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고 애 밥 주고 설거지 하면 하루가 다 가는 거야.”
“그러니까. 하루가 빨리 가.”
어쩌다가 카페에서 옆자리 대화를 엿들었다. 할머니·엄마 세대와 ‘나(청년)’의 세대는 달라졌다고들 한다. 부엌과 큰 방이 구분 되어서 여성과 남성이 따로 밥 먹는 것이 언제 적 이야기냐고 한다. 여성만 가사노동 하는 것은 옛날일이고 요즘은 남성도 분담을 한다고 한다. 취집(취직+시집)한 전업주부만 있을 뿐 결혼한 여성도 하고 싶은 일 펼치면서 산다고 한다.
‘나’는 그 할머니 세대 이야기를 직접 겪었다. 엄마가 넘지 못했던 밥상 장벽을 넘었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건 어린이의 식탐을 귀여워했던 할아버지의 허락 때문이었다. 남성도 가사노동을 분담한다고 하지만 코로나19가 심각하던 시기 가사돌봄노동의 과중을 겪은 건 통계적으로 여성이었다. 가끔 고장난 집 일부를 수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 삼시세끼의 장을 보고 요리하고 밥상을 차리고 세탁기를 돌리면서 청소를 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하고 싶은 일 펼치며’ 산다는 워킹맘은 어떤가. 밖에서 “자유로운” 임금노동을 하고 엄마로서의 돌봄노동을 할라치면, ‘맘충’이라는 혐오의 말을 감당해내야 한다.
“여성이 차별 받는다”, “성차별 사회” 등의 말을 하면 ‘옛날이야기는 그만하라’고 한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사노동과 아이 돌봄을 하면 하루가 다가는 여성의 이야기, 카페에서 엿듣게 된 이 이야기는 역사책이 아닌 2024년 어제 들은 말이다.
흐린 눈을 떠라
할머니와 엄마, 나를 모아놓고 성차별 경험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왜 그러한 차별을 겪었을까 분석해보면, 남성중심사회와 여성혐오, 대상화 등 가부장제 문제라는 하나의 큰 이유로 모일 것이다. 여성에게 있어 성차별은 변형될 뿐 계속 축적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듯이 한국은 OECD 국가 중 성별임금격차 1위의 나라다. 이 통계는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하고 27년째 이어진 것이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으로 몰리는 것도 여성이다. 2022년 여성 노동자 중 정규직은 54% 비정규직은 46%으로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결혼과 임신‧출산‧육아 때문에 고용단절과 유리천장을 겪는 여성 노동자도 많다.
임금과 노동조건 등 불평등한 일터 문제와 더불어, 여성에게 일터는 안전하지 않기까지 하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겪고 있다. 지난해 직장갑질119에서 발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3명 중 1명은 직장 내 성희롱, 4명 중 1명은 직장 내 성추행·성폭행, 10명 중 1명은 직장 내 스토킹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38.4%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22년 신당역사 여성노동자의 젠더폭력 살해 사건이 유별난 한 사건이 아닌 여성 노동자의 일상이라는 것이다.
젠더화된 노동시장을 포함해 여성이 겪는 차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조적 성차별을 안 본 척하고 책임 없는 척하는 ‘흐린 눈의 정부’가 문제다. 이는 저출생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을 보면 두드러진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직속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지난 5일 종교계 대표 방송사와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위원회는 “생명의 소중함, 출산과 양육의 가치와 보람, 사회와 청년세대에 유익한 다양한 컨텐츠 등의 제작 및 지원에 적극 협력하기로”했다고 한다. 한편 서울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년 동안 2137억 원을 예산을 사용한다. 산후조리 경비를 지원하고 35살 이상 고령 산모의 검사비를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다.
대통령실 직속기구가 사회 변화에 가장 느린 반응을 보이는 종교계와 함께 “아이는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출생장려정책을 떠올렸다. 서울시는 임산부에 초점을 맞춘 경제적 지원 중심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 같은 정부의 판단은 정부가 여성의 몸을 임신‧출산의 도구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반면 저출생 문제에 대한 학계 등의 다양한 분석은 하나의 결론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이다. 불평등이란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출생을 장려하고 돈만 쥐어주는 대책은 깨진 독에 물 붓기이다.
‘우리가 똑바로 보게 해주마’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여성파업이 있다. 여성파업에 나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2024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가 꾸려졌다. 이들은 성별임금격차 해소, 돌봄 공공성 강화,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임신중지 권리 보장,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성차별적인 승진·승급 문제로 투쟁해 온 금속노조 KEC지회의 반도체 제작 노동자와 소속기관 전원 전환을 위해 싸우는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 상담노동자 등이 여성파업에 나선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처럼, 파업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노동을 멈추면서 어떤 생산을 했는지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에 대해 강력한 대항 선언을 하는 행동이다. 여성파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여성파업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오랜 페미니즘 운동 구호의 실천이기도 하다. 여성이 일터에서뿐만 아니라 집, 관계에서 차별을 겪으며 하던 노동을 멈추고 그 차별이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오는 정치적 실천이다.
올해 여성파업으로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여성파업은 그 자체로 노동의 가치와 평등에 대한 감각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는 가사·돌봄노동 등 평가절하 되고 가려져있던 노동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또한 우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 등으로 성차별을 겪고 있는 당사자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불평등한 일상을 폭로한다.
여성파업으로 권력과 자본에 입이 막혀있던 이들이 서로에게 끈끈하게 연대하고 평등한 세상을 그리는 풍부한 상상력을 얻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정치파업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한국이지만,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존재로 많은 이들이 여성파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불평등을 갈아엎는 힘센 첫 발걸음 여성파업에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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