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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순용 하이젠버그 대표 “반도체 산업도 트럼프 리스크…첨단 기술 초격차로 버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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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5세대 HBM, 'HBM3E'의 모습. SK하이닉스는 제25회 반도체 대전에서 HBM3E를 관람객들에게 공개했다. /전병수 기자
SK하이닉스의 5세대 HBM, ‘HBM3E’의 모습. SK하이닉스는 제25회 반도체 대전에서 HBM3E를 관람객들에게 공개했다. /전병수 기자

장기간 불황을 면치 못하던 반도체 경기가 작년 말부터 살아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고부가가치 메모리 판매 증가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상승하면서 1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56.2% 증가했다.

반도체는 한국경제의 기둥이다. 한국 수출의 20%를 반도체가 담당한다. 반도체 경기 회복은 한국경제의 반등 모멘텀이 왔다는 신호이다. 그렇다고 막연한 기대감만 갖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과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반도체 전쟁’을 벌이면서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간의 치열한 차기 대권 경쟁도 불안 요소로 꼽힌다.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미·중 간의 ‘칩워’는 더욱 고조될 것이고, 이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내 산업 육성 지원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권순용 하이젠버그 대표가 2월 5일 서울 합정동 위즈덤하우스 회의실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지향해야 할 반도체 정책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권순용 하이젠버그 대표가 2월 5일 서울 합정동 위즈덤하우스 회의실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지향해야 할 반도체 정책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과학기술분야 뉴미디어 기업인 하이젠버그의 권순용(32) 대표는 “최근 반도체 노광장비 분야에서 절대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ASML의 장비가 미국에 우선적으로 배정되고 있다”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제조업 우선 정책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할 경우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산업정책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과학·산업분야 유튜브 채널 ‘에스오디’(SOD)를 운영 중이다. ‘순용’을 영어로 풀어 쓴 ‘Soft Dragon’에서 따온 채널명이다. SOD 채널은 과학과 산업기술 동향을 빠르고,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게 특징이다. 구독자 수도 66만명이 넘는다.

반도체학 석사 출신인 권 대표는 정부출연연구기관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에서 2019년까지 반도체 패키지 소재를 연구했다.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최근 들어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물론 엔비디아, ASML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을 하고 있다.

권 대표는 지난달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글로벌 현안과 과제를 모아 ‘K 반도체 대전략’이라는 신간 서적을 냈다. 3년 전 출간한 ‘반도체, 넥스트 시나리오’가 반도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이번에 낸 책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해외 주요국과 한국의 지원 정책을 비교·분석하며, K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정책 제언에 집중했다.

권 대표는 지난 5일 서울 합정동 위즈덤하우스 회의실에서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 대해 “장기적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에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10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반도체법 확대 조치를 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넥스트 스텝은 인공지능 구현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중(對中) 수출 규제가 될 것”이라면서 “HBM 반도체의 기술패권을 가진 한국 기업으로선 중국의 HBM 수요를 잃는 게 매우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중 칩워 국면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대응 방향으론 “당장은 미국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반도체 전쟁에 우방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법은 단순히 반도체 분야에 관한 법이 아니라,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그리는 미래 비전의 핵심 열쇠”라며 “미국은 반도체 설계를, 일본은 소재 공급을, 한국과 대만은 양산을 담당하는 게 미국의 그림이라고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권 대표가 제시한 해법은 ‘초격차’ 확보다.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기술로 만든 제품이라면 모두가 쓸 수밖에 없다”면서 “메모리반도체 등 기존에 강한 분야를 넘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새로운 분야에서도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권 대표는 ‘기업에 대한 정책 지원’과 ‘인재 양성’ 두 가지를 꼽았다.

권 대표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주요국의 정책 지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국은 2021년 연방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자금을 직접 투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향후 8년간 500억달러(한화 56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2022년에는 반도체법을 발효하며 자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2800억달러를 예산으로 쓰겠다고 했다.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주정부들도 각각 반도체법을 제정해 예산 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은 2차례에 걸쳐 60조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다. 2025년까지 반도체 산업 육성에 1조위안(182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중 견제를 강화하자 국내 산업을 지키기 위해 지원을 더 늘렸다. 일본도 작년 10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기존 책정한 2조엔에 3조4000억엔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했다. 한화로 50조원 규모다.

권 대표는 “미·중·일이 이렇게 머니 레이스를 펼치는데,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라며 “작아도 너무 작다. 반도체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최근 3년간으로 좁혀봐도 3조원을 겨우 넘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인 만큼 대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논리”라며 “한국의 반도체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 또한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세계 최고 수준의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순용 하이젠버그 대표가 2월 5일 서울 합정동 위즈덤하우스 회의실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발간한 신간 'K 반도체 대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권순용 하이젠버그 대표가 2월 5일 서울 합정동 위즈덤하우스 회의실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발간한 신간 ‘K 반도체 대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인재 관리와 양성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그는 “과거에는 인재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했다면, 이제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라며 “인재 양성과 관리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액의 연봉을 안겨주며 기술진을 데려가는 중국의 행보도 무섭지만, 우리가 연구진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권 대표는 특히 윤석열정부가 2024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추진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석박사 등 전문가들 입장에서 당연히 ‘고액 연봉’도 좋지만, ‘안정적인 상황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크다”면서 “R&D 지원 예산 삭감 자체가 기술 개발에 미친 영향보다 ‘내가 하는 연구에 대한 지원이 언제 종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확산시켰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보기에 반도체 산업은 그리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인재들은 의대로 간다. 석박사 과정을 밟은 우수 자원들은 국내 산업계에 투신하기보다 북미 등 외국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걸 선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정부는 이처럼 빠져나가는 고급 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인력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국내 기술자들의 애로를 파악하는 게 인력 육성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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