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64) 전 국방부 장관이 “범인 도피”라는 비판 속에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몰래’ 출국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이 전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한 지 6일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를 받은 지 3일 만이다.
핵심 수사 대상자가 공무를 명목으로 해외로 출국하면서, 외압 의혹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전 장관처럼 직업 외교관이 아닌 경우에는 대통령이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해 대사 등으로 보낼 수 있다. 특임공관장은 정년도(외무공무원 정년 60살), 임기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이 전 장관은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호주 브리즈번으로 향하는 KE407항공편(오후 7시45분 출발)에 탑승해 출국했다. 이날 이 전 장관의 호주행을 막기 위해 찾은 야당 국회의원과 해병대 전우회 회원 등이 비행 출발 4시간 전부터 출국장으로 향하는 문(게이트) 5곳을 지켰지만, 이 전 장관은 이들과 취재진의 눈을 따돌리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 공항 직원은 “이들(게이트 5곳) 말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다른 통로는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 등 30여명과 함께 공항을 찾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7시15분께 “(이 전 장관이)벌써 출입국 심사를 마친 것으로 확인된다”며 “대통령은 피의자 혐의를 받는 이 전 장관을 외교관 신분으로 해외 도피 시켰다. 수사를 지연시키고 진실을 가린다해도 반드시 법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의 출국은 대사 임명 뒤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 전 장관은 대사 임명 직후인 6일 언론보도를 통해 자신의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지자 하루만인 7일 공수처 조사에 응했다. 통상 수사는 아랫사람에서 시작해 윗선으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인데, 압수물 포렌식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사여서 “출국금지 해제 명분을 위한 조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법무부는 조사 다음날인 8일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를 해제했다. 이 전 장관처럼 직업 외교관이 아닌 경우에는 대통령이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해 대사 등으로 보낼 수 있다. 특임공관장은 정년(외무공무원 정년 60살)도, 임기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핵심 수사 대상자의 출국으로 외압 수사 의혹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전 장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넘기겠다’는 해병대수사단의 보고서에 결재한 뒤 하루 만에 이를 뒤집은 장본인으로, 윤 대통령의 ‘격노설’을 입증할 수 있는 연결고리기도 하다.
한겨레 고경주 기자, 박민희 선임기자 /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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