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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특검’으로 불러야 하는 입틀막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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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지난 3월31일 ‘2023 순천만 국가정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대통령실
▲지난해 3월31일 ‘2023 순천만 국가정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김건희 특검’이라 부르던 방송사들이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의위)가 ‘여사’를 빠트린 SBS에 공정성 위반으로 행정지도를 내리자 방송사들이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제공된 상황에 패널, 앵커 등 방송 관계자들은 정부 비판보도에 대한 위축효과를 우려했다.

앞서 선방심의위는 지난달 22일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2024년 1월15일)엔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최철호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방송에서 ‘김건희 특검’이라고 언급된 것을 놓고 “지상파는 보편재다. 불특정 다수가 보니 국민교육, 정서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 순화된 용어를 진행자가 잡아줘야 한다”고 했다. 손형기 위원(TV조선 추천)도 “여사를 안 붙이고 이러면 진행자가 사려 깊게 잡아줘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후 MBC·KBS·SBS·YTN·CBS 등 다수 시사프로그램이 선방심의위 의결 이후 ‘김건희 특검법’(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이라 부르던 것을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라 지칭하고 있다. 패널이 습관적으로 ‘김건희 특검’이라 발언하면 진행자가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 해야 한다고 정정하는 식이다.

지난달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보면 김준일 평론가가 “김건희 특검”이라고 말하자 김현정 앵커가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고 정정한다. 김현정 앵커는 “‘여사’자를 꼭 붙여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고 말하자 김준일 평론가는 “법안 이름에 ‘여사’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알겠다”고 말한 뒤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지난 1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도 김병민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김건희 특”이라 했다가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고 바꾸자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전 JTBC 앵커)이 “(여사) 안 붙이려고 했죠. 지도 받으셔야겠네(웃음)”라고 말한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YTN라디오 ‘뉴스앤이슈’에 나와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 호칭하며 “여사 안 붙이면 큰일 나지 않나. 방송사 지금 행정지도 받고 난리가 났다”며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싶다”고 말했다. 신장식 변호사가 하차한 뒤 MBC라디오 ‘뉴스하이킥’ 진행자를 맡은 권순표 앵커도 방송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 부르고 있다. SBS, KBS도 마찬가지다.

박성태 실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말이 되지 않는다. 원래 법안명에 ‘여사’가 들어가지 않는다. 설령 여사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김영란법’처럼 법안명은 존칭을 생략해왔다”며 현 상황을 가리켜 “권위주의 정권의 상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한쪽(정부·여당)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사에 ‘관계자 징계’와 같은 중징계를 내리지 않나,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1월16일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유튜브 갈무리. 해당 방송으로 CBS는 법정제재 ‘관계자징계’를 받았다.
▲1월16일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유튜브 갈무리. 해당 방송으로 CBS는 법정제재 ‘관계자징계’를 받았다.

우선 성가신 일을 피하고 보자는 게 방송사들의 심리다. 잇따라 제작진 의견진술을 요구해 업무에 지장을 주는 심의 기구 눈에 벗어나기 위해서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A앵커는 통화에서 “(위원회가) 무섭다기보다는 피곤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게 있다. 여론조사 같은 경우도 이전보다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니 언급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숫자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짜증나 숫자 대신 추세만 얘기하자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A앵커는 “김건희 여사라고 안 했다고 제재하는 것도 분명히 위축된다. 말하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라며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불편하게 만들면서 자주 말을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엄격한 잣대가 간접적으로 정부 비판 내용에 있어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태 실장은 “(무리한 심의는) 방송사들이 소송까지 가면 이길 것이다.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때까지는 (방송사 입장에서) 성가신 일이 된다. 부당한 걸 알아도 위축되는 것”이라며 “(제작진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사소한 것 가지고도 편파적이라 문제 삼으니 날카로운 것도 다듬고 정부·여당 비판 논조가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꾸려진 선방심의위는 정부 비판 보도에 대해 엄격한 심의를 계속하고 있다. 2개월 만에 MBC, YTN, CBS 등에 10건에 가까운 법정제재를 내렸는데 모두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 정부·여당 관련 내용이었다. 법정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로 적용되는 중징계다. 

2008년 총선부터 2023년 재보궐 선거까지 선방심의위에서 ‘관계자 징계’는 두 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선방심의위는 2월 말까지 40건의 안건을 심의했으나 법정제재는 1건, 행정지도는 22건에 그쳤다. 현재 선방심의위는 같은 기간 54건의 안건을 심의하여 법정제재는 9건, 행정지도는 36건이다.

김준일 평론가는 통화에서 “중징계가 반복되니 굉장히 조심스럽다는 건 기본”이라며 “이외에 또 하나의 큰 흐름은 현장의 ‘조롱’ 기류다. 정치 고관여층이나 정부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측은 이러한 심의 결정들에 기가 차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굉장히 중대하게 침해하는 꼴이다. 전두환 대통령 닮았다고 대머리 출연 못 시키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나”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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