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서 모처럼 제대로 된 인재를 영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이같은 평가의 주인공은 영입 인재 11호로 발탁된 이지은 전 총경이다. 영국 캠브리지대 범죄학 석사 수료, 재직 중 변호사 자격증 취득, 최초의 지구대장 출신 총경 같은 스펙보다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의 ‘경찰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 전 총경은 22년 경찰 재직 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강간 사건이 발생한 장소 바로 앞에 집을 마련했을 만큼 그는 경찰의 업을 자신의 삶 자체에 녹여냈다. 성과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렇게 승승장구해 총경 계급으로 승진했지만 곧 좌천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경찰국 신설에 맞서 전국 총경회의를 주도했다가 경정급 보직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났다. 그 대신 입법 활동을 통해 경찰에 보탬이 되고자 결심했다.
민주당은 인재영입식에서 이 전 총경을 검찰개혁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투사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지은’이라는 인물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 이 전 총경은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과 경찰’로 설명한다. 경찰 조직에 대한 애정만큼, 여성 이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다.
이 전 총경은 재직 중 근 몇 년 새 퍼진 ‘여경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찰 내 젠더연구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연구회 구성원들과 함께 <여성, 경찰하는 마음>이라는 책을 펴냈다. ‘대림동 여경 논란’으로 여경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을 땐 언론 인터뷰에 적극 응해 여경 혐오 문제를 바로잡고자 했다. 이같은 활동 때문에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영입 인재 발표 직후 이 전 총경을 ‘페미니스트 검증대’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검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검증할 것도 없이 나는 페미니스트”라며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일선에서 직접 지켜본 여성 대상 범죄들의 양상을 토대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일부 보수 정치인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마찬가지로 현장의 경험을 근거로 병역 이행 여부와 경찰 업무 능력 간에 상관 관계가 부족하다며 개혁신당의 총선 공약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 이슈에 관한 소신을 당 내에서도 실천하겠다고 했다. 저서를 통해 과거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였음을 고백하기도 한 그는 당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눈 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며 정치 입문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 전 총경의 인터뷰 전문이다.
“강간 사건 일어난 집 바로 앞 이사…강도가 우리 집에 왔으면 했다”
프레시안 : 경찰을 직업으로 선택한 동기가 궁금하다.
이지은 : 어렸을 적 경찰대학 제복을 봤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경찰대학을 나오면 경찰이 된다는데 나쁜 사람 혼내주는 것도 멋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경찰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멋있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 이어져 왔다. 결국 제복은 벗었지만, 경찰에 대한 나의 콩깍지는 마지막까지도 벗겨지지 않았다.
프레시안 : 재직 기간 동안 주로 민생 치안 부서에서 일했는데, 오랫동안 현장을 지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지은 : 총경 승진을 하려면 보통 본청이나 정책부서에 간다. 나도 오라는 곳이 있었지만, 내가 처음 생각한 경찰의 모습과는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들 경찰청 갈 때 나는 지구대에 지원했다. 실제로 현장에 가니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장형 리더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기도 했지만, 젊은 지휘관이 안전한 내근으로 가려는 세태들이 있어서 그걸 바꿔보고 싶었다. 내가 새로운 길이 되고 싶었다.
프레시안 : <여성, 경찰하는 마음>에서 “지구대에 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은 관내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유흥가가 밀접한 주택가, 정확히는 강간 사건이 일어난 현장 바로 앞집으로 이사했다. 범죄를 업무가 아니라 생활로, 경찰이 아닌 주민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싶었다”고 썼다. 쉽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
이지은 : 나도 혼자 살다 보니 항상 대로변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집들이었다. 그런데 처음 지구대에 발령받은 곳은 빌라가 많은 원룸촌이었다. 뭐든 자기 일이 아니면 고민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서, 범죄를 업무가 아니라 나의 일상으로, 그리고 스스로 경찰이 아닌 주민의 입장에서 고민해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 전 강간 사건이 일어난 집 바로 앞으로 이사한 것이었다.
지구대에 있으면서 마지막까지 든 생각은 우리 동네에 강도가 들면 안 되겠지만 혹시 강도가 든다면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맨손으로 제압하는 게 어렵더라도 도주 방향이나 인상착의를 보고 빨리 정보를 전파해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죄 사건을 겪으면 트라우마가 오래 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일반 시민들보다는 트라우마가 적을 것이기 때문에 만약 반드시 와야 한다면 우리 집에 와라, 그런 생각을 했다.
“물리력은 경찰 업무의 일부, 경찰 조직 모르는 바깥에서 여경 혐오”
프레시안 : 보통 ‘여성들은 힘이 약해서 험한 일에 맞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다. ‘여경 무용론’도 이런 인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약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이지은 : 기본적으로 여성 경찰관들이 운동을 좋아한다. 애초에 그런 분들이 경찰에 지원한다. 그래서 다같이 헬스하고 주짓수 배우고, 저도 킥복싱을 배웠다. 근데 그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경찰은 꼭 물리력이 필요한가. 생각보다 실제로 물리력을 쓰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구대 일을 예로 들면, 여성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강한 힘이 필요한 것은 20건 중 1건이 될까 말까다. 현장에는 여경‧남경 할 것 없이 다 나간다. 현장에 가면 누구는 싸움 말리고, 누구는 참고인 조사하고, 누구는 채증하고 이렇게 분업을 한다. 할 일이 여러 개라 여자는 힘이 약해서 일 못한다, 이런 게 없다.
내가 있었던 홍익지구대가 정말 바쁜 곳이었는데, 여경들도 똑같이 근무했다. 수사 배당도 똑같이 돌리고, 112 신고 들어오면 똑같이 나간다. 경찰이 갖춰야 할 여러 능력이 있다. 법률 상식도 필요하고 사람을 대하는 능력, 또 홍익지구대의 경우 외국어 능력도 필요하고 이런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데, 그중의 하나가 체력인 것이다. 경찰관 가운데에는 키가 작고 왜소한 남성 경찰관도 많다. 반면 체격 조건이 좋은 국가대표 출신 여경도 있다. 물리력은 연령에 따라서도, 개인 성향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왜 경찰은 남성에 적합한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 걸까.
이지은 : 예전에는 실제로 대부분의 경찰이 남자였고 여성은 극소수로 아주 제한적이고 보조적인 업무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여경을 혐오할 것도 없는 게 누가 봐도 남자가 1등 경찰, 여자가 2등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여경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직무 분리 경향이 옅어지다 보니 여경이 남경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할 논리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여경 혐오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최근이다. 체감하기로는 2019년 (페미니즘) ‘백래시’가 우리 사회에서 가시화되면서부터다. 우리 사회 전반에 자리잡게 된 여성 혐오 정서와 결합된 것이다. 특히 경찰 공무원에 지원하는 수험자 입장에서 여성이 경쟁자라고 생각하니 밀어내기 위해 편견과 오해를 재생산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경 혐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찰은 물리력을 사용해야 해서 남성에게 적합하다’는 게 주 논리인데, 경찰의 물리력은 적절한 장비나 교육을 통해 육성시킬 과제지, 특정 성별을 배제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경찰 업무 중 물리력은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경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한 당사자가 남성 경찰관이라고 해서 남성 경찰관의 자질 논란이 벌어진 적이 없다. 그런데 여성 경찰은 논란이 되면 여성 경찰이 무능하다, 열등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프레시안 : 경찰 내부에서는 여경을 폄훼하는 분위기가 없나.
이지은 : 내부적으로는 여경의 필요성을 모두가 공감하고 비교적 조화롭게 근무한다. 오히려 내부 사정을 모르는 바깥에서 여성 경찰관을 공격한다. 그래서 경찰 재직하면서 언론 인터뷰, 유튜브 방송에 나가서 여경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에 보니, 제가 나온 유튜브 영상을 캡처해서 악마의 편집을 해서 올린 글에 모욕적인 악플이 엄청 달렸다.
나는 여성혐오가 확산되고 심지어 개인에 대해 모욕까지 되는 경우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일일이 고소를 했다. 그 전에도 우리 여경 직원들이 언론 인터뷰한 내용에 대해 악플이 달렸는데 그 친구들은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고발을 안 했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중요하니까 그래서 그 악플러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번엔 ‘나한테 걸려라’ 하는 생각이었는데 마침 나에 대한 혐오 글이 올라와서 고소를 진행했다.
“여경 위축되면 경찰 전체의 역량 저하로 이어져…경찰청 나서야”
프레시안 : 여경 혐오 하면 빠질 수 없는 사건이 가짜뉴스로 판명 난 ‘대림동 여경 사건’이다. 논란이 불거질 당시 여경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어땠나.
이지은 : 처음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사람들이 여경이나 경찰에 대해 잘 몰라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잡으려는 마음으로 언론이나 유튜브 방송에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니 여경 혐오가 일종의 ‘장난’이었다. 온라인상에서 여경을 대상으로 분풀이하고 조롱하고 장난치고 노는 것이다.
여경들은 많이 위축됐다. 실제로 근무하는데 휴대폰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대놓고 ‘어이 여경, 똑바로 할 수 있어?’이런 말을 한다든지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났다. 문제는 여경이 위축되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 조직 전체의 역량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경찰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실제로 경찰청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나.
이지은 : 경찰 내 젠더연구회를 하면서 그런 요구를 하고 간담회도 했다. 그래서 경찰청 내 양성평등 정책관실이라는 부서가 하나 생겨서 거기서 연구 용역을 하기도 하고, 지속적인 교감을 통해 의견을 조회하는 절차도 생겨서 좀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경찰의 그런 노력이 성과를 내는 속도보다 여경 혐오가 확산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현장에서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실제로 받기는 힘들었다. 나는 나이도 있고 계급도 있어서 나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여경들은 위축되고 그런 조롱 때문에 현장을 두려워했다. 현장 근무 자체는 즐거운데 시민들한테서 사진 찍힐까 봐 걱정하고 조롱이 두려워서 현장을 떠나는 후배들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다.
프레시안 : 젠더연구회는 어떻게 결성됐나. 책 <여성, 경찰하는 마음>을 쓰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이지은 : 문재인 정부 때 경찰개혁위원회가 생겼는데 그 중에 인권 분과가 있었다. 거기서 경찰 조직 내 성평등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하면서 각 부서별로 여성경찰관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모인 9명이 주축이 돼서 젠더연구회를 만들었다. 처음 9명에서 지금은 70명으로 늘어났다. 경찰 내 자체적인 학습 동아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1년에 한 번씩 세미나도 하는데, 여경 혐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성평등한 치안 서비스, 성인지 역량 강화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자리다.
연구회를 하는 사이 여경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온갖 미디어에서 여경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니, 우리가 직접 이야기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연구회 구성원 중 23명이 각자 자기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쓰게 됐다. 남성 수가 압도적인 이 조직에서 여성 경찰관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경찰=남성’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그로 인한 불평등이 있는데도 왜 우리는 이곳에 들어왔는지, 그런 차별과 불평등을 어떻게 버텨내고 무엇이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지 이야기 써보자고 했다.
프레시안 : 여러 노력에도 여경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지은 : 일단 내부적인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근거 없는 여성혐오적 주장을 바로잡는 노력을 경찰청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경찰청장에 대한 잘못된 루머가 퍼지면 대변인실이나 홍보실이 재빠르게 바로잡지 않나. 그런데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와 루머에 대해선 개별적으로 대응을 해왔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개개인이 문제가 아니고 말했듯 경찰 전체 역량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 조직 차원에서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내부적으로도 성평등한 관점으로 제도와 문화를 더 바꿔야 한다. 여전히 조직 내부에 성별 분리 관행이 남아있다. 여성경찰관이 여성 성폭력 피해자 수사를 전담한다든지 ‘너는 여경이니까 여성‧청소년과에 가’라는 식의 관행, ‘현장은 험하니까 여경은 내근해’라는 온정적 가부장주의는 남경‧여경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요즘 여자 경찰관들은 똑같이 하고 싶어 한다. 외근하고 싶고 나서서 체포하고 싶어한다.
“소수자의 눈으로 바라본 범죄, 성과 가져다줬다”
프레시안 : 지구대 출신 최초의 총경이라고 들었다. 여성 경찰로서 총경이 되는 것도 어려운데, 그에 더해 지구대 출신 최초의 총경이 된 비결이 따로 있나.
이지은 : 내 자랑을 하려니 조금 쑥스럽지만, 일단은 성과를 많이 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적 약자는 아무래도 범죄나 재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성은 역사적으로 배제되어 온 존재이지 않나. 그런 마이너리티 멘탈리티가 있는 것 같다. 여성, 소수자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지금까지 채우지 못한 부분에서의 범죄 예방이나 범인 검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실제로 현장에서 그런 부분을 신경 썼다. 그런 생각이 성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함께한 직원들이 훌륭하게 도와준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개인 성과 최우수, 치안 성과 전국 1등, 베스트 지구대 2년 연속 선정, 대통령 표창 등 영광을 안게 됐다.
내가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운도 따라줬다. 내가 승진이 될 무렵 경찰 내부에서도 현장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래서 현장에서 승진을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현장에 있는 경찰관들은 지구대에만 있다 보면 결정권에서 배제된다는 소외감, 패배의식 같은 게 생긴다. 저는 지구대에서도 본청에서도 근무를 했으니, 본청에 있을 때 현장의 문제를 발굴해서 본청에 제기하고, 또 본청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지구대의 언어로 풀어서 설명했다. 그렇게 현장과 본청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경찰국 신설은 30년 전 후퇴하는 일…尹 정권서 경찰 실시간으로 망가져”
프레시안 : 경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을 텐데 결국 그 조직을 떠났다. 결정적인 계기가 현 정부의 경찰국 신설 때문이라고 들었다.
이지은 : 그렇다. 경찰국 신설은 경찰 조직을 3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조치다. 과거 내무부 산하의 경찰은 못된 짓을 많이 했다. 군부 독재의 손발이 돼서 고문 치사, 간첩 조작 같은 일을 권력의 도구가 되어 자행했다. 그래서 민주화 물결과 함께 1991년 경찰은 청으로 독립돼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그때도 정부가 경찰국을 남겨둬서 내무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하는 길을 남겨두려 했는데 시민사회가 거세게 반대해서 무산된 바 있다. 그때 분명히 법으로 내무부장관이 경찰국을 지휘할 수 없게 해뒀다. 정부조직법에 보면 행정안전부 장관의 업무 16가지 가운데 치안은 빠져있다. 그게 1991년 경찰청을 독립시킨 입법자들의 의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경찰국을 만들어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하겠다는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다수당이라 법을 고칠 수 없으니, 정부가 법 아래 행안부 장관 소속 청장 지위에 관한 규칙을 만들어 경찰 지휘권을 만들었다. 경찰 안에는 과거 경찰이 권력의 앞잡이로서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분들도 있지 않나. 그래서 총경들이 얼마나 찬성하는지 한번 의견을 모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의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만으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12.12 군사 반란’이라면서 회의를 주도한 이들을 좌천시켰다.
나는 경찰과 관련된 논란이 있을 때마다 항상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던 사람인데 윤석열 정권 이후 경찰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걸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비폭력 노숙 집회를 강제 해산시키는 모습, 인사권 오남용, 정권 편향적 수사 이런 것들을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보니 자포자기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좌천된 이후에도 8개월 더 근무를 했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
이지은 : 전남 112 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사실 큰 불만이 없었다. 내가 원래 긍정적인 편인 데다 경찰의 모든 역할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일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천된 와중에도 치안 만족도 전국 1위라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동료들이 너무 좋았다. 다들 훌륭하신 분이고 내가 좌천돼서 온 걸 아시니까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럼에도 인사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일단 인사라는 것은 영전이나 좌천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 기본 원칙 아닌가.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후로는 서울에 계속 있었는데 내가 발령받은 곳은 전남이었다. 112 신고가 들어오면 내용을 재빨리 파악해서 순찰차를 보내야 한다. 팀장으로서 사건을 총괄하려면 무엇보다 지리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살던 곳이 아니니 지리 감각이 전혀 없었다. 납치를 당했다고 신고 문자가 들어왔는데, 순천에서 담양 쪽으로 한 시간 정도 왔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어디쯤인지 아무 감이 없는 거다. 그래서 지도를 집에다 두고 보면서 계속 외웠다. 그렇지 않으면 나 때문에 구멍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분들의 사투리도 알아듣기 어려워 곤혹스러운 적도 많았다. 또 상사가 나보다 계급이 낮았다. 그런데 경찰은 계급 사회 아닌가. 상사가 나보다 계급이 낮다 보니 회의 주재를 어려워하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조직이 돌아가겠나.
프레시안 : 경찰 조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배경이 무엇인가.
이지은 : 좌천돼서 전남에서 지내던 중 민주당 측 인사가 어느 날 연락해서 잠깐 볼 수 있겠냐고 하시더니 영입 제안을 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경찰을 위해 드디어 할 수 있는 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찰 울타리가 돼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똑바로 서서 본연의 빛을 발하도록 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사실 경찰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말렸다. ‘그래도 총경이 됐는데 서장은 해야 하지 않냐. 지방청장은 해봐야지 않냐’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그때 고민의 답을 어디서 찾았냐면, 제가 2001년 경찰대 졸업 영상에서였다. 처음 경찰 됐을 때 나의 모습이 어땠냐 싶어 본 영상이었는데,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셔서 축사를 하셨다. ‘경찰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 얼마나 오래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경찰로서 일하는 동안 얼마나 봉사했느냐가 중요하다. 하는 동안 치열하게 봉사하고 고민했다면 계급 고하나 근무 연수의 장단과 상관없이 후대에 길이 남을 경찰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승승장구해라, 정년까지 하라’ 이런 말을 하지 않나. 사실 그땐 김 대통령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저 말씀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정치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분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이지은 : 당에서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해서 사실 퇴직하면서도 주변 분들에게 정치권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못 했다. 나와 같이 총경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이 민주당에 영입된 것도 뉴스를 통해 알 정도였다. 다른 분들에게 이야기를 못 하다 보니, 퇴직한다고 했을 때 많이들 충격을 받으셨다. ‘여기서 네가 할 역할이 있는데 버텨야 하지 않느냐’고 많이들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내가 영입됐다는 뉴스를 접하시고는 ‘네가 계획이 있었구나’ 하면서 오히려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경찰을 위한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도 많이 하셨다.
“미완의 검찰개혁 완수해야…경찰 인력난 문제 보완해야”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부터 이뤄진 권력기관 개혁 전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공과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이지은 :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이 입법을 통해 이뤄진 데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검찰이 시행령을 통해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아 아쉽다. 검찰 내부의 반발이 매우 심해서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었다고 하는데 이해는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경찰도 검찰도 정부 일원이기 때문에 한 기관의 반발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강하게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개혁은 미완의 상태로 남았고, 이제 남은 개혁을 완수해야 할 것 같다. 시행령을 통해 검찰이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완전히 법으로 정해서 수사와 기소를 좀 더 완벽하게 분리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업무 과중, 수사 지연 등 어려움도 생겼다. 현장에서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지은 : 뼈아픈 지적이다. 실제 현장에서 불만도 많고 혼란도 있었다. 수사권 조정과 함께 업무가 많아졌으니 당연히 인력도 이관돼야 하는데, 검찰에선 권한을 뺏겼는데 인력까지 주는 것은 도저히 못 한다고 해서 거절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험 많은 수사관들은 다 빠져나가고 충원한 신임 수사관들은 수사를 잘 모르니 시간이 더 걸리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검찰 정권이 집권하면서 지원 부서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제 역할을 못 했다.
“젠더 폭력의 기원은 가부장적 사고, 구조적 성차별 존재한다”
프레시안 : 경찰 출신으로서 어떤 의정활동을 하고 싶나.
이지은 : 나의 정체성은 ‘여성’과 ‘경찰’인 것 같다. 수사권 조정과 같은 시대적인 요청과 더불어 현장 경찰관들이 당당하게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드는 과제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 안전, 여성과 관련해 소홀히 해왔던 부분에 대한 입법을 하는 것도 나의 역할일 것 같다. 여성혐오 범죄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겠다.
프레시안 :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지은 : 우리나라 여성 관련 많은 지표들이 구조적 성차별을 증명한다. 만일 구조적 성폭력이 없다고 하면 왜 자연 성비는 50 대 50이어도 젠더 폭력 또는 스토킹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비율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가. 교제 폭력의 이유는 대부분 ‘내 말을 듣지 않아서’다. 여자가 남자의 통제에 순응해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아서 폭력을 휘두르는 거다. 때려서라도 순응하게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어디서 나왔겠나. 가부장적 사고다. 또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시험 성적이 더 좋은데도 결국 임금 격차가 존재하고 경력 단절되는 게 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을 외면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프레시안 : 개혁신당에서 최근 경찰‧소방 공무원 지원자는 병역을 의무화하는 공약도 내놓았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이지은 : 처음 든 생각은 ‘2030 여성들에게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교제 폭력, 이별 살인, 불법 촬영 등으로부터 국가가 보호해 주지도 못하면서 아이 낳으라고 강권하고 성별 임금 격차나 경력 단절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데 군대까지 가라는 게 맞는 이야기인가. 국가가 해결해야 할 것들을 해결한 다음에 요구하면 모를까. 나는 미안해서라도 그런 생각을 못 할 것 같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기도 하다. 군가산점제도에 대해서도 헌재는 공무원 채용 시 제대 군인에게만 높은 가산점 주는 것은 여성 차별이라고 위헌 판단을 내렸다.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은 지원조차 못 하게 자격을 박탈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찰 출신으로서 말하자면, 군대 경험이 반드시 경찰에 필요한가. 아니다. 22년 10개월간 근무하면서 나는 군에서 어떤 보직을 했는지가 경찰 역량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검증된 바 없는, 합리적이지 않은 정책이다.
정책을 만들 때는 손해 보는 사람이 겪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 장치가 늘 필요한 법인데, 과연 개혁신당 분들이 그에 대한 의견을 들어는 봤나 궁금하다. 여성들은 사회에서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가능성 많고 군에서는 간부들조차 성폭력으로 자살하는 상황인데 이 여성들을 사병으로 가라고 했을 때 겪을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두려움을 이 정책을 만든 사람들은 고민해 봤을까 싶다. 여성부 폐지와 같은, 이대남 결집용 ‘떳다방’식 공약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 여성의 군 복무도 생각을 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군의 첨단화, 과학화, 모병제 등 국방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논의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여성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총선용으로만 내놓는 정책은 굉장히 나쁜 정책이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본다.
“이대남·이대녀 모두 아우르는 정책 필요”
프레시안 : 보수정당뿐 아니라 민주당에 대해서도 여성 유권자들이 실망한 사건들이 많았다. 특히 권력형 성범죄가 민주당 내에서 다수 발생했고, 2차 가해 논란까지 이어지며 민주당이 젠더 이슈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이지은 : 기본적으로 성인지 역량이 부족해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 차원의 반성이 필요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제기됐을 때 가해자에 대해 단호하게 책임 지우는 문화가 필요하다. 당 내 온정주의가 문제라고 들었다. 만일 내가 가해자의 동료라면, 안타깝지만 죗값을 치르도록 유도할 것 같다. 이런 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겠다.
프레시안 : 민주당에서 영입 인재로 소개되자마자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스트 검증’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지은 : 검증할 것도 없이 나는 페미니스트다. “너 페미 아냐?” 이 질문이 한국 사회에서는 조롱이나 협박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들이 말하는 ‘페미’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남성과 여성 모두 동등하게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자유롭고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이다. 그런 뜻에서 성 역할, 편견을 벗어나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라고 한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프레시안 : 민주당 내에서도 페미니즘을 불편해하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
이지은 : 이른바 ‘이대남’ 전략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나는 이대남과 이대녀의 상황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대남‧이대녀 갈라치기 정책이 나쁜 것은, 이대남에게 ‘너희들이 힘든 것은 여자 때문’이라고 하면서 여성을 과녁 삼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대남도 힘들고 이대녀도 힘들다. 모두가 힘들다면 과녁을 겨누게 할 게 아니라 모두에게 소구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각오를 들려달라.
이지은 :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 경찰을 국민의 경찰로 돌려놓겠다. 그와 관련된 입법들을 하고 행정부 감시하는 역할을 하겠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날부터 매일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외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줄 아는,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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