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국회의원들 걷거나 자전거 타고 출근”
“사무실은 한국의 10분의 1도 안되는 3∼4평”
“법안은 4년 재임중 1인당 70건…1년에 18건”
“한국 국회의원은 탈법화…자체 개혁 불가능”
[※ 편집자 주= 최연혁 스웨덴 린네 대학교 교수 인터뷰는 분량이 많아 세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 기사가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인터뷰 기사도 조만간 송고할 예정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한국 국회의원 특권은 180여가지라고 하는데, 스웨덴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런 것이 아예 없습니다. 국회의원은 봉사와 희생의 직업이기에 의원들 스스로 그런 걸 누리려 하지 않고, 국민도 그런 특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 대학교 교수는 8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 교수는 스웨덴 국회의원 연봉은 한국 돈으로 1억원 정도인데, 사회적으로 중상위권 수준이지만, 24시간 근무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저임금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검은색 대형 승용차를 즐기는 한국 의원들과 달리 자전거나 버스를 타고 출근하며, 의원실은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3∼4평 수준이고, 의원 보좌진은 아예 없다고 했다.
스웨덴 의원들은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을 탈 수 없으며, 공항 귀빈실을 굳이 이용하고자 한다면 일반 시민처럼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지방 의원들은 무급 봉사직이어서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이나 주말에 회의를 열어 이슈에 대해 논의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한국 국회의원의 월급을 600만∼700만원으로 줄이고, 9명이나 되는 보좌진도 없애고, 비행기 비즈니스석과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는 등의 모든 특권도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미 탈법화환 국회의원들에게 스스로 개혁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전문가와 시민 등이 참여하는 상설기구를 만들어 국회의원 특권 문제를 포함한 정치 개혁을 논의하고 결정토록 해야 한다”고 했다.
1959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최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웨덴어 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정치학과를 마치고는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스웨덴 쇠더른턴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일했고, 잠시 국내에 들어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이후 스웨덴에 다시 돌아가 모교인 예테보리대학에서 ‘정부의 질’ 연구소 객원교수로 있다가 2016년부터는 스웨덴의 린네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는 연구교수로 연구년을 얻어 한국에서 활동 중이다.
— 고향은 어디인가.
▲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5남 1녀의 막내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나.
▲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부모님 모두 소박하신 분이었다. 부모님의 삶을 통해 나는 항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배웠다.
—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 나는 충주에 있는 남한강초등학교, 충일중학교, 충주고를 나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전해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고는 마을의 반장 아주머니에게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언제 입학식이 열리는지를 자꾸 물었고,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반장 아주머니한테 졸랐다고 한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어서 학교의 축구 대표, 스케이트 대표로 뛰기도 했다. 공작반, 서예반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학구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 형들은 나에게 교수가 되라고 말하곤 했다.
— 학창 시절 서클 활동은 했나.
▲ 고교 2학년 시절 교련 선생님이 지금으로 치면 학생회장 격인 연대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나는 공부를 위해 부연대장직을 맡겠다고 했다. 학생회장 활동을 하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방송반 활동을 했다. 교내 신문사 학생 등과 함께 서울 시내에 나가 시위를 했던 기억도 있다.
— 외대 스웨덴어과에 들어갔는데, 그 과를 선택한 이유는.
▲ 나는 테니스도 좋아했는데, 당시에 윔블던 테니스대회 우승자가 뵌비리라는 스웨덴 선수였다. 그는 긴 머리를 밴드 하나로 묶고 당시 테니스의 악동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존 매켄로와 풀세트 경기를 펼쳤다. 그의 경기 스타일과 우승이 나를 열광케 했다. 스웨덴이 대표적 복지국가라는 점도 내가 그 학과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영국의 복지라면, ‘엄마 뱃속에서 무덤까지’가 스웨덴의 복지 개념이다. 임산부 때부터 지원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스웨덴어과에 진학한 것은 남북통일에 대한 관심도 반영된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통일하려면 스웨덴 방식의 중립국 외교가 괜찮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갖고 있었다.
— 1988년 스웨덴으로 가서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어떤 느낌을 받았나.
▲ ‘정말 천국이라는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기에 우리 형제들은 충주 관사에서 살면서 물을 데워 목욕하곤 했는데, 스웨덴에서는 학생 아파트인데도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주거시설과 주변 시설이 깨끗했고, 주민들은 공원에서 한가롭게 산책했다. 나는 한국과 비교되는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 나는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하면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 스웨덴에서 학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완전히 무료다. 생활비 지원금도 받는다. 그렇지만 나는 생활비에 보태 쓰기 위해 노인 요양시설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논문심사를 거쳐 박사 연구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마치고는 스웨덴의 지원을 받아 영국의 런던정경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후과정을 보낼 수 있었다. 스웨덴은 이렇게 외국인에게도 박사후과정을 지원해준다. 외국인도 차별하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평등 의식과 인재에 대한 강한 투자 의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스웨덴에서 공부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나.
▲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고생했다. 박사과정 수업에서는 영어를 사용했는데,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이때가 나의 유학 생활에서 최대 고비이기도 했다. 아무리 공부해도 낙제점을 간신히 면하는 정도였으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 공부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나.
▲ 나는 박사과정 준비를 위해 스톡홀름대학 정치학과에서 수업을 들었다. 그때 수업 시간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 건네주던 친구가 있었다. 크리스티안 수히코라는 핀란드계 스웨덴 사람이다. 그 친구가 있었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일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올봄에 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멋진 서울과 전국 전역을 보여줄 생각이다.
— 스웨덴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나.
▲ 내가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스웨덴 사람들은 한국을 잘 몰랐다. 그들은 “일본에서 왔느냐?, 아니면 중국이냐?”고 묻고는 아니라고 하면 “그럼 어디냐?”고 했다. 한국이라고 하면 “북한이냐?”고 한다. 88올림픽 이후에도 이런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이를 결정적으로 바꾼 사람이 노래 ‘강남스타일’을 부른 가수 싸이다. 스웨덴 사람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정도다. 지금은 스웨덴 사람들이 이름만 보고도 한국 사람인지 알아본다. 이후에 방탄소년단(BTS)이 나왔고 삼성, 현대 등 한국 기업의 이름도 알려지면서 스웨덴 국민들은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 한국이 인권탄압, 노동 탄압 국가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하던데.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할 당시에 스웨덴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왜 노동 탄압과 인권 유린을 일삼는 국가가 올림픽을 개최하느냐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이미지가 지금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아직도 스웨덴 TV에는 한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하는 장면 등 자극적인 뉴스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 스웨덴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을 갖고 있나.
▲ 상당히 호의적이다. 한번 강대국이 돼봤던 나라들은 서로를 좋아하고, 무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사무라이 정신과 ‘마담 버터플라이’에 나온 게이샤를 좋아한다. 스웨덴 인기 초콜릿에 게이샤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다. 우리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일본만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것은 현실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최고의 인권국이 되고, 부패를 모두 청산하고, 강한 문화와 경제력을 갖게 된다면 달라질 것으로 본다.
— 스웨덴 정치인들은 어떤가.
▲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그 직업을 과시하지 않는다, 봉사와 희생의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다. 특권을 만들어 내고, 그걸 누리기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에게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 스웨덴에도 한국처럼 국회의원들에게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이 있는가.
▲ 그런 특권 조항은 없다. 의원들이 스캔들에 연루됐거나 기소가 되면 당연히 수사가 진행된다. 이때 국회 윤리위원회가 제적을 결정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불명예이고, 국민에 대한 기만이며, 약속을 어긴 것이니 의원직을 그만둔다. 한국 국회의원들처럼 잘못을 저지르고도 계속 국회에서 버티는 일은 없다.
— 한국 국회의원 세비는 1억5천700만원이고, 개인적 지원금 등을 포함하면 실질 연봉은 5억원이라고 하는데,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연봉은 어느 정도인가
▲ 한국 돈으로 월 900만원 정도, 연간으로 1억원가량이다. 스웨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달러로 한국의 두배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사회에서는 중상위권 수준이다. 게다가 하루 8시간이 아닌 24시간 근무한다는 것을 전제로 책정한 것이어서 저임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는 24시간 일하는 4년 임시직이라는 인식을 스웨덴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에게 연봉 외에 유류비 등 다른 지원금은 없다.
—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노동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 몇 년 전 나는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평균 법안 제출률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들은 4년 재임 기간에 1인당 79개 정도의 법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년에 평균 18건 정도다. 가장 많이 제출하는 국회의원은 400여개에 이른다. 1주일에 2개씩의 법안을 제출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 나라 국회는 상시 국회다. 항상 국회가 운영된다는 의미다. 이러니 매일 출근해야 하고, 하루 일정이 빡빡하다. 오전 7∼8시에 출근해서 오후 9∼10시에 퇴근한다. 상임위, 본회의, 입법 세미나 참석 등의 일정이 많기 때문이다.
— 스웨덴 국회의원들도 한국 국회의원처럼 골프나 만찬 회동을 즐기나.
▲ 주중에 골프를 치면서 업무 관련 상의를 하거나 저녁 시간에 술을 마시면서 정치를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매우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국회의원 중 4분의 1은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면서 재선을 포기한다. 스웨덴 국회사무처가 왜 의원들이 정치를 떠나려고 하는지 조사할 정도다. 그만큼 정치는 힘들고, 어렵고, 봉사하는 자리다.
— 스웨덴 국회의원은 몇 명의 보좌진을 두고 있나.
▲ 정책보좌관도, 비서도 아예 없다.
— 한국 국회의원은 보좌진 9명을 두고 있는데, 이는 많다고 봐야 하나.
▲ 한국은 많은 정도가 아니다. 너무 과도하다. 스웨덴 의원지원법에는 의원 1명당 국고에서 지원하는 액수가 정해져 있다. 그 돈은 반드시 의원 보좌관을 고용하는 데 쓰지 않는다. 정당이 보좌관 고용보다는 입법 세미나에 돈을 쓰겠다고 할 수도 있다. 한국처럼 상시로 보좌관이나 비서를 두지 않는다. 물론, 어떤 국회의원이 1∼2주 안에 3∼4개의 법안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면 1∼2명의 보좌진을 일시적으로 요청할 수는 있다.
— 일반적으로 스웨덴 의원실에는 국회의원 혼자 있나.
▲ 사무실에 전화하면 국회의원이 직접 받는다. 방문하면 본인이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어주고, 커피도 직접 끓여 준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을 한번 만나려면 보좌관에게 연락해서 “의원님이 시간이 있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럼 3∼4일 후에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고, 아예 안 오는 경우도 많다. 스웨덴에서는 의원과 직접 통화해서 일정을 바로 잡으니 훨씬 효율적 정치가 이뤄진다.
— 한국 의원실은 45평인데, 스웨덴 의원실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 스웨덴에도 의원실이 있는데, 3∼4평 정도로 아주 작다.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나는 연구를 위해 종종 스웨덴 국회의원실을 방문했는데, 가보면 책상과 의자, 탁자, 소파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일하다 피곤하면 쉬기 위해 침대를 갖다 놓는 경우도 있다.
— 스웨덴에서는 국회의원을 수행하는 사람이 없나.
▲ 스웨덴에서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어디에 갈 때 수행하는 비서가 없다. 내가 3년 정도 한국에서 교환교수로 일한 적이 있다. 한양대, 서울시립대, 건국대 등 3개 학교에 여름 강좌를 열어 리더십 강의를 했다. 그때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 20∼30명을 데리고 한국 국회에 가서 의원의 강의를 듣기도 했는데, 이때 의원 보좌진 4∼5명이 무더기로 들어와 앉아 있곤 했다. 학생들이 다녀온 후 수업 시간에 “뒤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사람들은 누구이며, 왜 의원 세미나에 참석했는지 궁금하다”라고 한다. 나는 국회의원이 과시하려 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 한국에서는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보좌진,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보좌진이 의원의 저녁 식사 장소까지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 나는 스웨덴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캠퍼스에서 강의하느라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보면 장관이 공항 내 의자에 혼자 앉아 노트북이나 서류를 보고 있다가 줄 서라고 하면 시민들과 함께 줄 서는 모습을 많이 봤다. 장관이라고 해서 맨 앞줄에 서거나 제일 먼저 비행기 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스웨덴에서는 장관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이런 혜택을 누리지 않는다.
— 한국 국회의원들은 공항에서 귀빈실, 귀빈주차장을 이용하는데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않은가.
▲ 스웨덴에서 그런 일은 없다. 만약에 귀빈실이라고 하는 VIP룸을 이용하고 싶으면 자기 돈을 내면 가능하다. 스웨덴에서는 보통 시민도 돈을 내고 VIP룸을 이용할 수 있다.
— 한국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비행기 비즈니스석, KTX 특실을 공짜로 이용하는데, 스웨덴에서는 어떤가.
▲ 스웨덴 의원지원법에 교통수단에 대한 조항이 있다. 경제성, 환경성, 안전성, 신속성을 충족하라고 한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서는 걸어오거나 자전거를 타는 의원들이 많다. 그다음에 10㎞ 이내인 경우에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같은 먼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갑자기 수도인 스톡홀롬으로 빨리 돌아오라는 주문이 있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때 비즈니스석은 안되고, 이코노미석만 가능하다. 저렴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조항 때문이다. 본인이 굳이 비즈니스석을 타고자 한다면 돈을 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공짜는 없다.
— 한국 국회의원들은 의원회관 내 목욕탕, 헬스장, 이발소 등이 공짜이고 내과, 치과, 한의원 등은 가족까지 무료인데, 스웨덴은 어떤가.
▲ 스웨덴에서는 그런 시설이 아예 없다. 다만 샤워실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오니 땀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샤워실은 국회뿐 아니라 스웨덴의 거의 모든 조직이 갖추고 있다. 내가 재직 중인 대학교에도 샤워실은 있다.
— 한국에서는 의원실마다 연간 1억원의 사무실 지원경비를 별도로 무조건 주는데 여기에는 차량 유지비, 유류비, 문자 발송비, 우편요금, 야간 식대 등이 포함돼 있다. 문자를 발송하지 않아도, 야근하지 않아도, 차량이 고장 나지 않아도 이런 돈을 정기적으로 준다. 국회 상임위원장에게는 연간 1억2천만원의 판공비를 주고, 1천200만원의 차량 유지비를 제공한다. 스웨덴에서도 이런 지원을 해주는가.
▲ 스웨덴에서는 그런 특권은 없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이런 특권을 의원한테 주지 않는다.
— 한국 국회의원들은 출판기념회를 열어 뇌물성 돈을 받는데, 스웨덴 국회의원도 이런 행사를 개최하나.
▲ 출판기념회라는 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책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내가 보기에는 국회의원 활동 중에 가장 먼저 금지해야 할 것이 출판기념회다.
— 한국 국회의원들은 경조사를 통해서도 검은돈을 받는데, 스웨덴에서는 어떤가.
▲ 스웨덴에서는 경조사에서 부조하는 문화가 없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그런 돈을 받지 않는다.
— 한국 국회의원들은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후보에 대한 사실상의 공천권을 행사하면서 후보당 2억∼3억원을 받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하는데, 스웨덴에서는 어떤가.
▲ 스웨덴에서는 중앙의 국회의원이 그런 공천권을 갖지 않는다. 지방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시민들에 의해 후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앙의 의원이 관여할 수 없고, 돈이 오고 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지방의원들은 무급 봉사직이다. 그러니 뇌물을 주고 지방의원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 지방 의원들은 월급을 아예 안 받고 일한다는 것인가.
▲ 고정적인 월급이 없다. 그래서 지방의원은 직업을 별도로 갖고 있다. 낮에는 자기 직장에서 생업을 위해 일을 하고, 밤이나 주말에 회의를 열어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물론 지방의회 관련 회의를 하면 교통비 등을 받지만 정기적인 급여는 없다. 지방의원 중에서도 상근직은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다. 이들은 전체 지방의원의 3% 정도다.
— 한국 국회의원 특권을 어떻게 해야 하나
▲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특권이 너무 많다. 그걸 누리게끔 법제화도 돼 있다. 국회의원 특권은 모두 없애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가 한 달에 1천300만원, 연간 1억5천700만원이라고 하는데, 월급 600만∼700만원, 연봉 7천만∼8천만원으로 줄여야 한다, 이 정도의 연봉은 한국에서 중상 정도의 수준이다, 차량 유지비를 비롯한 각종 보조금은 아예 주지 말아야 한다. 보좌관도 모두 없애야 한다. 법안을 만들 때 의원이 국회도서관에 직접 찾아가고, 필요하면 입법 조사처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 세비는 도시근로자 평균 임금인 400만원, 한국의 중위소득인 500∼600만원 정도로 낮추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기피 업종이 돼서 너무 힘들면 능력이 있고 봉사하고 싶은 사람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중상 정도의 급여는 줘야 한다고 본다. 월 600만∼700만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 국회의원들이 세비를 대폭 줄이고, 특권을 모두 없애는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을까.
▲ 그들은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하지 않는다. 이미 탈법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국회 정개특위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이들은 개혁안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최악 또는 차악을 선택할 것이다. 선거구를 정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에게 맡기면 안 된다.
— 누가 정치 개혁을 해야 하나,
▲ 국민협의회 같은 조직이 상설화돼야 한다, 정치인, 시민, 판검사,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조직이다. 그들이 오랜 연구와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을 국회의원들이 흥정거리로 삼지 않고 바로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취재지원 김수지ㆍ김민수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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