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의 의사들로부터 일상적으로 갑질을 당했다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의사들이 제약회사 직원들에게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 참석을 강요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터라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8일 한국일보는 국내·외국계 제약사 영업사원들에게 의사 상대 영업 행태를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그 결과 일부 의사의 갑질 행태는 도를 넘은 수준이었다.
가장 흔한 것이 도시락 배달과 회식비 대납 등 식사 지원이었다. 개원의들은 끼니를 병원 내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영업사원이 점심 식사를 직접 배달하는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저녁은 영업사원 법인카드로 계산하는 문화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한 대도시에서 50여 개 클리닉(개원의) 영업을 담당한다는 국내 대형제약사 영업사원 A씨는 매체에 “원장님 중엔 입이 고급이라, 개당 3만 원대 초밥 도시락만 먹는 사람도 있다”며 “도시락이 남으면 원장님 집으로 배달까지 해 드려야 한다”고 귀띔했다.
영업사원들은 의사들 개인 용무도 봐준다. 자녀 등·하교를 돕거나 컴퓨터 수리까지 한다.
외국계 제약사에 재직 중인 B 씨는 “처음엔 선의로, 또 감성 영업 차원에서 인간적 도움을 줬는데 점점 요구가 과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지방 영업사원 C 씨는 “취직하고 선배들이 ‘원장님 운전기사’를 해야 한다고 해 차를 샀다”며 “한 번은 서울서 학회가 열리는데 의사가 ‘택시는 싫다’고 해 왕복 6시간을 운전했다”고 설명했다.
믿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다. A 씨는 매체에 한 유부남 원장님에게 받은 부탁이라며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을 가는데 바빠서 시간이 없다며, 여행계획부터 외화 환전까지 부탁하더라”며 “불륜까지 대놓고 말할 정도로 저희를 사람 아닌 ‘노예’로 본다는 얘기다”고 분노했다.
영업사원에겐 주말도 없다. 의사들의 등산, 골프, 심지어 종교 활동까지 함께해야 하는 경우까지 있다. 영업사원 D 씨는 “한 개원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해 거절했더니, 발주가 바로 끊겼다”며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 헌금을 사실상 강요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8년 차 영업사원 E 씨도 “한 병원장이 자기 아들과 주말에 드론을 날리자고 해 사비로 드론을 샀다”며 “다른 사원들은 주말마다 골프장에서 산다”고 했다.
개원의만 그런 건 아니다. 매체에 따르면 대형병원 교수 중에도 갑질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개원한다는 소식이 퍼지면, 제약사들이 발 벗고 나서 병원 인테리어를 책임져준다. 가령 대형TV는 이 제약사에서, 에어컨은 다른 제약사에서 사주는 식이다. 지원 규모가 1000만 원대 이상이다 보니 개별 영업사원이 아닌 영업팀 단위로 금품 제공이 이뤄진다고 한다. A 씨는 “물론 대부분 의사는 부당한 요구는 하지 않지만, 의료계가 전반적으로 영업사원을 아랫사람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갑질이 가능한 건 의사와 영업사원이 ‘돈’으로 얽힌 공생관계여서다. 제네릭(복제약)이 보편화된 병증은 의약품 선정 전권이 의사에게 있다. 이 약을 안 쓰면 저 약을 쓰면 그만이라, 제약사 간 경쟁이 엄청나다. 의사 지시를 거스를 수 없는 구조다. 중증 환자들이 많아 ‘약의 성능’이 처방에 기준이 되는 종합병원보다, 개원의들의 갑질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행 의료법 등에 따르면, 리베이트를 받은 자는 1년 이내의 자격정지와 함께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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