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벗어난 야생동물들…생태계 교란·질병 전파 우려
파충류 평가 결과 7%는 ‘수입 불가’…내달까지 포유류 등 연구도 착수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작년 5월 경북 김천시 농수로에서 체중이 6㎏에 달하는 거북이 발견됐다.
늑대처럼 길게 늘어진 꼬리를 지닌 늑대거북이었다.
개인이 키우다 유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체였다.
어린 늑대거북은 등갑이 10㎝ 미만으로 작지만, 성체 늑대거북은 등갑이 50㎝까지도 자란다. 야생에서는 체중이 39㎝에 달하는 개체가 발견된 적도 있다.
몸집이 커지면 키우기 어렵다 보니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2019∼2021년 3년 동안 자연생태계에서 발견된 늑대거북이 15마리인데, 작년 4월 한 달 동안만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늑대거북 9마리가 이송됐다.
늑대거북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Ⅱ에 등재돼 수출입국 허가를 받아야 거래할 수 있는 귀한 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생태계 교란종이기도 하다.
국내 하천 생태계 최강자로 꼽히는 왜가리일지라도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깨물어 공격하는데, 치악력이 호랑이와 비슷한 400㎏ 정도다. 이런 영역성과 공격성을 감당할 수 있는 천적이 국내에는 아직 없다.
18일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는 이렇듯 늘어나는 반려동물 유기로 인해 발생하는 생태계 파괴와 인수공통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야생동물 수입 백색목록을 만들고 있다.
2022년 12월 개정된 야생생물법에 따라 2025년 12월 도입되는 백색목록은 법정 관리를 받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야생동물을 ‘지정 관리 야생동물’로 분류하고 수입·판매·보유를 규제하는 제도다.
멸종위기종이나 생태계 교란종 등으로 분류되지 않아 법정 관리를 받지 않는 야생동물은 3만2천880종 가운데 1만9천670종(59.8%) 정도다. 개체수로 보면 85% 정도가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고 한다.
야생동물 수입 관리가 필요한 주된 이유는 인수공통감염병 확산 방지와 생태계 보호에 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에 반려동물로 도입된 중남미 출신 양서류 사탕수수두꺼비는 최근 플로리다주에서 흔하게 발견되고 있으며, 강한 독성으로 인해 생태계에 위협을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탕수수두꺼비는 1935년 호주에 사탕수수를 먹는 딱정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도입됐다가 호주 민물악어를 멸종위기에 몰아넣은 전력이 있다.
2022년 미국에서는 ‘비어디’로도 불리는 턱수염도마뱀이 사람에게 살모넬라균을 전파한 사례가 보고됐다. 이 사례는 감염자 57%가 5세 이하 어린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았다.
먼저 백색목록을 도입한 국가로는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크로아티아, 룩셈부르크, 몰타 등이 있다.
환경부는 다음 달까지 백색목록 작성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올해 안에는 목록을 완성할 계획인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분류군인 파충류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마무리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작년 11월 제출한 ‘지정관리 야생동물 백색목록(파충류)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동안 수입된 파충류는 연평균 26만4천240마리다.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작년 4조5천억원에서 2027년 6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거래되는 파충류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종수로는 국내외에 유통되는 파충류는 1천17종이 있으며, 이 중 428종(42.1%)은 아무런 법적 관리를 받지 않는 백색목록 후보군이었다.
전문가 평가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백색목록에 포함해도 되는 종이 88종(20.6%), 검토가 필요한 종이 311종(72.7%), 포함할 수 없는 종이 29종(6.8%)인 것으로 나타났다.
‘불가’ 목록에는 늑대거북과 근연종인 ‘남미늑대거북’, 남생이와 비슷하지만 공격성이 강하고 질병전파 가능성이 있는 ‘북미늪거북’, 전반적인 종 정보가 부족한 ‘놀란도마뱀붙이’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무자치도 국내에 자생하는 개체와 교잡해 유전자 다양성을 떨어트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불가 판정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백색목록은 ‘동물복지와 사육 난이도’, ‘안전성’, ‘공중보건 위해성’, ‘생태계 위해성’, ‘종 보전 위해성’ 등 6개 기준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백색목록은 ‘종’보다 넓은 범주인 ‘속’ 단위에서 작성될 가능성이 크다. 지나친 규제로 시장이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를 동물판매업계가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색목록에 없는 야생동물을 거래할 경우 야생생물법 제70조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주인이 없어진’ 야생동물들은 충남 서천군과 전남 구례군에 건립 중인 보호시설에 머무르게 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률적으로 수입·판매·보유를 금지하게 되면 업계에 타격이 클 것이기 때문에 복합적인 시각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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