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원 조성 사업에 자리 비워줘야
“무허가 건물에 국유 토지 무단 점유”
시민들 “추억도 사라질까 안타깝다”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인턴기자 = 바로 옆에는 기차가 힘차게 달리고, 세월의 향기가 묻어 있는 테이블 위에는 떡볶이가 올려져 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역시 오랜 시간 손님들의 기억들로 가득하다.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며 꾸덕꾸덕하게 손맛 가득한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이곳은 다름 아닌 서울의 한복판 충정로의 ‘철길떡볶이’ 집이다.
7일 연합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분식집 철길떡볶이가 서대문구청의 도시계획시설(경의제2녹지)사업으로 인해 머지않아 자리를 떠나야 한다. 1972년 설부자씨가 처음 문을 열었고, 현재는 아들인 허덕회씨와 그의 아내 박리희씨가 명맥을 이어 온 지 52년 만이다. 허씨는 “아내가 혼자 운영하다 허리를 크게 다쳐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게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2대를 내려오며 많은 이들에게 낭만과 추억이 깃든 곳이지만 서대문구청의 도시계획시설(경의제2녹지) 사업 추진으로 사라질 상황이 됐다. 철길떡볶이 주변의 고압 전선을 정리하고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허씨는 서대문구청의 도시계획시설 사업이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서대문구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철길떡볶이 건물은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이고 영업 신고도 안 돼 있기 때문이다.
허씨는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에 영업 신고를 할 수 없었다. 2019년쯤 서대문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내서 세금을 납부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가게들은 이런 경우가 다반사다. 종로에도 비슷한 가게가 많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은 철길떡볶이가 그동안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영업을 해왔다며 원칙대로 법을 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서대문구청은 “이미 그곳은 도시계획시설 녹지로 잡혀 있는 곳이다. 고압전선이 깔려 있기 때문에 이를 완충할 수 있는 녹지를 조성할 수 있게끔 법으로 규정해놨다. 가게 건물도 영업 신고를 안 한 채 국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다. 가게가 들어선 토지는 구청의 소유인데, 그동안 토지 사용료를 받은 적이 없다. 녹지 조성 사업 추진에 따른 보상금도 이미 2020년에 지급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법원 명도 소송을 의뢰한 상황이다. 법원에서 판결이 나오는 즉시 도시계획시설 사업을 진행하고 그에 맞는 절차를 집행할 계획이다. 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모른 척할 수 없다. 구청의 재산이니 당연히 관리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철길떡볶이를 아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는 이곳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특유의 맛도 맛이지만,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 풍경으로 수많은 사람의 발길을 사로잡았고 영화와 TV 드라마의 단골 촬영 장소로 유명세를 치렀다. 가게 외부의 테라스에서 떡볶이를 먹다 보면 지나다니는 기차를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여느 분식집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경관이다. 허씨는 “처음부터 테라스를 운영한 것은 아니다. 가게 내부가 워낙 좁은 것이 고민이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쯤부터 야외 테라스를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시원한 야외 테라스에서 달리는 기차를 볼 수 있다고 입소문을 타며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어느새 고즈넉한 분위기로 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많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선택받았다. 2023년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길복순’의 촬영지이며 배우 한지민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드라마 미스터백(2014), 천리마마트(2019), 타임즈(2021), 디엠파이어(2022)와 영화 신의 한 수(2014) 등 많은 작품이 철길떡볶이를 배경으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2대째 내려오는 추억의 맛집인 만큼 어렸을 적부터 가게를 찾은 단골손님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충정로역 근처 회사의 직장인이라고 밝힌 A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왔던 곳이다. 맛도 맛이지만, 아무래도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곳이다 보니 찾게 되는 것 같다. 자주 오진 않지만, 올 때마다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말했다. 허씨는 “몇십 년 지나서 다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외국에서 지내다 한국에 들어왔는데 생각나서 왔다는 손님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허씨는 “어머니 때부터 여기서 장사해왔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지 않고, 갈 곳도 없다. 계속 이곳에서 장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to126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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