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산재 특정감사 토대로 산재보상 제도개선 TF 구성
노동계는 “경영계 소원 수리를 위한 제도 개악” 반발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정부가 산재보험의 악용을 막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선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산업재해 신청과 승인이 급증한 소음성 난청, 장기요양환자를 양산하는 절차상의 문제점, 보상금 수준의 적정성 등이 검토 대상이다.
◇ 노동부 “감사서 소음성 난청 등 산재 제도 문제점 확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감사 과정에서 산재보상 인정, 요양 등 산재보험 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장관이 지적한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소음성 난청’ 산재다.
일터에서 85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3년 이상 노출돼 청력이 손실된 노동자는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소음성 난청 산재 신청 건수는 2017년 대비 2023년(1∼10월) 6.4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승인 건수와 보상급여액도 5배가량 늘었다.
급증한 배경으로 2017년 소음성 난청 산재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이전까진 퇴사 후 3년 이내 산재 신청을 해야 했는데, 판례 등에 따라 소멸시효 가산일 기준이 진단일로 변경되면서, 소음 작업장을 떠난 지 아무리 오래됐어도 난청 진단을 받은 지 3년 이내면 산재를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인성 난청과 구분하기 위해 산재 승인 과정에서 적용했던 ‘연령 보정’ 역시 법원 판결로 근거가 사라지면서, 고령층을 중심으로 산재 신청이 늘었다. 실제로 산재 신청자 93%가 60대 이상이라고 노동부는 밝혔다.
이정식 장관은 “산재 인정 시 연령별 청력손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아 과도한 보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것이 일부 ‘산재 브로커’의 위법 행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근로자의 업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 입증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질병 추정의 원칙’도 범위 등이 불명확해 현장에 혼란이 있다고 이 장관은 지적했다.
추정의 원칙은 작업 기간과 위험요소 노출량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현장조사를 생략하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제도로, 2017년 도입됐다.
◇ 절반이 장기환자…재활치료 실적은 저조
적기 치료 후 직장 복귀라는 산재보험 목적과 달리 장기요양환자가 많고, 정작 재활치료 실적은 저조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전체 산재 요양환자 중 6개월 이상 장기요양 환자는 약 48.1%(2017∼2023년 평균)로 절반에 가깝다.
노동부는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이 없는 탓에 주치의 판단에 따라 요양 연장 여부가 결정되면서 장기요양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가령 경추염좌의 경우 건강보험 대비 치료기간이 2.5배 더 긴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의료기관 변경에 별다른 제한이 없다 보니 2019년 6월부터 총 64회 의료기관을 변경하며 요양 기간을 늘린 재해자도 있었다.
집중재활치료 대상자는 증가하는 데 재활치료율은 2020년 13.5%에서 2022년 11.6%로 낮아지는 등 제도 미비 탓에 재활이 저조한 것도 장기환자를 양산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이와 함께 노동부는 연금부채가 55조원에 달한다는 추계를 고려할 때 현재 22조원 수준인 산재보험 적립금과 보상금 수준이 적정한지, 근로복지공단과 공단 직영병원의 운영이 효율적인지 등 인프라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보상금 수준과 관련해선 월 675만원의 장해급여를 받는 78세 수급자 사례를 들며 “지속 가능한 산재보험 운영을 위해선 연령 특성, 일반 근로자 등과의 형평 및 타 사회보험과의 연계 등을 고려해 합리적 보상이 되도록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 장관은 말했다.
◇ 제도 개선 TF 발족…노동계 “친기업 기조에 맞춘 것” 반발
노동부는 제도 개선을 위해 지난달 30일 의사 등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산재보상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근로복지공단도 노동부 TF와 연계해 자체적으로 ‘산재보험 운영 개선 TF’를 발족하고, 산재보험 운영상의 공정성·투명성 제고 방안을 검토한다.
공단은 이와 함께 박종길 이사장을 단장으로 ‘부정수급 근절 특별 TF’를 구성해 부정수급 사례가 많은 상병, 지역, 업종별로 기획조사하고, 관련부처와 함께 불법 브로커 및 사무장병원 등도 조사한다.
이번 제도 개선이 대체로 산재 신청과 승인, 요양기간 연장 등이 느슨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노동계의 적잖은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노총은 이날 노동부 발표와 관련해 “질병 추정의 원칙과 관련해선 일말의 부정수급 사례도 적발되지 않았음에도 현 정부의 친기업 기조에 맞춰 추정의 원칙에 반대하는 경영계 요구에 화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음성 난청과 관련해서도 “개선 초점이 잘못됐다”며 “소음성 난청 심의 건에 대해 공단이 불승인해 소송을 거친 사건 중 공단 패소율이 70%에 달한다. 장기간 소송으로 제대로 치료와 보상받지 못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또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이 설정되면 노동자의 업무특성과 노출 수준·기간, 개인적 특성 등이 반영되지 못해 노동자가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며 제도 개선 TF에 노동계 추천을 배제한 것도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노동부가 “경영계 소원 수리를 위해 산재 피해자를 모욕하면서까지 제도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고 규탄하며 중단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6개월 이상 장기요양 비율이 높은 것은 산재처리 절차의 까다로움 탓에 6개월 미만 산재는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데다, 산재처리 기간 장기화로 요양기간이 증가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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