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59)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금도 여전히 ‘원조 친노’, ‘노무현의 오른팔’로 불린다. 23세의 나이에 국회의원 노무현과 처음 만나 30대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그는 이후 정치권에서 3선 의원, 강원도지사,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7일 <프레시안>과 만난 이 전 사무총장은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비되는 탈권위적인 대통령”, “할 말을 분명하게 하는 외교전략이 있었던 대통령”, “서민 대통령”이라는 평가 속에 2024년 현재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
민주당 내부의 현안이자, 정치권 전체의 숙제이기도 한 ‘강성 팬덤’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노사모’는 그렇게 누구를 공격하고 하지 않았다. 그냥 노무현을 사랑해서 저금통 모아줬지”라고 하기도 했다.
이 전 총장은 새해 벽두인 지난 1월 5일, 자신이 준비해온 서울 종로 지역구 출마를 접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 지지선언을 했다. 이 전 총장은 이를 “노 전 대통령에게 의리를 지킨 것”이라면서 “바보 노무현의 뒤를 이어 바보처럼 사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전 총장에 대해, 민주당은 그를 경기 성남분당갑이나 세종갑 등지에 투입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장은 “당이 정해주는 곳으로 가겠다”면서, 성남분당갑 현역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에 대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 뒤에 보인 모습이 국민들에게 좌절과 실명을 줬다”고 비판을 해 눈길을 모았다.
다음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이 전 총장 자택에서 진행한 그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종로 불출마, 盧와의 의리 지킨 것”
프레시안 : 22대 총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 출마를 추진하다 곽상언 변호사 지지선언을 했다. 당시 결정의 배경은?
이광재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 마음 속의 영원한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었다.
제가 노 대통령 서거하셨을 때 봉하마을에 가서 몇 달을 거기서 먹고 잤다. 그때 너럭바위 하나밖에 없었는데, 내가 ‘묘역 하나 만들고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매일 거기서 먹고 자고 하다 보니까 노 대통령 가족을 거의 매일 보게 되잖나. 그때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 하나는 ‘내가 묘역 하나는 끝을 내고 가야 되겠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 가족에 대해서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졌다.
종로에, 사실은 출마를 하려고 오랫동안 준비를 했다. 30년 살았고. 그런데 노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결단을 했다. 인간적인 아쉬움도 많지만 후회는 없다. 곽상언 변호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해 열심히 돕겠다.
프레시안 : 결정 이후에 곽 변호사나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나.
이광재 : 만나지는 않았는데, 전해 듣기로 권양숙 여사님이 우셨다고 하더라. 내가 종로 준비를 오랫동안 한 걸 아는데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래서 나는 그러면 된 거라고 본다.
프레시안 : 출마 지역구는 당에 맡기겠다고 했는데, 7일 오후 현재 당으로부터 전달받은 바는 없나? 경기 성남분당갑 등 일부 수도권 지역구에서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아는데, 혹시 본인이 관심 가는 지역이 있다면?
이광재 : 내 개인보다는 당에서 의미 있는 곳으로 결정을 해주면 거기에 제가 헌신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당에서 아직 공식 제안은 없었는데, 여론조사를 여러 군데 돌리고 있는 것 같더라. 종로를 그만두고 나니까, 나와 가까운 국회의원들은 분당 이야기하는 분도 있고,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와 수도권에서 ‘전 제주도지사 대 전 강원도지사’로 해보라는 얘기도 있고, 또 한편 노무현 대통령 유업인 세종시를 얘기하는 분, 아예 부산에 나오라는 분도 있더라. 아무튼 지금 당에서 계속 조사를 돌리고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분당갑 현역의원은 국민의힘 대선주자 안철수 의원이다. 만약 안 의원과 총선에서 대결하게 된다면 승리를 자신하는가.
이광재 : 아직 저도 후보로 결정되지 않았고 안철수 의원도 아직 후보로 결정되지 않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적절치 않다. 승리 여부는 분당·판교 주민이 결정하는 것이다. 결과를 말씀드리는 건 교만한 얘기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드는데, 윤석열 대통령이나 안철수 의원이 과연 일을 잘하는 걸까. 나는 지역구는 표밭이 아니고 일터라고 생각한다. 실력은 곧 실행력인데, 얼마나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지역 주민과 소통을 하느냐, 작은 민원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그런 작은 민원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담은 법도 설계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잘하고 있느냐.
안철수 의원이 근자에 저에 대해서 ‘강원도에서 일도 많이 헀고 앞으로 할 일도 많다’ 이렇게 칭찬을 많이 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분당이 용산을 이길 것이다. 분당·판교시민들은 자부심이 높은 분들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예측 가능한 나라’를 위해 현 정부에 대해 준엄한 평가를 하실 것이다.
분당·판교의 최대 현안은 ‘판교 혁신경제’를 통한 강력한 경제 성장, ‘제1기 신도시 재건축’을 통한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혁신경제’, ‘행복도시’ 두 개의 엔진으로 대한민국을 이끌게 될 것이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진정한 일꾼을 선택하실 것이다.
프레시안 : 안철수 의원은 원래 2012년 정치를 시작할 때는 진보진영의 기대를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돼있는데, ‘의리’를 강조하는 이 전 총장과 정치적 이력이나 경로가 다소 대조되는 면도 있어 보인다.
이광재 : 안철수 의원은 2011년 박원순 시장후보 지지부터 시작해서 제3당을 만들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뒤에 보인 많은 모습은 국민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는 어렵고 힘들지만 의리를 지키고 항상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해 왔다.
프레시안 : 민주당에서는 험지로 분류되는 강원에서 도지사,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에서 희생을 요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 수구초심, 금의환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광재 : 강원도민들은 저한테 국회의원을 세 번 시켜주시고 도지사도 시켜주셨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까지 보내주신 셈이다. 그렇게 저에게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주셨는데 지금 또 제가 상대적으로 당선이 편한 강원도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보다는 민주당이 중요한 시기에 의미 있는 곳에서 선거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또 강원도는 출마 자원을 영입할 곳은 영입하고 이미 다 정리를 했다고 들었다. 제가 강원도에서 또 나오는 것보다는 그 의미 있는 곳에서 성과를 내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금의환향은 다른 데서 돼서 고향 돌아가야 진짜 금의환향이지. (웃음)
“민주당만의 성장 방정식 필요 …文정부 ‘소주성’엔 성장 드라이브 빠져, 李 ‘기본사회’에 관심”
프레시안 :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그리고 현재의 민주당은 그 민심을 잘 받아안고 있다고 보나.
이광재 : 중차대한 시기다.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부 3년차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볼 수 있다. 저는 그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국민과 소통 없이,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이 정부에 대해서 저는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민심을 어떻게 받아안느냐, 결국은 3가지이다. 첫째, 민생경제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 성장률이 일본에도 역전을 당했다. 민주당만의 성장 방식을 찾아내야 된다. 지금처럼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면 나라는 존립 위기에 빠진다. 민주당이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성장의 결과가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나 스스로도 ‘내가 국가주의자였구나’ 하고 반성하는 게, 한국은 G10 국가가 됐는데 국민의 삶의 질은 36위로 OECD 최하위다. 그런데 선진국의 국가부채는 OECD 평균 100%~101% 정도라면 우리는 49%다. 반면 개인 부채는 우리를 100으로 놓았을 때 선진국은 73 정도다. 결국 선진국은 교육·주택 등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는데, 우리는 아이 공부시키는 것, 과외하는 것, 대학교 가는 것 전부 자기가 벌어서 낸다.
집도 자기가 돈 벌어서 산다. 그러니 한국에서 직장인이 돈 벌어서 집 사는 데 26년 걸리는 것이다. 물가 비싸다는 영국도 8년, 일본도 10년이면 된다. 이런 부분에서 국가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됐다. 강력한 경제성장을 만들면서, 국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국가와 정치의 역할의 대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지금 안보와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예견되면서 점점 더 세계 정세의 불안 요소가 커지고 있다. 미국 공화당 유권자의 70%, 민주당 유권자의 30%가 ‘미국은 대외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런 발언을 하고 있고. 안보 정세가 굉장히 불안정해질 수 있다.
안보에서 아웃소싱은 없고, 평화는 그냥 오지 않는다. 대화 없이 평화도 없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우리는 대화를 구걸할 필요는 없지만 대화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했는데 지금 같은 경우가 바로 우리 주변국과의 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다자 외교, 평화 안보의 길을 가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 부분인데, 이것은 민주당이 비교적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언론에서 핍박을 받은 사람이라든지, 이런 분들이 무죄 판결을 많이 받고 있다. 피해를 받은 분들이나, 삼권분립을 확고히 세울 수 있는 유능한 인사들이 당에 들어오면 좋겠다.
제가 심각하게 보는 것은, 검사는 검사가 잘하는 영역이 있고 기본적으로 법은 보수적이다. (사법·수사는) 과거의 것을 조사하든지 아니면 일어날 일을 예방하는 정도 차원이지, 미래를 건설하지는 못하지 않나. 그런데 지금 보면 금융감독원장, 국민권익위원장,방송통신위원장, 이제 심지어 국회까지 검사들이 밀려온다고 한다. 이러면 나라가 너무 경직된다. 우리가 혁신국가로 거듭나려면 훨씬 유연해지고 도전적·미래지향적이야 하는데 거꾸로다. 검사 독주 체제의 국정운영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프레시안 : 민생경제 부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니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연상시키는 면이 많다. 문 정부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광재 : 강력한 경제성장 드라이브가 없었다고 본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IT혁명'(이 정권 차원의 성장 드라이브)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통신망을 깔고, 노무현 대통령은 3G망을 깔았다. 인터넷 환경이 워낙 좋아서 한국이 ‘테스트베드 국가’가 된다고도 했다. 당시 또 코스닥도 만들지 않았나. 그래서 벤처 붐이 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연기금을 주식 투자에 넣을 수 있게 하면서 임기 초 700포인트였던 주식(코스피) 지수가 2000포인트로 끝났다. 한국의 IT 혁명, 벤처 혁명이 일면서 그때 시작된 기업들이 네이버, NC소프트 등이다. 판교라는 도시도 그때 만들어졌다. 부산 인구가 350만 명인데 1년 지역내총생산(GRDP)이 98조 원인데, 판교는 168조 원이 나온다.
그런 드라이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정부나 이번 정부나 ‘무엇으로 경제성장을 시키겠다’는 뚜렷한 방향이 없다. 이번 정부는 더 그렇다. 심지어 5G망도 지금 안 깔리고 일부 사업자 주파수를 회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5G, 6G로 안 가면 스마트팩토리나 이런 발전이 불가능해진다.
두 반째로, 국가가 해야 할 것인데, 지난 정부에서 주택 문제로 많은 논쟁을 했지먼 저는 공급을 많이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택공급률이 102%면 충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인 가구가 얼마나 많이 늘어나고 있나.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 공급을 좀 과감하게 늘릴 필요가 있다.
이렇게 주택 때문에 민생이 힘들어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예산을 투입을 해야 되는데, 이번에도 (국토교통 분야) 예산을 보면 도로에 8조, 철도에 8조, 주택 예산은 2.9조밖에 안 된다. ‘주택도시기금이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건 나랏돈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기 집 마련하려고 낸 청약금이고 국민 돈이다. 일반회계에서 10조 이상 예산을 투입하면 지금의 임대아파트보다 훨씬 더 좋은 임대아파트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1년에 600조를 쓰는 나라다. 국가가 갖고 있는 땅, 건물 등 재산이 3000조 원쯤 된다. 연기금만 2000조 원이다. 이 정도면 주택, 보육·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져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게 국가가 해야 될 일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국가·기업·개인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만.
보육·교육 문제도 보면, 사교육비며 영어학원 다니는 데 60만 원에서 200만 원씩 내고 나면 살 방법이 없다. 적어도 집, 보육·교육 그다음에 노후연금은 불안이 없어야 된다. 대전환을 해야 한다.
나는 이재명 대표가 얘기헀던 ‘기본사회’ 공약을 굉장히 눈여겨봤다. 국가란 무엇이고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서, 우리 민주당만의 성장 방정식이라면 적어도 보육·교육, 집, 노후연금은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야 미래가 있겠다고 보고 요즘 많이 연구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일자리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이광재 : 해외에 지금 엄청난 투자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해외에 나가 있는 돈이 한 130조 원쯤 되는데, 세제 혜택을 줘서 국내에 돌아오게 해야 한다. 특히 국내에 투자했을 때, 일자리를 만들었을 때 과감한 지원을 해줘야 된다.
두 번째로는 인력 공급 부분인데, 소프트웨어 인력이 한 100만 명 정도 필요한데도 우리는 중등학교 정보화 교사가 학교 1개교당 0.3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때 컴퓨터를 못 배우고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소프트웨어 인력이 엄청나게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컴퓨터 사이언스 교육을 대규모로 해야 된다. 서울대학교가 (학과 전공 인원수가) 50명인데 미국은 스탠퍼드대 하나만 800명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세 번째로는 싱가포르 전략, 개방형 플랫폼 국가다. 싱가포르는 자국민은 60% 정도 되고 외국인 비율이 30%가 넘는다. 외국인 중에 장기 거주, 금융 등에 종사하는 고급 인력이 많다. 우리도 홍콩에 있는 CNN 아시아본부나 금융기관 유치를 해오면 좋을 것이다. 이건 싱가포르, 일본과 우리 3자의 경쟁인데 우리가 이건 이길 수 있다. 홍콩의 변화에 이어 지금 대만 자본도 많이 빠져나가고 있다. 홍콩·대만·중국에서 올 데는 결국 이 세 나라 아니냐.
마지막으로는 일본에서 배워야 되는데, 관광산업이다, 우리가 자영업자가 많지 않나. 일본에는 연 2400만 명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50조 정도를 쓰고 간다. 관광객이 다 면세점만 가는 게 아니라 식당, 숙박업 등 자영업 업소에 가면서 일본의 지방 경제를 일으키고 있다. 아베 정부 시절에는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비슷비슷했는데,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서 일본이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한국의 매력도가 높은 이 시점에 관광산업을 대대적으로 일으키면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살아가는 일자리가 일어날 것이다.
“노사모가 누구 공격한 적 있나. 그냥 노무현을 사랑했지”
프레시안 : 정치권 상항은 여전히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
이광재 : 국민의힘에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 민주당에서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을 영입한 건 잘했다고 본다. 조금 더 경제·민생, 안보·평화 쪽의 사람들이 정치에 많이 들어올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민주당 내에서는 공천을 앞두고 이른바 ‘친명(親이재명) 대 친문(親문재인)’ 계파 구도가 부각된다. 결국 지난 정부에서 국정 경험을 쌓은 민주당의 역량 있는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면이 있지 않나.
이광재 : 과거에 뭐를 했느냐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당선 가능성도 중요하고. 지금 586 퇴진론을 얘기하고 있지만, 원희룡 전 장관도 옛날에 학생운동 했지 않느냐. 그리고 민주당은 물론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역할을 해야겠지만, 다만 그 분들이 과거에 장관이나 주요 직위에 있었다면 대중적 인지도가 더 있었던 만큼 쉬운 지역보다는 어려운 지역에 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좀더 당내에서 지지를 받지 않을까 한다.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이 386들을 영입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재야 인사이거나 학생운동 지도자들이고 나이도 젊으니까 (당선 가능성이) 많지 않지 않았나. 그러니까 김근태 선배는 도봉 지역구를 받았고 이인영 의원은 구로, 이렇게 안정적인 지역을 받았다. 그러면 이번에 신진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안정된 곳에 있는 분들이 어려운 지역에 가주고, 거기에 좀 더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저 자신도 어느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당에서 필요한 곳에 나가겠다’고 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프레시안 : 민주당이 여당일 때에는 이른바 ‘문파’가, 현재는 ‘개딸’ 등 강성 지지층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와 배현진 의원 피습사태 등 극단적 지지층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이 이같은 강성 팬덤 문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광재 : 점점 통합의 정치가 사라지고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가속화되는데, 저는 그 원인 중에 하나가 결국은 경제 양극화라고 본다. 희망이 부족하니까 분노 사회가 되고, 거기에 SNS가 결합된다. 사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나 샌더스 후보나 문제는 동일했다. ‘1대99’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에 대해, 샌더스는 세금을 더 걷어서 해결하자는 거였고 트럼프는 ‘이게 다 이민자들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정치에서 제일 쉬운 것은 상대를 공격해서 내부를 결집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선거는 중간층을 얻는 선거였고, 그래서 보수는 따뜻한 보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진보는 더 안정적인 진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간 점점 더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경제성장이 이뤄지지 못하니까 기회는 적어지고 ‘공정’이라는 용어가 점점 강한 설득력을 얻게 됐다.
이렇게 사람들이 분노에 차 있는데 여기에 정치인들이 가세해 버린 셈이다. 분열된 땅 위에는 집을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점점 더 정치권을 사막으로 만들어서는 아무도 살 수 없다. 국가와 국민이 함께 부유하고 행복해지는 성장 방식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분노가 안 생길 리 없으니 이 토대를 만들어 가야 하고, 또 한편 상대를 극단적으로 공격하거나 증오하는 정치가 지양돼야 하고 그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퇴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사모’를 현재의 팬덤 정치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광재 : BTS 팬덤은 전 세계적인데, 멤버들이 군대 가는 게 이슈가 되니까 독일·미국·영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의 군대 제도에 대해서 다 연구를 하더라. 부산 공연할 때 보니까 공연 예정지 인근 교통량 등을 조사해서 ‘여기는 안 된다, 여기로 하자’고 팬들이 주도해서 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게 진정한 팬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정치 팬덤도 막 그렇게 누구를 공격하고 이러지는 않았다. 그냥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거지. 그래서 저금통 모으고 모금하고 하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더 많은 지지자를 모으는 게 진정한 팬덤 정치 아니냐. 누구를 공격해서 이쪽을 결집하는 것은 팬덤이라기보단 파괴의 정치라고 봐야 한다.
팬덤이라는 게 우리 사회를 분열하고 증오를 일으키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 정치인을 더 사랑받게 만들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과거에 노사모 사례를 보면, 노 대통령이 당선돼서 노사모 회원들하고 식사 자리를 가졌는데 그때 대통령이 ‘여러분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셨는데 여러분은 앞으로 이제 뭐 하실 거냐’고 했더니 일제히 ‘견제! 견제!’하고 외쳐서 저도 깜짝 놀랐다.
그게 진정한 팬덤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정치권은 가급적 분노의 언어를 덜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물론 신사로 사는 건 참 쉽지 않은데, 그래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정치 지도자가 지지자들 앞에서 격렬한 언어를 쏟아내면 결국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를 갖게 된다. 그러면 결국 굉장히 참혹한 일들을 우리가 겪게 된다. 지도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프레시안 : 비슷한 이야기겠지만,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중시해온 김진표 국회의장 체제에서 국회사무처를 이끌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여야 간 대립과 갈등은 최근 극에 달하고 있다. 사무총장으로 이를 지켜보며 든 소회가 있다면.
이광재 : 제가 생각한 게, 정치인들 성적표를 만들어야 된다. 아니, 손흥민 선수는 축구 경기 한 경기 끝날 때마다 평점을 받고 기업도 1년에 한 번씩 평가를 받지 않나. 대학, 병원 모두 다 평가를 받는데 정치인은 뭘로 평가를 받나.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국민들에게 일자리, 소득, 집, 보육·교육, 건강·의료보험, 노후연금, 문화 등 7가지 요소를 가지고 대통령부터 시도지사들까지 전부 평가를 받게 하면 정치인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싸울 여유도 없어지지 않겠나.
유능한 정치인들은 좋은 평가를 받아 커나가고 무능한 정치인은 퇴출되는 게 정치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법을 만들어도 ‘몇 개 만들었나’가 아니라, 그 법이 이 7가지 기준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것으로 평가를 해야 하고 예산도 이런 기준으로 해야 한다. 제가 국회 사무총장을 하면서 아주 절실히 느꼈다. 국민들 삶이 이렇게 어려운데 정치를 계속 이대로 끌고갈 수는 없다.
지난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우리 국회를 방문했을 때 미국과 우리를 비교해 보니 우리는 국회 본회의가 1년에 37회, 미국은 100회더라. 우리가 상임위·소위원회 이런 거 다 해서 1년에 약 500회인데 미국은 약 3000회였다. 회의 수 자체가 5~6배 많은 것이다.
그러나 법률안 통과되는 것은 거꾸로 선진국, 프랑스·영국·독일 등은 1년에 법 통과되는 것이 100개도 안 된다. 우리는 반면 회의는 그렇게 적게 하면서 법은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낸다. 법이 물론 좋은 법도 있지만 규제적 성격도 있지 않나. 국회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된다.
“지금, 노무현 리더십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프레시안 : 작년 11월 <같이 식사합시다>를 펴냈다. 아직 책을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책에 담고 싶었던 문제의식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이광재 : ‘함께 식사합시다’라는 얘기는, 현재가 소통 부재의 시대이지 않나. ‘식사를 하면서 대화하고 살자’는 뜻도 있고 ‘같이 먹고 삽시다. 너무 살기 힘듭니다’ 이런 얘기도 된다. 이 책은 결국 두 남자의 이야기인데,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고문받은 학생들을 변론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인권변호사 노무현과, 서울의 봄 당시 대학생이었다가 23살에 노무현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돼서 정치를 시작한 저다. 대체로 음식과 정치 얘기로 엮여 있다.
프레시안 : 도리뱅뱅이, 홍합탕 에피소드 등 책 곳곳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단순히 인간적인 그리움을 넘어, 현재의 정치인들이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치로부터 어떤 점을 배워야 한다고 보는지.
이광재 :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다시 노무현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는데,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비되는, 한 명은 좀 권위적이라 소통이 안 되는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소통하고 대화하는 대통령, 탈권위적인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대통령한테 전지전능한 사람을 바라는 게 아니잖나.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또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하고, 함께 소통하고 울고웃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 아니냐. 그런 면에서 탈권위적인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외교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떤 나라든 잘 지내면서 자기가 할 말은 분명하게 자기 전략이 있었던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서민들이 살기가 너무 힘든데, 특징적인 것이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봉하마을 참배객 방문 숫자가 훨씬 늘어난다. 서민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이 코로나 때보다 살기 더 어렵지 않나. 이런 면에서 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유승민 전 의원이 남긴 질문으로 아직도 종종 정치권에 회자되는 말이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다. 이 전 총장은 ‘왜 정치를 하는가.’ 또 ‘정치인 이광재’는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광재 : 정치꾼이 있고 정치인이 있고 정치가가 있다. 정치꾼은 당선만 좇는 사람, 정치인은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려 노력하는 사람, 정치가는 좀 더 이상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본다. 또 정책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정치는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꿈은 지도를 바꾼다고 한다. 나는 무슨 큰 지도자가 되겠다거나 어떤 자리를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내가 어떤 자리를 갖는 것보다는 우리가 꿈을 가지는 게 중요하고, 그 꿈은 지도를 바꿔야 된다.
지금 국민들이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연인>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가 900여 번의 외침을 받은 나라로, 더 이상 전쟁과 불행의 역사 속에 빠지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다. 반도 국가의 운명은 강대국에 둘러싸이면 처참하게 무너지고, 문명국가를 이루면 세계적인 나라가 되는데, 저는 그런 부분에 제가 정책적으로 조금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얘기하면 저보고 몽상가라고들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이었을까 정치가였을까? 나는 그 분은 약간 사상가에 가깝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조금 이상주의자이기도 했고.
2002년 대선 후보 단일화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는데, 조선호텔에서 결과를 기다릴 때 노 대통령이 오시더니 샤워를 하고 배가 고프다며 샌드위치를 드시고는 ‘이제 자야 되겠다’고 하시더라. 참모들이 속으로 ‘지금 무슨 잠이 오시겠나. 말로만 그러시는 거지’ 헀는데 진짜로 코 골고 주무시더라. 대선후보로서 운명이 걸린 순간에 그러니까 너무 놀랐다. 나중에 우리가 후보가 되고 나서도 결과를 알려드리니까 ‘그래’ 이러고는 세수하러 가시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 분한테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 저에게 당신을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달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그 말씀이 많이 생각나더라. (나의 정치도) 그 연장선상이다. 사실 지난 2022년 강원도지사 선거, 나가면 안 되는 거다. 이번 종로 선거도 양보하면 안 되는 거고. 지금도 ‘당의 결정에 맡긴다’ 이러고 있으면 당선이 쉽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바보 노무현’의 뒤를 이어서 바보처럼 사는 거다.
제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진짜 거의 없다. 그리고 권력이라는 것은 금방 다 내려오게 돼있다. 제가 30대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하지 않았나. 그때 무슨 시사주간지 이런 데 보면 “권력서열 2위 이광재, 3위 문재인 민정수석’ 이러고 있었다. 권력은 언제든 내 곁을 떠날 수 있는 거고, 그것을 가지려고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는 거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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