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평균 수명이 늘어난 상황에서 ‘인생 2막’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평균 퇴직 나이는 49세. 기대수명대로라면 퇴직 후에도 무려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인생의 한 과정으로 겪어야 하는 인생 2막. 조선비즈는 인생 2막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잠’을 팔 결심을 굳힌 대학 동기 2명은 곧장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30대 젊은 가장(家長)의 아내들은 묵묵히 이들이 지지했다. 지인들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와 세계 1위 생활용품업체 P&G를 그만두겠다는 소식에 만류하기에 바빴다.
공동창업자인 용현석 대표와 손종화 부대표는 2018년 퇴직금 3000만원을 털어 매트리스 업체 ‘슬라운드’를 설립하며 함께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는 온라인 매트리스 사업이 활황이었다. 일부 기업은 기업공개(IPO)까지 했다. 국내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이 독과점 형태로 운영 중인 만큼 온라인을 통해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매트리스라는 제품 특성상 오프라인 매장은 필수다. 체험이 중요한 제품인 만큼 소비자들은 구매에 앞서 누워보고, 만져보며 신체 감각을 곤두세우며 고심한다.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구매를 위한 필수 조건인 셈이다.
어렵사리 2020년 서울 한복판에 쇼룸을 열었다. 영업부터 배달까지 공동대표가 도맡았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다. 한 달 예약 방문객이 2명까지 곤두박질쳤다. 손종화 부대표는 “당시 추세라면 추후 방문객이 전혀 없을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손 부대표는 몸담았던 P&G가 보유한 여러 브랜드를 떠올렸다. 이참에 매트리스에 더해 침구류로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용현석 대표는 “고민만 한다고 해서 될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분야별 전문가 영입을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국내 침구 업체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과 화장품 브랜드 디자인 총괄, 이커머스 플랫폼 총괄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합류했다. 자연스레 초창기 젊은 직원과 베테랑들의 신구(新舊) 조화가 이뤄졌다.
인력 문제를 풀어내자마자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침구 생산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용현석 대표는 “침구 시장 진입장벽은 완벽한 품질관리가 정말 힘들다는 점”이라고 했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슬라운드는 원사를 직조해 원단을 만들고, 이를 봉제해 침구를 제작하는 전체 생산과정을 내재화했다. 모두 과정을 국내서 진행해 중국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는 경쟁 업체와 차별화를 꾀했다.
어렵사리 생산한 제품 판매 전략은 ‘진심’이었다. 홍보 예산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홈페이지에 제품 개발과 생산 과정을 담은 글을 한 땀 한 땀 써 내려갔다. 손종화 부대표는 “침구류는 대부분 선택 기준 없이 제품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며 “제품이 왜 좋은지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면 이해도 높아지고 구매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한 번 구매한 소비자의 재구매도 이어졌다. 계절마다 교체하는 침구류 특성상 브랜드 충성도는 안정적인 매출 성장과 직결한다. 퇴직금 3000만원을 넣어 세운 회사가 7년 차에 1000배 뛴 매출 300억원을 기록한 비결이다.
무엇보다 슬라운드의 가장 큰 강점은 ‘자생력’이다. 설립 이래 단 한 차례도 외부 투자를 받지 않았다. 성장 과정에서 달콤한 제안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용현석 대표는 “국내서는 투자 유치가 스타트업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외부 투자로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손종화 부대표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호흡에 맞게 좋은 제품을 잘 만들어 100년 이상 가는 브랜드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는 최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슬라운드 사무실을 찾아 용현석 대표와 손종화 부대표를 만나 회사 성장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들과의 일문일답.
─회사와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용현석 대표 “슬라운드는 기능성 침구 1위 브랜드다. 잠과 관련한 브랜드를 판매한다. 현재 온라인 고가 침구 브랜드에서는 선두 주자다. 가장 큰 특징은 지난 2018년 설립 이후 외부 투자 유치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용현석 대표 “고려대 경영학과 05학번 동기다. 대학 시절 창업동아리 활동을 하며 창업에 관심을 가져왔었다.”
─창업은 어떻게 결심했나. 주변 만류는 없었나.
용현석 대표 “창업 이전에는 맥킨지에서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컨설팅을 담당 업무를 했었다. 창업 이전은 결혼을 앞둔 시점이었기도 하다. 여러 가족 중 예비 배우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다행히 많이 지지해 줬다. 생활비 일부를 빼두고 퇴직금 3000만원을 넣어 창업을 결심했다.”
손종화 부대표 “(P&G를) 퇴사한 날이 사실 결혼 1주년이었다. 우리 배우자도 응원을 많이 해줬다. 다만 주변 지인 대부분은 반대했었다.”
─왜 하필 침구 업체였나.
용현석 대표 “당시 미국에서 매트리스 온라인 판매가 잘 됐다. 상장 사례도 있었다. 사업을 처음 하다 보니 막연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3년 정도 매트리스 사업을 했는데, 그때 코로나19가 발생하며 회사가 어려움에 부닥쳤다. 여러 변화를 모색하다 침구 쪽으로 확장해 보기로 판단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실내 생활이 늘면서 집에서 온라인을 통한 소비가 급격하게 늘었다.”
손종화 부대표 “초기 매트리스 사업 확장을 위해 어렵사리 쇼룸을 열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다. 당시 3월 온라인을 통해 예약을 받았는데 예약자가 2명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예약자가 0명이 되겠구나 싶었다. 고속 성장을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형 브랜드들이 많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나.
용현석 대표 “침구는 생산이 힘들다. 원단을 제작하고, 염색하고, 봉제하는 과정들이 만만치 않다. 생산을 위한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외부에 맡기려면 매출 200억원은 되어야 한다. 침구만 놓고 보면 매출 200억원을 넘기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그 규모만 넘어가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침구 종류별 특징은.
용현석 대표 “기술별로 제품군을 구성했다. 주로 계절별로 차별화한다. 봄에는 아토피나 비염 환자가 쓸 수 있는 알레르기 차단 기능을 갖춘 침구류가 주력이며 여름과 겨울에는 각 기온에 맞춘 소재 제품군으로 구성한다. 원단부터 제작까지 모두 내부에서 해결하고 있다.”
─주요 제품은.
용현석 대표 “계절에 따라 주요 제품군이 바뀐다. 비염과 알레르기가 많이 발생하는 봄가을에는 ‘알러메디’라는 알레르기 관리 제품이 있고, 더위 때문에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여름철에는 ‘에어쿨’이라는 냉감 소재 상품이 있다. 겨울에는 보온 기능을 강화한 신소재를 활용한 ‘히트라인’이라는 상품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주요 타깃층은.
용현석 대표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다. 대표 제품이 알레르기 차단 기능을 갖춘 알러메디인데, 부부용으로 침구를 샀다가 아이용을 추가로 구매하는 소비층이 많다.”
─침구도 교체 주기가 있나.
용현석 대표 “물론이다. 침구 교체 주기는 짧은 편이다. 매트리스는 통상 7~10년 쓰는 반면, 침구는 계절별로 교체하고, 같은 계절에도 교환하기도 한다. 통상 2~3년 주기로 교체하는 것 같다.”
─사람 외 반려동물을 겨냥한 제품 출시 계획도 있나.
손종화 부대표 “최근 반려견과 반려묘 등 반려동물 시장 증가 추세가 신생아보다 큰 편인 것 같다. 주력 제품 특징이 알레르기 관리인 만큼 동물과 많이 연결된다. 원단에 따라 반려동물 털이 침구류에 붙지 않는 제품도 있다. 현재도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고객들이 제품을 많이 구매하고 있다.”
─원단 발굴 작업은 어떻게 하나.
손종화 부대표 “제품 콘셉트에 맞게 따로 개발한다. 예컨대 알러메디 제품은 각종 먼지와 진드기들이 원단에 투과하면 안되기 때문에 자체 관리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통과하는 상품만 출고시키고 있다. 또 솜이 빠지는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 원단의 품질을 높여나가는 작업은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 시즌마다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는 작업이다. 최근에는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기능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예뻐야 더 많은 고객들이 찾아줄거라 믿는다.”
용현석 대표 “침구 제작의 원리는 얇고 튼튼한 실을 얼마나 촘촘히 짜낼 수 있느냐이다. 또 색을 입히고, 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간격이 넓어질 수 있다. 제품 생산 과정 모두가 기술집약적이라고 보면 된다.”
─피부와 직접 닿는 제품들이다. 인증에 어려움은 없나.
손종화 부대표 “한국 법규상으로는 피부에 닿는 제품이라고 해서 별도로 인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출을 해야 하는 만큼 독일 인증 기관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인증이 까다로운 곳에서 인증을 받고 있다.”
용현석 대표 “국내 판매 시 인증은 크게 의미가 없지만, 수출을 위해서는 필수다. 미국과 대만 수출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했다.”
─제품 생산 과정은 어떻게 되나.
용현석 대표 “제품 기획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내부에서 전담하고 있다. 매출은 거의 회사 온라인몰에서 발생한다. 다른 브랜드들은 유통 플랫폼을 주로 활용하는데 자체몰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인력 구성은.
용현석 대표 “2021년까지는 창업 구성원을 중심으로 운영했었다. 그러다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국내 침구 업체에서 20년 이상 근무하신 분과 화장품 브랜드 디자인 총괄, 이커머스 플랫폼 총괄 등 팀장급 구성원을 확충했다.”
손종화 부대표 “이전까지는 제가 생산을 담당했고, 판매는 대표가 주로 하는 식으로 업무분장을 했다. 둘 다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각자 잘하는 역할을 맡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어 전문가분들을 모셨다. 현재 구성원이 40명 정도 되는데 초기 같이 성장한 주니어급 직원들과 조화가 잘 이뤄지고 있다. 초기 구성원 중에는 인턴으로 들어와 현재 그룹장을 맡고 있는 인원도 있다.”
─전문가 영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용현석 대표 “연차가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회사 재무 상황과 성장 잠재력을 관심있게 보시는 것 같다. 주변에 여러 기업이 무너지는 것도 보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견조한 성장을 이어가는 회사들을 선호했다. 특히 투자금 끊겼을 때 회사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적은 매출이라도 단단하게 지속하는 회사가 여러 면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향후 IPO도 염두에 두고 있나.
손종화 부대표 “온라인 기준으로는 점유율 1등이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경우 5년 이상 더 필요할 것 같다. 최근 들어 기존 오프라인 업체들의 매출이 조금씩 하향세를 나타내고 있다. IPO 시기는 온오프라인 점유율 1위를 기록했을 때로 잡고 있다.”
용현석 대표 “과거 투자 일을 많이 했었다. 투자자가 원하는 타임라인과 회사 성장 타임라인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브랜드 사업은 오늘 적자면 내일도 적자다. 최대한 투자 없이 자체적으로 성장하자고 판단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제품 개발, 생산 과정을 담은 게시글을 공유하고 있다.
손종화 부대표 “매트리스와 침구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잘 모르기도 하고 대부분 기준 없이 제품을 고른다. 우리 제품이 왜 좋은지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면 고객 이해도도 높아지고, 구매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해서 시도했다.”
용현석 대표 “사실 초기에 마케팅 비용을 집행할 여유가 없었기도 하다. 당시 출시한 매트리스가 150만원이었다. 적은 가격이 아니다. 누가 선뜻 신생 브랜드를 150만원을 주고 사겠느냐. 자세한 개발 과정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객들이 투명하고 진정성 있다고 느낀 것 같다.”
─침구류 구매 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손종화 부대표 “구매하려는 침구의 용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가장 잘 팔리는 알레르기 관리 제품을 기준으로 하면 우선 먼지 발생 여부를 봐야 한다. 일반 면 원단을 사용한 제품은 먼지가 붙는다. 이후에는 입자가 얼마나 작은지를 살펴보는 게 좋다. 진드기가 들어갈 틈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 것이다. 두 요건이 충족했다면 소음을 느껴봐야 한다.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 만들면 패딩처럼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날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용현석 대표 “한국은 투자 유치로 성장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외부 투자로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변에서 많은 회사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문을 닫는 사례를 봐왔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자생적으로 크는 기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손종화 부대표 “단기적으로 반짝하고 지는 브랜드가 아닌 오랫동안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 영속적으로 살아남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 호흡에 맞게 좋은 제품 잘 만들어 100년 이상 가는 브랜드가 되도록 하겠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