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피로도 누적·병원 경영 악화…공보의 차출 실효성 의문
텅 빈 의대 교실, 교수들도 사직서 압박…곳곳서 호소문·성명
(전국종합=연합뉴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3주째 접어든 11일 현장을 지키고 있는 전국 병원 의료 인력의 피로도가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하자 급기야 군의관과 공보의까지 의료 현장에 투입돼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공보의에게 진료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료취약지역에서는 이들의 부재로 인해 또 다른 의료 공백이 나타날 조짐을 보여 ‘언 발에 오줌 누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 전공의 복귀 지지부진…전국 병원 의료진 부재로 ‘신음’
정부의 면허 정지 사전통지서 발송에도 불구하고 진료 현장에 돌아온 전공의 인원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병동 축소, 통폐합 조치를 하는 한편 특정 과에 대해서는 응급실 진료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공지를 올렸다.
대전지역 5개 주요 대학·종합병원에 사직서를 낸 전공의 가운데 복귀자는 없다.
각 병원이 병상 가동률을 평소의 50∼60% 수준으로 줄이고, 일부 병동을 폐쇄하는 등 비상 진료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파행 운영은 지속되고 있다.
을지대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재로 피부과·정형외과·정신과·이비인후과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대전성모병원 응급실에서는 성형외과·소아과 진료가 불가능하고, 안과 응급 수술도 어렵다.
상급병원인 건양대병원 응급실도 성형외과·피부과 진료를 보지 않으며, 충남대병원도 응급실 내 중환자실이 ‘풀베드’ 상태여서 중환자 수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대구 지역 수련병원에서도 응급실 진료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영남대병원 응급실은 외과 의료진 부재로 추적관찰 외 관련 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며 치과, 피부과, 신경과도 진료가 제한되고 있다.
칠곡경북대병원은 종합상황판에 ‘원내 사정으로 이송 및 전원 환자 필히 사전 연락 후 이송’이라는 안내문을 띄었으며 대구파티마병원은 신경외과 의료진이 없어 진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충북 유일한 상급 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에서도 전체 의사(332명)의 절반 가까운 전공의(151명)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의료공백이 지속되고 있다.
입원 병상 가동률은 70%대에서 40%대로 떨어졌으며 응급실과 도내 유일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선 이탈한 전공의 자리를 남은 의료진들이 3일 걸러 하루씩 당직을 서가며 메우고 있다.
야간 응급실 안과 진료는 불가한 상태고 정형외과는 전공의 부재로 수술을 진행할 수 없어 해당과 전문의가 다른 병원에 진료 의뢰서를 쓰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강원 9개 수련병원 전공의 390명 중 360명(92.3%)이 사직서를 낸 가운데 복귀 인원은 10여명대에 그치고, 전공의 206명 대다수가 병원을 이탈한 전북대병원도 21개의 수술실을 평소보다 30∼50%만 가동했다.
의료 인력의 피로도뿐만 아니라 사태 장기화에 따른 병원의 재정적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전공의 126명 중 80~90%가 현장을 이탈한 울산대병원의 경우 진료·수술 건수가 급감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지난 8일부터 비상 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전남대병원의 경우 전공의 이탈 사태 기간 수백억대 적자를 본 것으로 추산하는데, 적자 비용을 병원 운영비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대병원 특성상 적립한 운영비가 얼마 되지 않아 전공의 이탈사태 장기화면 심각한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영악화로 임금체불까지 우려해야 할 상황에 놓이자 지자체에서 재난관리기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강원도는 4개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당직 수당 명목 2억원, 총 8억원을 지원했다.
◇ 공보의 차출로 의료취약지 업무 차질 우려…장기화 시 또 다른 의료공백
의료 파행이 지속되자 보건복지부는 중증·응급 환자의 수술과 진료 지연 등 현장 부담을 덜기 위해 이날부터 4주간 병원 20곳에 군의관 20명, 공중보건의사 138명 등 총 158명을 투입했다.
이들은 각 병원에서 내일까지 교육받고 오는 13일부터 진료에 본격 투입된다.
경기도에 따르면 이날부터 도내에서 근무하던 공보의 12명이 서울과 경기 지역의 주요 수련병원에 투입됐다.
이 가운데 경기 지역에 배치된 공보의는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5명, 고양시 국립암센터 3명 등 총 8명이다.
파견된 도내 공보의 가운데 나머지 4명은 서울의 주요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근무한다.
대구시의 경우 이날 공보의 14명 중 5명을 1차로 파견 보낸 가운데, 전문의 1명은 서울 긴급대응 응급의료상황실로, 인턴 4명은 경북대병원으로 향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공보의들이 상급 병원으로 파견되면서 보건의료원과 보건소 의존도가 높은 의료취약지에서는 업무 차질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논산시보건소에서는 이날부터 마취통증의학과 등에서 2명이 국립암센터와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차출돼, 남은 8명의 인력으로 시 보건소와 13개 보건지소 진료업무를 이어가야 할 상황이다.
논산시보건소 관계자는 “남은 의료진이 공백 의료진의 업무를 대신하거나 1명당 보건지소 2개씩 담당해야 할 듯 해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치된 인원도 적지 않아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지역 사회에는 또 다른 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파견의 대부분이 진료·수술이 대폭 축소된 진료과 전문의로, 실제로 큰 도움은 안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공의 200여명이 3주째 이탈 중인 전남대병원의 경우 본·분원에 추가로 의사 인력이 수혈되는 의미는 있지만, 정착 필요한 필수의료과 지원 인력은 소수에 그쳐 공백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남대병원 본원의 경우 전공의 이탈사태 후 응급·중증 환자 수술·입원만 진행하고 있어 최근 성형외과와 비뇨기과 입원실은 아예 폐쇄했다.
성형외과 등은 응급 수술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입원실이 거의 비게 돼 해당 과의 간호사 등 의료진은 다른 바쁜 필수과에 재배치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혈된 공보의·군의관 절반이 성형외과 소속이어서 병원 측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 여전히 텅 빈 의대 교실…교수들도 집단사직 움직임
병원뿐만 아니라 한창 활기가 가득할 대학 캠퍼스 역시 여전히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학생들은 교실 대신 거리에 나와 정부와 학교 측의 의대 정원 확대 지침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교수들도 집단사직 움직임을 보이며 불씨를 지피고 있다.
부산대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와 의대생 등 70여명은 이날 부산대 양산캠퍼스에서 의대 정원 확대 지침과 관련해 정부, 국민을 상대로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2천명 의과대학 증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한 것은 이미 밝혀졌다”며 “10년 이후에나 효과가 나타날 정책을 밀어붙이고 국민을 상대로 실험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했다.
이어 “수도권에 6천600병상이 증가하는 시점에 정부는 당장 시급한 문제인 지역 필수 의료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없는 상태”라고 덧붙이며 정부가 필수 의료 대책과 의대 정원에 대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진은 의대생에 대해 유급 조처가 내려지거나, 전공의에 대한 사법 절차가 내려질 경우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충북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 100여명도 지난 8일 대학 본부 앞에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묵언 시위를 벌였다.
이 대학 재학생 304명 가운데 247명은 학교 측에 수업 거부 의사를 밝히고 개강일이던 지난달 19일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고 있다.
건국대학교 충주 캠퍼스 의대 재학생은 127명 가운데 81명이, 의학전문대학원 재학생은 135명 가운데 134명이 휴학계를 제출했다.
의대의 경우 학과장의 설득 끝에 신입생 40명 전원이 수업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4일 개강한 나머지 학년의 학생들과 의전원 수업에는 계속 수업에 나오지 않고 있다.
강원대 의대 교수진들 역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정부에 전공의 복귀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나보배 김솔 박주영 박정헌 박세진 김상연 장지현 이성민 백나용 박철홍 박성제 강태현 기자)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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