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계 지도부, 與 ’86 청산론’·비명계 구심점 역할 우려한듯
고민정은 최고위원직 사퇴…친문 등 비명계 집단 반발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설승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27일 총선 공천의 최대 뇌관이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선 배제(컷오프)를 결정하며 당내 계파 간 갈등이 절정을 향해 가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을 지내 친문(친문재인)계로서 상징성이 있는 그가 경선에서 배제되면서 비명(비이재명)계의 반발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회의를 열어 임 전 실장이 공천을 신청한 서울 중·성동갑을 전략 지역으로 지정하고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후보로 결정했다.
임 전 실장의 컷오프는 어느 정도 예상된 바였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달 21일과 이달 6일 언론과의 만남에서 잇달아 “윤석열 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분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한 게 그 시작이었다.
이 같은 메시지에 정치권에서는 비서실장으로 문 전 대통령을 보좌한 임 전 실장과 노영민 전 비서실장 등이 타깃으로 거론됐다. 당 핵심 관계자도 최근 통화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론’으로 총선을 치르려면 임·노 전 실장을 후보로 내세우기는 어렵지 않겠나”라며 컷오프를 시사한 바 있다.
이어 노 전 실장이 지난 23일 충북 청주 상당 경선 후보로 결정되면서 임 전 실장의 컷오프 확률은 더욱 높아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공관위가 비명계의 반발을 고려해 둘 중 한 사람을 경선 후보로 올리는 절충안을 택했다면 임 전 실장의 생존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청산론을 선거 전략으로 들고나온 것도 임 전 실장에게는 악재였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 위원장이 ’86 청산론’을 들고 나온 상황에서 86그룹 대표 격인 임 전 실장이 나온다면 여당에 공세의 빌미를 준다”고 언급했다.
결국 임 전 실장은 여야의 총선 정국을 달군 ‘윤석열 정부 탄생 책임론’과 ’86그룹 청산론’의 벽을 넘지 못한 셈이 됐다.
당의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가려는 친명(친이재명)계가 임 전 실장의 원내 입성 시 당의 역학 구도 변화를 염두에 두고 그를 컷오프했다는 시각도 있다.
임 전 실장이 이미 재선한 바 있는 서울 중·성동갑에서 공천받아 3선 고지에 오른다면 단숨에 비명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의 구도를 유지해 이 대표를 중심으로 차기 대선을 바라보는 친명계로서는 무게감 있는 경쟁자의 등장을 원천 봉쇄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당이 그간 임 전 실장에게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송파갑에 출마를 요청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비중 있는 당의 인사가 ‘선당후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실리 면에서도 임 전 실장의 험지 출마는 친명계에 나쁘지 않은 카드라 할 수 있다.
이제 친명계 지도부는 서울 중·성동갑에서 임 전 실장을 컷오프한 데 따른 비명계의 반발과 이로 인한 계파 간 갈등을 수습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임 전 실장 측은 통화에서 “선거 운동을 전면 중단하고 대책을 숙의 중”이라며 오는 28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정확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당이 재차 험지 출마를 요구해 임 전 실장이 이를 대승적으로 수용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긴 하나,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이 경우 비명계는 이번 공천을 ‘이재명 사당화’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반발할 공산이 크다. 결국 이날 임 전 실장의 회견이 민주당 내 공천 갈등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연쇄 탈당에 따른 사실상 분당 사태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한 비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이 사저를 찾아온 이 대표에게 ‘명문(明文) 정당’을 강조하며 단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라면서 “지금 당의 모습이 단결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미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친문계 일원인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지도부 사퇴를 선언했다.
고 최고위원은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의 공천에 불신이 쌓여 지도부가 책임 있게 설명해야 하는데, 임 전 실장 문제는 한 번도 논의된 바 없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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