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다룬 9개 방송사에 심의 규정 ‘객관성’ 위반을 적용했다. 그런데 법정제재 ‘과징금’부터 행정지도 ‘의견제시’까지, 징계 수위는 천차만별이다. 심의에 앞서 일부 방송사에만 방심위가 자막 수정 등 후속 조치를 요구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실제 방심위 심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20일 방심위는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고 9월22일자 MBC ‘뉴스데스크’, KBS ‘뉴스9’, SBS ‘8뉴스’ ‘OBS 뉴스 O’,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TOP10’, JTBC ‘뉴스룸’, MBN ‘프레스룸’, YTN ‘더뉴스 1부’ 등 9개 방송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비슷한 방송 내용에도 제재 수위가 달랐다. 징계 수위로 보면 MBC(과징금), YTN(관계자 징계), JTBC·OBS(주의), KBS·SBS·TV조선·MBN(권고), 채널A(의견제시) 순이었다. MBC·YTN·JTBC·OBS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법정제재’, 나머지 방송사들은 사실상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도’다.
제재 여부를 가른 핵심적인 기준은 ‘사과’였다. 회의에서 심의위원들은 제작진들에게 사과방송 여부를 재차 물었다. 사과방송을 안 한 방송사들엔 무슨 이유인지 설명을 요구했다. 류희림 위원장은 “법원의 판결 내용과 함께 사과문을 게시한 방송, 더 나아가 사과방송을 한 언론사도 있다”며 “이런 방송사가 있는가 하면 수정만 하고 별도 사과 내용을 고지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제재 수위를 논의하는 데 참고하시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결과 머리를 숙인 방송사들이 법정제재를 피한 셈이 됐다. 법정제재를 받은 MBC·YTN·JTBC·OBS는 사과방송을 하지 않았다. KBS·TV조선·MBN은 사과문을 게재하거나 사과방송을 별도로 했고 채널A도 심의 자리에서 “정확하지 않은 자막을 달아 시청자 여러분들게 혼란을 드린 점 다시 사과드린다”고 했다.
SBS는 류희림 위원장이 “사과내용이 따로 없는데 추가할 계획이 있나”라고 묻자 “최종 법원 판결 내용을 보고 검토하겠다는 말씀드린다”며 “문제가 됐던 9월22일 보도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9월23일 자체 분석 기사, 팩트체크를 통해 다시 보도했다. 그 보도가 대통령실의 설명, 법원의 판결 취지와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법원은 지난 1월 ‘바이든-날리면’ 관련 대통령 발언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며 MBC에 정정보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행정지도와 법정제재는 하늘과 땅 차이다. 법정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로 적용되는 중징계지만 행정지도는 사실상 방송사들에 특별한 구속력을 주지 못한다. 방심위 제재는 낮은 순으로 ‘문제없음’, 행정지도 ‘의견제시’ ‘권고’, 법정제재 ‘주의’ ‘경고’ ‘관계자 징계’ 또는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 ‘과징금’ 단계로 구분되는데, 방송사의 사과 여부로 4단계 이상의 제재 수위가 차이나게 된 것이다.
4기 방심위원장을 지냈던 강상현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겉으로는 위원들끼리 고민을 해서 방송사별로 차이를 둔 것처럼 했지만 심의 근거 자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과를 요구하거나 방송사 태도를 지적하는 건 벌을 주는 것 같은 ‘이중제재’ 느낌이 있다. 비판 언론을 겨냥한 정치심의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유진 방심위원은 통화에서 “어떤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하는지조차 불명확한 상태에서 사과하면 봐주겠다는 건 방송사들에게 굴복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의견진술 자리에서 ‘언론 자유가 위축된다’고 발언했다가 위원들에게 태도 문제를 지적받은 박순표 YTN 보도국 편집에디터는 통화에서 “납득할 수 없다. ‘바이든’을 전제로 해 앵커가 멘트로 단정하고 기정사실화한 방송보다 우리가 더 강한 제재를 받았다”며 “여야 반응이 이렇다는 걸 전하는 과정에서 시청자 이해를 돕기 위해 ‘바이든’을 표기했을 뿐이다. 이런 것에 징계를 때리면 어떤 기자가 기사를 쓸 수 있나. 명백한 언론 자유 침해”라고 말했다.
MBC와 YTN은 문제가 된 2022년 9월22일자 보도를 수정하지 않았다. 다른 방송사들은 △‘바이든’이라고 명시된 기사 제목, 영상 자막, 기사 문구를 ‘OOO’으로 바꾸거나 △윤석열 대통령 발언 자막을 아예 지우거나 △전체영상에서 관련 리포트를 삭제하거나 △해당 날짜의 방송을 비공개하거나 △사과 문구를 포함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MBC, YTN과 같이 법정제재를 받은 OBS는 방송사들의 수정 여부를 다룬 지난달 2일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 별도 사과 없이 뒤늦게 해당 기사를 비공개 처리했다.
[관련 기사 : ‘바이든→OOO’ 심의 앞둔 방송사들 리포트 고쳤다]
박순표 YTN 에디터는 “(심의 기준이) 첫째가 (바이든 문구의) 삭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진술 과정에서 태도가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라며 “24시간 전문 보도채널의 특성도 고려되지 않았다. 태도를 이유로 행정지도에서 법정제재까지 늘어나는 건 기준 없는 고무줄 심의”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방심위가 심의에 앞서 일부 방송사들에 사과방송, 자막 수정 등의 조치를 요구한 정황도 나왔다. 지난 1월 말 방송사들이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일괄 수정하자 방심위가 일부 방송사들에만 사전 언질을 주고 징계를 경감해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것. 방심위는 따로 언질이 없었다며 이러한 의혹을 부정했다.
그러나 한 방송사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사전) 안내를 받은 곳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고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타사가 수정된 것을 보고 조치했다. 언질을 받은 곳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순표 에디터도 “(1월12일) 법원 판결이 나오고 나서 방심위로부터 후속 조치에 대한 요청이 있었던 걸로 안다”며 “뭘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 요구는 아니었을 것이다. (조치하면) 정상 참작이 될 수 있다는 취지 아니었겠나”라고 말했다. 반면 MBC는 “방심위로부터 연락 받은 게 없다. 타사 수정 상황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김유진 방심위원은 “무슨 근거에 따라 그런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특정 방송사에만 그런 언질을 줬다면 그 방송사들을 봐주기 위한 ‘빌드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절차적으로 다 문제가 된다. 많은 방송사들이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방심위가 왜 방송사를 나눠 그런 조치를 요구했는지 무슨 기준으로 나눈 건지도 소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바이든-날리면’ 심의가 남긴 의문점은 있다. 방심위는 MBC가 비속어 논란을 처음 보도한 것이 문제라며 의견진술자로 나온 방송사 제작진들에 MBC 영향을 받지 않았냐고 거듭 물었다. 그 결과 일부 제작진들은 자사가 아닌 타사 보도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MBC는 각 방송사가 자체 판단을 거쳐 방송한 것인데, 방심위가 MBC 탄압을 위해 몰아가고 있다고 항의했다.
이와 관련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최초보도는 MBC 유튜브(보도) 영상(오전10시7분경)이다. 유튜브 영상은 방심위의 심의대상이 아니다”라며 “MBC가 유튜브에 논란이 된 촬영 영상을 게재한 이후 정오뉴스까지 약 2시간 사이에는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의 공개비판을 비롯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전하는 다수의 언론보도가 이뤄졌다. MBC정오뉴스가 그 이후 모든 보도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했다.
‘대통령 명예훼손성’ 심의를 대통령 추천 방심위원이 과반을 넘긴 회의에서 심의했다는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방심위는 현재 여야 6대1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데 혼자 남은 야권 추천 위원이 ‘심의 보이콧’을 선언해 지난달 20일 방송소위는 여권 추천 위원만 4인 참석해 진행됐다. 대통령 추천 위원이 3인(류희림·문재완·이정옥), 국민의힘 추천 위원이 1인(황성욱)이었다.
향후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는 1심 판결을 근거로 삼아 심의를 강행했다는 문제도 있다. 김유진 위원은 “1심을 가지고 방심위가 심의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방심위는 최소심의가 원칙이기 때문”이라며 “향후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해 법원이 문제 없다고 해버리면 법에 근거한 판단보다 방심위가 더 심한 제재를 했다는 게 된다. 방심위가 엄청난 데미지를 받아 기구의 위상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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