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운동권 청산’을 상징하는 김경율 비대위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운동권 출신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맞붙는 모양새로 한 위원장이 마포을 출마를 ‘깜짝 발표’하면서 사천(私薦) 논란이 확산되자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이에 당 안팎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 요소나 공천 잡음을 없애고 한 위원장이 공천 주도권을 잡을 명분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운동권 청산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던 만큼, 한동훈표 수도권 총선 전략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돌파구도 함께 구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비대위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한 위원장이 공천 부담을 덜은 모양새다. 한 위원장이 김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를 직접 소개하면서 ‘사천 논란’이 제기됐다. 이는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갈등설로 번졌다. 하지만 이번 김 비대위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한동훈표 공천은 사천 논란을 불식시키게 됐다.
한 위원장은 이날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김 비대위원의 불출마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지만, 본인의 확고한 결정이라 존중하기로 했다”며 “저는 (김 비대위원이) 출마하시고 (논란을) 이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본인 생각이 강했고 (무엇보다도) 김경율은 누구 얘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기에 뜻을 이해해 존중했다”고 말했다. 전날 김 비대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4·10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비대위원이라는 직업이 참 좋다. 절대 (내려)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날 모두 일각에서 제기된 대통령실 압박설엔 선을 그었다. 한 위원장은 김 비대위원의 불출마가 당정 갈등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대통령실에 순응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잘못된 해석”이라고 답했다. 김 비대위원도 “대통령실에서 공식적인 제안이나 압력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런 게) 있었다면 저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김 비대위원의 불출마 결정이 한동훈 비대위가 총선 전면전에 내세운 운동권 청산 전략을 흔들리게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위원장이 직접 인선한 인사인 김 비대위원은 ‘조국 흑서’ 저자로 운동권에 맞서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만큼 4·10 총선에서 그의 불출마가 운동권 청산에 작더라도 타격을 줬다는 것이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마포을에 김 비대위원이 출마한다는 사실로 뜨거웠던 한 위원장의 운동권 청산 전략은 이제 서울 중·성동갑과 영등포을, 구로 갑·을로 옮겨가는 상황이다. 각 지역별로 보면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중·성동갑)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과 김민석 민주당 의원(영등포을)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과 이인영 민주당 의원(구로갑)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과 윤건영 민주당 의원(구로을) 등이 대진표를 짠 상태다.
다만 운동권 청산 선봉장을 자처했던 김 비대위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해당 전략은 다소 힘이 빠지는 모습이다. 김 비대위원은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운동권을 겨냥한 비판은 이어가겠지만,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할 경우 총선 전면전에 나선 후보들에게 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당초에 짰던 ‘김경율 vs 정청래’ 구도가 무산되자마자 운동권 청산 전략도 시들해졌다”며 “민주당 내 다른 운동권 출신 의원들과 맞붙는 지역이 많긴 하지만 정청래 의원을 상대로 한 것보다는 덜 주목받는 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김 비대위원을 대신할 인물을 찾아야 하는 것도 여권이 직면한 과제로 꼽힌다. 현재 당내에서는 김 비대위원 정도 반(反) 운동권 상징성을 갖춘 인물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밖에서 영입하기에는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총선 전에 꼼꼼히 검증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운동권 청산과 이미지가 맞으면서 공천 원천 배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우리 당 가치도 녹일 수 있는 인물을 총선 직전에 데려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마포갑 공천 신청을 한 신지호 전 의원도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마포을도 (우리 당이) 이제는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분위기가 좀 올라왔는데, 이렇게 되면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김 비대위원의 이번 불출마 결정은 한동훈표 공천에 힘을 실어줄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과의 갈등 불씨를 완전히 없앤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운동권 청산 전략으로 얻었던 국민의힘 총선 주도 분위기를 다시 끌어오기 위한 돌파구 전략을 제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김경율 비대위원이 비대위원직 사퇴가 아니라 총선 불출마를 결정한 건 이른바 ‘윤한 갈등’에서 해소되지 못했던, 윤 대통령의 권위를 살려주기 위한 배려이면서도 한동훈표 공천에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라며 “정청래 대항마로 적절한 인물을 찾아 기껏 띄운 운동권 청산 분위기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번 결정으로 한동훈 비대위 체제의 공천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거나 공정하지 않을 거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라며 “꼭 반(反) 운동권이 아니어도 된다. 운동권 출신인 ‘정청래 대항마’로 내보냈을 때 수도권 바람이나 여론몰이가 가능한 인재들을 내보낸다면 전반적으로 상승 분위기를 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잘할 수 있는 게 운동권 청산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도 고려하면서도 미래 세대나 가치에 맞춘 인사를 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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