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
짜고 치는 것이었다. 화기애애하고 도타운 정이 묻어나는 연출된 대통령의 ‘민생간담회’ 말이다. 참석자들은 곱게 차려 입고 예의 바르고 질문들도 대통령께서 답하기 좋은 그런 말들만 골라서 질서도 정연하게 시연되었다.
하지만 엇그제 카이스트 졸업식장은 그렇지 않았다. 예의와 절도가 넘치던 식장은 경호원들이 한 학생을 덮치면서 일순 ‘공포’가 지배하는 과거 독재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졸업생 복장으로 변장하여 좌석 곳곳에 시치미 떼고 앉아 있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발언 학생을 질질 끌고 나가는 그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일순 공포가 지배했다.
비밀경찰이닷! 하는 탄식이 TV를 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이 넘치는 자유의 시대에 은밀한 자들이 도처에서 사람의 옆구리를 노리면서 앉아 있었다니! 공포가 쭈뼛하며 일어선다. 이런 장면을 백주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대통령실은 “규정에 따라서–, 규칙에 의해서” 처리되었다는 역시 독재 형식에 딱 맞는 언어를 되풀이 강조했다.
그러나 이럴 수는 없다. 발언하는 자의 입을 틀어 막고 허리 춤을 움켜쥐고 달랑 들어내는 이런 폭력배적 활극은 과거 색바랜 청바지 복장을 하고 ‘와!’ 하는 고함소리를 내세워 시위대를 덮쳤던 백골단의 전유물이었다.
문제는 지난번 전주에서의 사태(진보당 강성희 의원)가 정확하게 되풀이 되었다는 점이다. 되풀이 되었다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묵시적 명시적 재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지난번 사건도 그렇지만 이번 카이스트 사고야 말로 오히려 윤 대통령에게는 ‘기회’였을 수도 있다.
올해 R&D 예산의 삭감은 일부에서는 “정말 핀셋으로 잡아낸 듯이 정확한 수술이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던 일이었다. 불필요한 낭비와 갈라먹기 예산에 대한 삭감은 비대한 R&D에 대한 절대 필요한 정돈 작업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이날 졸업식 자리에서 1천억원의 과기분야 사업 예산을 새로 편성하는 것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졸업생의 항의는 대통령에게는 오히려 발언할 기회를 주는 타이밍이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상황에 맞는 언어로 차분히 답변해 나갔더라면 너무도 좋을 뻔한 장면이었다. 언론과 참석자들이 ‘너무도 멋지게 짜고 쳤다’고 말해야 할 참이었다. 졸업생이 떠들며 시위성 발언을 계속했다면? 아마 청중들이 ‘우~!’하면서 막았을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무지몽매의 상황 속에서 써준 것만 읽는 어설픈 연극이 상황과 무관하게 계속 공연되었다는 것이다. 전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그 거칠고 어리석은 극좌적 인물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 질문을 듣는 척만 해도 충분히 ‘윤석열 민주주의’의 명장면이 될 것이었다.
윤 대통령이 그런 돌발적인 장면과 질문들을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도자를 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피습 당일 보여준 ‘서울 줄행랑’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였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 있다.
민주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그들은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런 정도의 자질과 행동 특성을 가진 인물들이 정치지도자로 용인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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