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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가장 비싼 카메라를 들고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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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다시보기’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PD가 “집 팔아 독립운동 나서는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 이 다큐의 제목은 2013년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3일-다시 와락! 벼랑 끝에서 희망 찾기’다.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서로 아픔을 다독이는 심리치유 공간 ‘와락 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이명박 정권이던 당시는 노동 현장의 문제는 거의 보도되지 못했던 때라 “독립운동”하듯 제작했다는 말이 이해됐다. 이 다큐도 이례적인 사전 심의 대상이 되면서 불방될 뻔 했다. 최근 KBS가 세월호 10주기 다큐를 무산시킨 것과 겹쳐진다.

다큐 말미에 중학생 이세민 씨가 등장하는 장면은 볼 때마다 찾아본다. 해고 노동자의 자녀인 세민 씨에게 피디는 꿈이 뭐냐고 묻자 기자가 되고 싶다며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다 알리고 싶고, 사회의 약자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 사람들을 위해 일 할 거고,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도록 기사도 쓰고 그럴 거예요.” 당시 많은 언론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그들에 대한 혐오를 키웠다. 중학생인 이 씨가 그 보도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읽혀 마음이 아팠다. 세민 씨의 답변은 기사를 모니터할 때, 취재할 때 그리고 취재하면서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때 불쑥 불쑥 떠올라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줬다.

▲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노지민 기자
▲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노지민 기자

세민 씨가 최근에 다시 생각난 이유는 방영이 무산된 세월호 10주기 다큐 출연자 중에 또 다른 세민 씨가 있을 것 같아서다. 다큐 3일에서 세민 씨 답변은 아프지만 그럼에도 희망차다. 언론이 해고 노동자인 부모를 외면했음에도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는 방송을 막고 혐오를 키워도, 누군가는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세민 씨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희망도, 꿈도 피어오르지 않았을까. KBS 다큐에 출연하기로 했던 이들이 예정된 4월에 방영되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중에 세민 씨와 같은 마음으로 출연에 임했다가 상처를 받은 이가 있을 것이다.

4·10 총선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세월호 다큐를 불방시킨 KBS는 어떤 보도를 하고 있을까. 총선 민심이 결정된다는 설을 앞두고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 대담에서 박장범 앵커는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을 두고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뭐 쪼만한 백”이라고 했다. 생활용품점 다이소에서 파는 5천 원짜리 가방이면 모를까 김 여사의 명품 브랜드 가방을 ‘쪼만한 백’이라는 말은 사안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균형감도 찾을 수 없다. 총선에서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한 단어 선택으로 보인다. 심지어 세월호 다큐는 총선이 끝나고 8일 뒤 방송될 예정이었다는데  KBS가 말하는 ‘총선의 영향’ 기준이 무엇인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 박장범 KBS 앵커가 2월7일 밤 방송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와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 박장범 KBS 앵커가 2월7일 밤 방송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와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KBS는 가장 비싼 카메라를 들고 가장 약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간다’. 과거 KBS 다큐들을 보면서 떠올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KBS는 가장 비싼 카메라를 대통령에게 갖다대고 약한 이들에게 가는 길은 막는다. 또다시 참사가 났을 때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 최근 정치 개혁 의제는 뒷전이고 위성정당을 만들면서도 당당한 정치권을 보고 어떻게 투표할지 막막했다. 정치인 말 받아쓰기 일색인 보도에 신당 창당 등에 따른 정치권 유불리 해석에만 바쁜 언론을 보고 유권자로서 소외감도 느꼈다. 이번 선거에는 매번 정치권에 휘둘리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가장 비싼 카메라를 들고 가장 약한 곳으로 가는 KBS로의 회복에 힘을 보탤 수 있는 후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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