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조종사 훈련 체험…정신 혼미하고 레버 놓쳐 ‘6G 20초 버티기’ 실패
(청주=연합뉴스) 김준태 기자 =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극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받는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평상시 중력보다 몇 배가 센 압력을 견뎌야 하는 이 훈련 장비에 들어서자 눈앞에 마치 실제 전투기를 탄 듯 가상화면이 펼쳐졌다.
“앞에 적 전투기가 있을 텐데 거기 집중하면 된다”는 훈련 교관의 말을 따라 시선을 고정하고 조종레버를 한껏 잡아당겼다.
‘큭’ 소리가 절로 나오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이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적기를 응시했다. 적기는 우주공간까지 날아갔다.
중력의 6배, 즉 6G 환경에서 20초를 버텨야 하는데, 결국 레버를 놓친 탓에 그 전에 기계가 멈춰 섰다.
눈앞이 핑핑 도는 중에도 교관에게 물었다. “우주까지 구현한 건가요?”
교관은 웃으며 말했다. “그거, 블랙아웃(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의식을 잃는 상태)이에요.”
국방부 출입기자단은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의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을 찾아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했다.
비행환경 적응훈련은 전투기 조종사 등 공중근무자가 비행 중 맞닥뜨릴 수 있는 공간 감각 상실, 항공기 급가속 중 시력상실·기절 등을 체험해보고 이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자 입교한 공군 장교는 물론, 노련한 전투기 조종사들도 3년마다 훈련받아야 한다.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즉 G-테스트가 진행되는 교장은 늘 교육생의 힘에 부친 신음과 진행요원의 다급한 안내 목소리가 교차한다. 축을 중심으로 원심분리기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일명 ‘곤돌라’에 탑승하면 평소 중력의 9배(9G)까지 경험할 수 있다.
중력 부하가 과도해지면 장비의 원심력에 의해 피가 다리로 쏠리고, 머리의 혈류는 거의 끊긴다. 이 때문에 그레이아웃(눈앞이 뿌예지는 현상), 블랙아웃이 일어나고 혼절하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머리의 혈압을 유지해야 하니 갖가지 방법을 쓴다. 하체에 힘을 잔뜩 줘 피가 쏠리는 것을 막고,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애를 쓴다. 복압도 유지하기 위해 단시간에 ‘큭! 흡!’ 소리를 내는 특수 호흡법을 활용한다.
‘6G 20초 버티기’를 실패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체에 힘을 준 기억이 도통 없었다. 예행연습 때는 6.8G까지 버텼지만, 힘이 떨어졌든 정신이 없었든 한 부분을 간과하니 곧바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도한 연습에서도 정신이 없어 놓쳤다. 갑자기 찾아오는 실제상황에서 무사히 절차를 수행해 사고를 내지 않으려면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고공 저압 훈련장에선 전투기 조종사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2만5천피트(7천620m) 고도에서 느끼는 신체 변화를 점검했다.
급작스레 기압이 낮아지자 귀가 먹먹했다. 침을 삼키거나 숨을 크게 내뱉으며 신체 내외부의 기압을 맞추려 노력했다. 이윽고 2만5천피트에 도달해 교관의 지시대로 산소마스크를 떼어냈다. 손으로 볼펜을 쥐고 ‘저산소성 저산소증’, ‘Price check’ 등 한글과 영어를 종이 위에 반복해 적었다.
손가락에 끼운 장비는 산소마스크를 벗은 지 1분 만에 체내 산소포화도가 62%까지 떨어졌다고 알렸다. 뒷머리가 저렸고, 글씨는 왼손으로 적은 듯 삐뚤빼뚤해졌다. 교관이 산소마스크를 씌우자 금세 정신이 들어왔다.
이번엔 급작스레 기압이 높아졌다. 입을 닫은 채 콧구멍을 모두 막고 숨을 뱉어내는 ‘발살바 호흡’을 반복해 귓구멍으로 가해지는 압력으로 인한 통증을 예방해야 했다. 왼쪽 코가 막힌 탓인지 왼쪽 귓구멍에서는 통증이 몰려왔다. 몇차례 더 반복한 끝에야 왼쪽 귀에서 ‘끅끅’ 소리가 나며 통증이 사라졌다.
비상탈출 훈련과 비행착각 훈련도 진행됐다. 전투기 좌석을 구현한 기기에 앉아 레버를 당기면 순식간에 좌석이 솟구쳐오른다.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려면 온몸을 의자에 딱 붙이고, 다리를 오므리고,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줘야 한다. 실제 비상탈출 시 느끼는 압력은 20G에 육박하기 때문에 크게 다칠 수 있다.
장치는 6G 정도의 압력을 느끼도록 조정됐다는 데도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실전이었다면 목이 부러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비행착각훈련은 조종사들이 눈과 귀로 파악하는 균형감각의 한계를 깨닫고, 계기장비를 믿도록 고안된 훈련이다. 훈련기계 속에는 비행기 좌석과 가상의 비행 화면, 계기장비가 구현돼 있었다.
고도가 꾸준히 상승하는데도 속도가 줄어들자 마치 고도가 하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후 좌석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수평으로 돌아왔는데, 몸은 그와 반대로 마치 좌석이 왼쪽으로 기운 것처럼 움직였다. 균형감각이 왜곡되며 벌어지는 착각들이다.
이날 진행된 여러 훈련 상황은 일반인이 실생활에서 체험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전투기 조종사라면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고, 실전이라면 여럿이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빠른 대처를 위해 그만큼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고, 대응법을 체화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공군 관계자는 “조종사들은 언제 어떤 환경에 노출될지 모른다”며 “항공기 기종, 조종사의 경력과 임무 등을 고려한 맞춤형 훈련으로 조종사가 대처법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readin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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