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퇴근하던 중 사고로 숨졌더라도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정상규)는 A 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을 기각했다.
서울시의 공원 관리 업무를 하던 기간제 근로자 A 씨는 2020년 9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오후 5시경 내리막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일으켰다. A 씨는 당시 속도를 줄이거나 일시 정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로 피해자는 12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A씨는 땅에 떨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다음 날 사망했다.
유족은 A 씨가 출퇴근 재해로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해 주위를 살펴야 하는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해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산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유족 측은 공단 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사고가 발생한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없었고 건너편에 설치된 정지선에서 일시 정지한 만큼 보호 의무를 지켰다고 주장했다. 또 고령인 A씨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멈추기 어려웠던 점을 언급하며 불가피한 사고였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도 A 씨는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 하지 않았다. 이는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이며,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충격해 12주 이상의 상해를 발생시키는 범죄행위도 저질렀다”며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범죄행위로 인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 대상에서 배제된다’고 규정한 산재보험법에 따라 공단 처분이 적법다고 봤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를 포함한 차량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는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20만 원 이하 벌금 등에 처한다.
재판부는 또 “사고 영상에 따르면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이려는 모습이 없고 전방을 살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유족 측 주장과 달리 피해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갑자기 멈추었다거나 속도를 줄인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는 내리막길 망인이 보행자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는 평소 이곳을 다니던 망인의 주의의무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며 “이밖에 정황을 살펴도 망인이 업무로 인한 통증, 치료의 시급성으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고, 사고는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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