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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장사 안된다’는 서초동·‘성장세 둔화’ 대형 로펌…위기의 법률시장

조선비즈 조회수  

“몇년만 일찍 나올 걸 그랬습니다. 이렇게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질 줄은…”

전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다수 심리하다 최근 사직서를 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괜히 법복을 벗었나 싶어 속앓이 중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 호황에 신입 변호사 연봉을 더 얹어주던 법조계에 냉기가 돌고 있어서다. 상황은 검찰 출신 전관(前官)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법조인들은 요즘 소위 말하는‘개업발’ ‘전관발’이 사라졌다고 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형사 사법 제도 변화의 부작용으로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가운데, 소위 ‘마케팅 펌(광고·홍보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로펌)’이 여럿 등장하면서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 로펌 가운데는 작년 기준 매출이 역성장한 회사도 등장했다. 업황이 좋을 때 저연차 변호사(Associate Lawyer·10년차 미만)들의 연봉을 급격하게 올린 회사들은 고심이 크다. 활로를 찾기 위해 가상화폐나 우주산업 등에 투자하고 있지만, 당장 수익으로는 이어지지 않으면서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 타운 전경.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 타운 전경. /연합뉴스

◇”사건처리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재판에 나설 때도 있지만, 검·경 조사에 입회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사건이 많아야 입회하는 횟수도 많아지고, 수익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2021년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지고, 검·경이 동등한 관계가 되면서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경찰은 다시 사건을 묵히는 ‘사건 핑퐁’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 요구로 사건을 경찰로 내려보내면, 사건번호가 사라진다. 하지만 경찰에선 다시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검찰 통계에선 사라지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사건인 셈이다. 의뢰인 또한 사건 수사가 시작되지 않으면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도 없다. 부장검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사건처리가 늦어지면서 의뢰인도 피해를 보고, 대리인도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며 “3개월 안에 처리돼야 할 사건인데, 1년이 넘도록 소환이 안 된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정치인 수사에 집중하면서 서초동 로펌의 먹거리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대장동·백현동 사건이나 돈 봉투 사건 등 수사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다른 사건을 처리할 여력이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형사부 검사가 5명 정도밖에 안 되면서 보완수사 요구가 많아진 것 같다”며 “과거보다 사건처리가 늦어지고, 수 자체도 줄어든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렇게 처리가 늦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소위 작은 사건들, 절도나 사기, 성범죄 등 사건 수임도 녹록치 않다. 마케팅 로펌들의 공격적인 홍보를 당해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다른 변호사는 “우선 의뢰인들이 전관인지조차 모르고 있어, 마케팅 로펌처럼 광고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검찰·법원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도 고전하는 것은 같다. 기업의 사외이사 등 다른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직에 있으면서 쌓아둔 인적 자원이 없으면, 찬밥 신세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은현
일러스트=이은현

◇연봉 인상 부메랑 맞은 대형로펌…기존 고객 유치 사활

대형 로펌은 올해 저연차 변호사들의 연봉 인상 부메랑을 체감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연차 변호사들의 이탈이 잦아졌던 2022년, 법무법인 태평양이 인력 수급을 위해 1억원 초반이었던 연봉을 1억5000만원까지 올렸다. 연봉 인상률은 당시 로펌의 매출성장률보다 높았다. 뒤이어 광장과 율촌, 세종이 저연차 변호사의 연봉을 인상했다. 1인당 약 3000만원 수준이 오른 것으로, 최소 100명 이상인 저연차 변호사의 수를 고려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임료와 보수가 낮아지는 것도 부메랑을 키운 요인이다.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수사든 재판이든 사건 수가 줄면서 수임료도 10~20% 낮아졌다”며 “불경기 여파로 인수합병(M&A)도 줄다보니 전반적인 매출 저하로 이어졌다”고 했다. 한 고객을 놓고 다수의 로펌들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적 자원을 동원해 수임하기 위해 경쟁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건이 줄어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에 따라 보수도 낮춰야 하는 악순환인 셈이다. M&A 한파로 인해 광장은 전년 대비 1.1% 매출이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대형로펌들은 기존 고객을 재유치하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로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시중 은행들이 대형로펌과 자문 계약을 맺었는데, 과거 사건을 함께 해본 이력 등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화폐나 우주산업 등 신사업 분야를 발굴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것도 대형로펌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이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당장 큰 매출은 올리지 못해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투자”라며 “선점에 성공하는 로펌에겐 고정 수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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