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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른바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 무렵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전 세계 시장에 쏟아져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각국 제조업체들은 막대한 인구에서 나오는 가격 경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고,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상황을 가리켜 일각에서는 ‘차이나 쇼크’라고 불렀다.
이 같은 차이나 쇼크가 약 20여년만에 글로벌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각지에서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 시간) “중국이 경제성장을 되살리기 위해 수출을 두 배로 늘리면서 ‘차이나 쇼크’의 속편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며 “중국 기업들이 정부 주도의 저리 대출에 힘입어 내수에서 감당 못할 물량으로 자동차·기계·전자제품을 생산해 해외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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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과거와 달리 중국이 세계 경제 ‘G2’ 수준으로 성장한 데다 자동차,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투자한 비중도 높기 때문에 2000년대 초와는 양상이 다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은행(WB) 통계를 보면 중국은 2022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31%, 전체 상품 수출의 14%를 점유하고 있다. 20년 전 중국의 제조업 비중은 10% 미만, 수출 비중은 5% 미만이었다. 데이비드 오토 MIT 경제학 교수는 “지금은 이전과 같은 차이나쇼크가 아닐 것”이라며 “중국은 기술 리더십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자동차, 컴퓨터, 반도체 및 복합 기계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가 더 근본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전기차 등의 대량 수출은 전 세계 경제를 디스인플레이션 쪽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차 차이나 쇼크 때는 중국이 철광석, 석탄 등 각종 원자재를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인플레이션 효과를 다소 상쇄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토마스 개틀리 게이브컬드래고노믹스 중국 전략가는 “중국이 세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둔화) 쪽으로 분명히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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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는 “중국이 수요 약화와 과잉생산에 물가가 하락 중이다. 이러한 디스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기준 미국에 수입된 중국산 제품의 수입물가는 전년동기대비 2.893% 낮다. 같은 미국의 최대 수입국인 멕시코산이 3.035% 높아진 것을 비롯해 일본(1.383%), 유럽연합(1.683%)로 모두 증가세를 보인 것과 정반대다.
지금의 차이나 쇼크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지정학적 긴장 고조 속에 자국 산업에 벌였던 막대한 투자와도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WSJ는 각국이 제조업에 투자한 탓에 세계 시장에 상품은 넘쳐난 반면 소비가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인플레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CATL의 경우, 세계 배터리 수요 대부분을 중국 내 공장에서도 생산할 수 있지만 각국의 수입 반대 움직임을 타개하기 위해 해외에 공장을 짓는 실정이다.
다만 차이나 쇼크에 대한 반발도 강해서, 서방 국가들도 중국의 공세에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중국산 제품 유입으로 또다시 자국 제조업이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조사가 대표적이다. 유럽이 지난해 10월 중국산 전기차의 시장 왜곡 가능성을 이유로 보조금 조사를 시작했으며, 미국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중국산 전기차 제재를 추진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면 중국산 제품에 대한 60% 보복관세를 공언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인구 고령화와 지속적인 노동력 부족이 중국산 제품을 막는 역할도 한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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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 같은 견제를 뚫기 위해 다른 신흥국·개도국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첨단 산업에 투자하면서도 비용이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 공산품 생산에서도 우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도국들이 신생 산업 육성에 나섰다가 중국산에 의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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