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상 전 배아’로 성감별 논란 확산…”성감별 남용 vs 패밀리 밸런싱” 맞서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헌법재판소가 최근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감별을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제 임신 중에는 아무 때나 태아 성감별을 해도 법적인 규제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퇴색하고, 성평등 의식도 커진 상황에서 성감별 금지 조항이 타당성을 잃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성감별 금지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시험관 아기를 위한 배아에 대해서도 착상 전 유전자 검사로 원하는 성별을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시험관아기 시술은 남녀의 몸에서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수정시키고, 수정란(배아)을 다시 여성 몸에 넣어 임신시키는 것을 말한다. 배아는 자궁에 착상되면 세포분열과 분화 과정을 통해 인간 개체로 발생한다.
의학계에서는 현행법률상 시험관아기 시술에 쓰이는 배아(임신 후 8주까지)의 법적 지위가 태아(임신 9주부터)와 동일하다고 본다.
물론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통한 배아의 성감별은 현재로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의료법의 규제를 받아온 태아와 달리, 배아는 별도의 생명윤리법(2조 2항)에서 ‘특정의 성을 선택할 목적으로 난자와 정자를 선별하여 수정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착상 전 유전자 검사는 성감별 없이 35세 이상 난임 여성을 대상으로 배아의 염색체 검사를 통해 ‘기형 가능성’만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태아의 성감별이 완전 폐지돼 사실상 낙태가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이제는 착상 전 배아에 대해서도 성감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산부인과 원장은 “32주 이전 태아의 성감별이 가능해졌다는 건 그만큼 낙태를 포함한 자기 결정권이 커졌다는 의미로, 이제는 착상 전 배아에 대해서도 성감별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체외수정을 원하는 부부 중에는 자녀의 성비를 고려한 배아 착상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며 “미국에서는 이미 ‘패밀리 밸런싱'(family balancing)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을 만큼 착상 전 배아의 성감별에 대해서도 자기 결정권을 폭넓게 부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배아 단계에서 성감별이 허용되면 난임이 아닌데도 시험관 임신 시술을 남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또한 착상 전 유전자 검사는 비급여 항목이어서 자칫 돈벌이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현재 배아 유전자 검사를 하려면 30만~50만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국립중앙의료원 최안나 난임센터장(산부인과)은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리 아이의 성별을 확인하고 임신 여부를 결정한다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성비 불균형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없애려면 이번 위헌 결정과 별개로 의학적 목적 외의 배아 성감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 센터장은 “32주 이전 태아 성감별을 금지하는 조항까지 폐기됨으로써 현행 법률로는 성감별에 의한 낙태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성감별 금지가 위헌이라는 취지를 살리면서도 성감별에 의한 낙태와 배아 폐기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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