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두 달 앞둔 상황에서 강남 공천을 둘러싼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강남은 보수 텃밭 중 가장 상징성이 크다. 보수 정당의 당선이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당 선거 전략과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곳이라서다. 다만 향후 공천 경쟁이 본격화되면 보수에 ‘따뜻한’ 강남은 없다. 후보 공천을 두고 당 안팎으로 갈등이 첨예해지거나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한 후보가 총선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강남 공천을 위한 전초전이 시작된 모양새다. 강남구 공천 신청자는 15명이다. 강남갑엔 6명(최태희·장영철·오병주·김민숙·최명용·김예령), 강남을엔 2명(박진·이원모), 강남병엔 7명(유경준·이인실·이지영·도여정·신연희·김창훈·김민경)이 공천 신청을 마쳤다. 현재 강남갑은 태영호(초선) 의원이 서울 구로을에 출마해 무주공산이 된 상태다. 강남병은 현역인 유경준(초선) 의원이 재출마를 준비하고 있지만 7대1 공천 싸움을 버텨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본격적인 공천 전에 강남을에선 신경전이 나오기도 했다. 검사 출신인 이원모 대통령실 전 인사비서관이 서울 강남을에 공천 신청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현재 강남을 현역 의원은 박진(4선) 전 외교부 장관이다. 박 전 장관도 이번에 다시 강남을에 공천 신청을 하면서 두 사람이 맞붙게 되자, 대통령실에서도 불편한 기류를 표했다. 결국 이 전 비서관은 지난 6일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며 사실상 공천 신청을 철회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강남 공천에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른바 ‘보수 텃밭’ 중 수도권에서 보수 정당 당선이 따놓은 당상인 몇 안 되는 지역이다 보니 공천 단계 때부터 국민적 관심을 많이 받을 뿐만 아니라, 당의 전반적인 선거 전략과 메시지와 같은 ‘총선 콘셉트’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현재 공천 신청자 중 ‘이 사람은 강남에 괜찮겠다’는 기준에 부합한다면 공천을 안 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아직은 조금 더 지켜보면서 인재를 발굴하자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사람이든, 비대위 추천 인사든 역량만 된다면 수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국민의힘은 당의 선거 구상에 맞춰 강남의 전략 공천을 진행해 왔다. 지난 4·15 총선 때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강남갑에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을 공천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끌어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강남은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미래와 비전, 가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전략적 선거구”라며 “사람 한 명이 지닌 스토리와 테마가 당의 지향점과 잘 맞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형오·황교안 vs 김종인 갈등 최고조… ‘파국’된 4·15 총선 강남 공천
특히 국민의힘은 4·10 총선을 앞두고 ‘4·15 공천 파국’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당시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의 사천(私薦) 논란과 황교안 당시 대표의 리더십 문제로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공관위원장·당대표·선거대책위원장 등 지도부 3인 체제 갈등으로 이어져 곧바로 공천 파국을 일으켰다.
아직 국민의힘은 선거대책본부 또는 선거대책위원회는 꾸리지 않은 상태다. 총선이 점점 다가오는 상황인 만큼, 곧 선대본부장 혹은 선대위원장을 뽑을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우린 제21대 총선 때 강남 지역 세 곳 모두 지도부끼리 갈등으로 공천 파국을 겪었다”며 “이번에도 강남엔 공천 신청자가 많다. 이들에 대한 생각은 또 제각각일 텐데, 갈등이 아닌 합의점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4·15 총선 당시 태영호 의원의 강남갑 공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이 서울 강남갑에 태영호 당시 전 주영 북한 대사관을 전략 공천하자,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됐던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전격 비판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김종인 전 대표는 오히려 공천에 문제가 있다며 이를 수정할 권한을 본인에게 달라고까지 했다.
이들의 갈등은 지난 2020년 2월 26일 태영호 의원이 강남갑 전략 공천된 때로부터 한 달째인 2020년 3월 26일 당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김종인 대표를 찾아가 선대위 합류를 부탁하면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며 일단락됐다. 이후 3월 30일 김종인 위원장은 태영호 의원과 화해하면서 간신히 강남갑 공천 매듭을 지었다.
강남을과 강남병 공천은 후보가 바뀌기까지 했다. 2020년 2월 27일 최홍 전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사장을 강남을에 전략 공천했지만 황교안 대표가 주재한 최고위에서 공관위의 공천 결정을 취소 의결했다. 이른바 ‘채권 파킹거래’로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은 전력이 드러나면서 무효가 된 것이다. 이후 공관위는 2020년 3월 19일 박진 전 장관을 강남을에 전략 공천했다.
여기에 강남병 공천은 당시 김형오 공관위원장 사퇴로까지 이어졌다. 당내에서 통합당의 강세 지역인 서울 강남병에 ‘문재인 정부와 친한 인사’인 김미균 시지온 대표를 공천했다고 반발하자, 김 공관위원장은 서울 강남병 지역구 공천에 책임을 진다며 전격 사퇴했다. 이후 공관위는 논란을 빚은 지 4일 만인 2020년 3월 17일 유경준 의원을 강남병에 전략 공천했다.
이 과정을 지켜봤던 한 다선 의원은 “당시 강남 세 지역구 공천은 모두 ‘내사람 공천’을 위한 다툼의 결과였다”며 “강남은 공천만 받으면 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 만큼 공천 결정권자들은 본인 생각에 맞는 사람을 추천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공천은 총선 막판까지도 사람이 바뀌는데, 지도부 인사끼리 갈등이 생기면 강남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공천도 모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우려하는 지점은 이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남 공천 갈등, 반복되거나 교통정리… 전문가들 “국민 여론 의식할 수밖에 없다”
여권 안팎으로는 이번 강남 공천도 지도부 간 알력 싸움이 반복될 거라는 시각이 중론이다. 다만 공천을 둘러싼 당 내홍이 국민 여론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교통정리를 하거나 물밑 협상을 통해 ‘공개적인 갈등’은 숨길 것으로 보인다. 국민 여론에 부담을 느낀 당내 총선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강남은 보수 정당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곳인 만큼, 포기하기 어렵다”며 “그간 국민의힘은 갖은 이슈로 당 내홍을 국민들에게 보여왔고, 국민들은 권력 다툼으로 인식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정치평론가는 “총선은 유권자의 표심에 좌우된다. 국민 여론을 의식하는 만큼, ‘물밑 협상’으로 큰 충돌이 없는 선에서 공천을 마무리하고자 할 것”이라고 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대담에서 공천과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론적인 얘기라고 할지라도 당정 관계에서 한 위원장에게 공천 주도권을 일임한 것”이라며 “한 위원장도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공천을 하겠다고 숱하게 말해왔다. 공천 자율권이나 독자적 권한을 인정하는 쪽으로 공천 갈등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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