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들 자신 사법리스크 방탄에 이용 의도
각종 단규 개정은 이 대표 하위평가에 대비한 조치
하위 20% 31명 가운데 비명계 28명, 90%에 달해
‘친명단수, 비명경선’·‘친명횡재 비명횡사’, 결국 외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에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그 말이 단순한 정치적 발언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의 공천과정을 보니 그가 말했던 ‘이재명의 민주당’이 무슨 의미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대표는 대선에서 패배한 지 3개월도 안 돼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당 대표 경선에 나서 거대 야당의 대표직까지 거머쥐었다. 일정 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이전의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그 이유는 뻔하다.
대선 유세 중에 “선거에서 지면 감옥 갈 거 같다”라고 한 그의 말에서 유추해 보면, 공천권을 담보로 삼아 민주당 의원들을 자신의 사법리스크 방탄에 이용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리고 그 의도대로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방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이 대표의 처지에서는 앞으로도 자신을 결사적으로 옹위해 줄 방패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22대 총선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른바 친명들이 최대한 많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 그런 구도가 된다면 올해에 실시될 당 대표 선거에서 연임되는 것은 떼놓은 당상이고, 사법리스크에 맞서는 최선의 방탄벽이 될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런 준비가 착착 진행됐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지난해 5월에는 ‘후보자선출규정’을 개정해 1심에서 유죄를 받더라도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이 대표가 총선 전에 유죄판결 받을 것에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1월 31일 자 본란 참조). 그리고 현역의원들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기 약 1달 여 전쯤인 9월에는 ‘제21대 국회의원 평가 분야 및 방법’의 내용을 수정해 당 대표에 대한 평가는 조정이 가능하게 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즉 의정 활동 평가 부문에서 ‘당 대표와 국무위원의 경우 수행 기간에 비례해 입법 수행 실적, 위원회 수행 실적, 본회의 질문 수행 실적의 평균 점수를 가산’하도록 한 것이다. 당무로 바쁘기는 원내대표나 사무총장 등도 마찬가지일 텐데 당 대표에게만 혜택이 부여됐다. 이 대표가 하위평가를 받을 것에 대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런 특혜가 없다면 이 대표는 하위 20%에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하위 10%의 평가를 받은 박용진 의원의 경우, 상임위와 본회의 출석률은 95%, 90%이고, 대표발의 법안은 82건이었다. 이에 비해 이 대표의 국회 출석률은 각각 35.56%와 86.67%였고, 법안 발의 건수는 6건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야권에서는 이 대표가 하위 20%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이 대표 자신도 하위 20%에 포함됐을 수 있다는 걱정이 컸다고 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민주당의 공천 상황을 보면 이른바 비명계가 철저히 배제되는 구조다. 보도에 의하면 하위 20%의 평가를 받은 31명 가운데 비명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28명으로 90%에 달한다. 또한 상당수의 비명계 의원들은 친명계 정치신인들과 경선에 부쳐졌다. 정치신인에게는 20%의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반면에 친명계 인사들은 대다수 단수 공천받았다. 오죽하면 ‘친명단수, 비명경선’이란 신조어까지 생겼겠는가.
불공정 공천 논란과 관련해,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에 성남시 용역을 수행했던 여론조사 업체가 일부 비명계 의원들의 지역 활동 평가와 경쟁력 조사에 참여했다거나 비선조직의 공천개입설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이라며 곳곳에서 갈등이 분출하고 있지만, 이 대표나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시스템에 의한 공정한 공천’이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22대 국회에서의 민주당 내 의석 구도는 친명계 일색이 될 것이 자명하다. 이를 바탕으로 이 대표는 당 장악력과 대여·대정부 투쟁을 더욱 강화하고, 사법리스크 국면을 넘어 차기 대선에 대비하려 할 것이다. 물론 그 힘이 얼마나 클지는 전적으로 의석수에 달려있다.
어떤 방법으로 누구를 공천할지는 정당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선거에서 지지를 얻으려면 국민들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대체로 정체 또는 하향 추세다. 공천 잡음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당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마련이다.
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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