 수가 1명 부족하다. 전체 위원 8명 중 3명이 동의해야 하지만 야권 추천 위원은 2인(김유진·윤성옥)뿐이다.
김유진 위원은 “(의혹 관련 안건이) 왜 폐기가 되는지에 대해 명확한 법적 근거를 제시하셔야 한다”며 “현재 위원회 구성상 야권 추천 위원이 저와 윤성옥 위원밖에 없기 때문에 다시 제의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태도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진심으로 이 의혹에 대해 당당하시다면 다음 전체회의에서라도 상정하시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성옥 위원은 “위원장 본인이 퇴장해서 안건을 논의하지 못하지 않았나. 이건 당시 3명 야권 추천 위원이 공식 제의한 것이니 위원장 직권으로라도 안건 다시 상정해서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고 김 위원은 “앞으로 항상 위원장이 회의 중단하고 퇴장하면 우리는 그 안건을 다시 논의 못한다는 말인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류희림 위원장은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질문 삼가달라”고 반박했다. 이후 김유진 위원이 “위원장님 제기된 의혹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뭉개시는 데 제가 다 부끄럽다”고 하자 류 위원장은 “그 부분(민원사주 의혹)에 대해선 이 자리에서 언급 안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김유진 위원의 해촉이 부당하다며 가처분을 인용한 결정문에서 법원은 △청부민원 의혹이 언론의 취재 결과에 기초한 것이라 단순한 의혹 제기라고 보이지 않고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에 해당하며 △위원장이 심의를 회피하지 않고 참여한 것이 방심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고 △김 위원의 진상규명 요구가 공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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