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의 연금 급여를 보장하기 위해 후세대의 부담이 담보돼야만 하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 구조를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는 국책연구원의 제언이 나왔다. 1990년생의 연금 급여는 1990년생이 납부한 보험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굴린 수익을 통해 보장하는 구조의 ‘신(新) 연금’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신연금 제도가 완전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현행 구(舊) 연금과의 병존이 불가피하단 제안도 덧붙여졌다. 즉 구연금에 따라 연금을 받는 세대, 신연금에 따라 연금을 받는 세대가 나뉘게 되는 것이다. 단 구연금 수령 세대에게 부족한 지급액은 일부 정부 재정 부담과 보험료율의 인상이 이뤄져야만, 모든 세대가 동일한 소득대체율 40%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 미래 세대에 ‘더 내고 덜 받아라’는 現 구조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강구·신승룡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21일 이런 내용의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현 국민연금의 적립 기금은 2054년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기금 소진 후에도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우선 조정하도록 설계돼 있으나, 이러려면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35% 내외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고 공적연금 보험료율 수준인 이탈리아의 33%를 웃도는 수준이다.
모든 문제는 현 국민연금 제도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보고서는 앞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큰 데서 기인한다고 짚었다.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와 기대 운용 수익의 합보다 ‘받을 것으로 약속된 총급여액’이 더 많다는 것이다. 즉 기성세대에겐 낸 것에 비해 받을 것이 더 많이 기대되는 셈이다. 참고로 국민연금 도입 초기에는 그 약속된 금액이 소득대체율 70%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2028년까지 점진적으로 40%까지 인하하기로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분 적립식’의 연금 운용 방식은 미래 세대에 더욱 부담을 지운다. 이는 기금을 적립하되 지급할 연금액의 100%를 쌓는 게 아니라, 후세대가 부담할 것을 담보로 연금액의 일부만 적립하는 방식이다. 더욱이 출산율이 낮아지는 인구구조하에선 기금이 빠르게 소진되기 때문에, 결국 뒷세대에게 부담을 지우면서도 되돌려줄 것은 남지 않는 구조다. 연금 논의가 세대 간 형평성 문제로 비화하는 이유다.
◇ “‘완전 적립식’ 신연금으로 구조 탈바꿈 필요”
보고서는 현재와 아예 다른 방식의 새 연금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부분적립식 연금 제도 방식이 아니라 ‘완전적립식’으로 전환하는 ‘신연금’을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완전적립식은 근로 세대에 부과된 보험료의 원리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향후 ‘기대수익비 1′(보험료+기대운용수익=총급여액)의 연금 급여를 모두 충당하는 방식이다. 개혁 시점부터 납입되는 모든 보험료를 신연금 기금으로 적립하는 것이다.
단 이런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구연금과의 병존이 일정 기간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개혁 시점 이전에 납입한 보험료에 대해서는 구연금 계정으로 분리하되, 다른 재원을 동원해 기대수익비 1의 연금 급여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다른 재원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는 구연금의 적립 기금만으로는 미래에 줘야 할 급여액을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연금의 재정부족분은 일반재정이 보장해야 한다”며 “‘신연금에 그 부담이 전가될지 모른다’는 미래 세대의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당장 개혁할 경우 구연금 재정부족분의 현재 가치는 올해 기준 609조원(GDP의 26.9%)으로 추정됐다. 만약 개혁이 5년 후에 단행된다면 869조원(GDP의 38.4%)으로 불어난다.
보고서는 “완전적립식 신연금은 15.5%의 보험료율로 2006년생부터 현행 평균 연금 급여 수준(소득대체율 40% 보장)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연금과 신연금의 병존은 출생 연도에 따라 기대수익비가 점진적으로 하락하다가 2006년생부터 1로 수렴하게 된다. 이 경우 연금 재정은 항구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고 기술했다.
KDI는 또 향후 신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급여 산정 방식을 현행 확정급여형(DB형)에서, 연금 수급 개시 시점에 수급액이 결정되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또 소득재분배 기능을 위해 연령군(코호트)별로 납부한 보험료가 통합계좌에 적립·투자되는 ‘CCDC(Cohort Collective Defined Contribution)형’을 제안했다.
◇ “개혁 늦춰질수록 일반 재정 부담도 늘어날 것”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을 채우기 위해 일반재정을 동원하자는 것은 사실상 세금이나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국민 입장에선 보험료율 인상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강구 연구위원은 “국채 발행은 재정건전성을 낮춰 궁극적으로 미래 세대 부담이겠지만, 세수 확보와 지출구조조정은 현재 세대에게도 일부 부담시키는 방식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수익률이 향후 더 높아지면, 보험료율이나 일반재정 등 동원 비용 부담이 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신승룡 연구위원은 “수익률이 높으면 신연금 제도 개혁에 있어서도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예로 기금수익률이 4.5%에서 6%로 오른다면, 신연금 제도에서는 보험료율이 15.5%보다 훨씬 낮아질 수 있고, 또 재정부족분 또한 더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두 연구위원은 “이번에 새로운 연금개혁안을 제시했지만 세대 간 형평성이나 지속 가능성 문제를 완전히 다 해결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건 아니다”라며 “하지만 그 문제들을 최대한 줄이는, 제일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본다. 연금 개혁은 조기에 추진될수록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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