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文 압박·세력 이탈 의식해 준연동형 결단
유권자 선택 교란하는 ‘떴다방 정당’ 난립할 듯
졸속 창당에 제대로 된 정치인 발굴 불가능
총선 끝나자마자 합당하는 낭비적 현상 초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택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현행 준연동형 유지 및 야권 통합형비례정당 추진을 선언했다. 통합형비례정당이 사실상 민주당 간판만 달지 않은 ‘위성정당’으로 해석되는 만큼, 이 대표 스스로 ‘위성정당 금지’라는 대선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선거제의 키를 쥔 민주당이 이처럼 결론을 내리면서, 이번 총선에서도 유권자 선택을 교란하는 위성정당이 난립할 전망이다.
이 대표는 5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 후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권심판과 역사의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준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비례정당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을 구축하여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이끌겠다. 민주개혁세력의 맏형으로서,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준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 및 비례성 확대 명분으로 지난 21대 총선 때 도입됐지만 ‘꼼수 위성정당’ 출현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최근까지 병립형 회귀에 무게를 두고 있던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제3지대의 파급력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려면 병립형이 유리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준연동형 유지로 예상을 깬 결론을 내린 건, 당내 병립형 회귀에 대한 반발 분위기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야권 원로들의 압박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병립형 회귀가 당장 의석수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통합이 우선돼야 할 국면에서 당내 세력 이탈, 진보 진영의 분열은 지역구 선거에서도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경남 양산 사저에서 이 대표와 오찬을 함께하며 “민주당의 힘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조금 우호적인 제3의 세력들까지도 다 한데 모아서 상생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정치를 바꾸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대선에서도 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가뜩이나 (친이재명계가) 친문재인계와 공천 갈등을 벌이고 있는데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의 말을 무시했다간 (당내 분열) 명분만 만들어주는 꼴이 된다”며 “(병립형으로 회귀할 경우) 약속을 안 지켰다고 비판을 받고, 당내에서도 이중으로 욕을 먹느니 준연동형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도 “병립형으로 가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거꾸로 돌아가면 그거 핑계로 당내 저항세력들의 목소리를 더 키울 수 있다”며 “원로들까지 나서서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와 손 잡으라고 빌미를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위성정당 창당 비판을 피하기 위해, 위성정당을 직접 만들지 않고 통합형비례정당 구성이라는 우회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민주당을 위한 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꼼수가 아니라 상대의 반칙에 대응하는, 바람직하진 않지만 피할 수 없는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역구 문제를 포함해서 비례 선거까지 선거에 관한 대연합을 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민주당이 범야권 진보 진영의 가장 큰 비중을 가진 맏형이기에 책임을 크게 질 수밖에 없고 그 큰 책임에 상응하는 권한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구성을 추진 중인 ‘국민의미래’를 겨냥 “지금 국민의힘이 하고 있는 게 정확한 의미의 위성정당”이라며 “다른 임시 정당을 만들어서 거기로 공천하는 게 위성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위성정당’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민주당이 비례대표 추천 과정부터 관여할 것으로 보여 결국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이번 총선은 직전과 같이 거대 정당이 지역구에만 후보를 내고, 문서 상으로는 별개인 위성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질 전망이다.
지난 총선에선 비례대표 선출을 위해 등록한 정당 수는 35개, 투표용지 길이가 48.1㎝에 달했다. 준연동형제에 따라 여야가 20석 안팎씩 손해를 보게 되자, 국민의힘의 전신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야권에서는 친문계가 모여 열린민주당을 창당하는 등 공식·자칭 위성정당이 난립했다.
이렇게 당선된 이들이 윤미향·김의겸 의원, 최강욱 전 의원 등이다. 이들은 혐오·갈등을 부추겼다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미향 의원은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및 배임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김의겸 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과 같은 여권 관련 주장을 내세웠다가, 가짜뉴스로 판별된 사례가 다수 나오면서 ‘가짜뉴스 제조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강욱 전 의원은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2017년 로펌 인턴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열린민주당은 이 사건으로 이미 기소됐던 최 전 의원을 당시 비례대표로 공천했다. 총선만을 노리고 졸속으로 만들어진 정당에서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역량 있는 정치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체불명 검증불가 인물들의 국회 입성이 불가피하게 됐다”라며 “위성정당을 만들다보면 이런저런 절차에 역량이 분산되고 시일이 촉박해서 역량이 떨어지는 인물들이 공천받아 들어올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위성정당에 대해 안 좋은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비례대표 후보의 검증문제”라고 했다.
지난 총선의 학습효과가 더해져 이번 총선에서는 자칭 위성정당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최근 ‘옥중 창당’을 선언한 후 가칭 정치검찰해체당 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리셋코리아행동도 지난달 1일 공식 출범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자칭 위성정당들이 생겨나서 공인 위성정당과 경쟁하면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준연동형제 유지에 따라 또 양당이 불필요한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절차를 거쳤다가 총선이 끝나고 또 합당해야 하는 낭비적인 현상이 초래되게 됐다”라며 “창당이라는 게 발기인도 모으고 시·도당도 페이퍼로나마 창당해야 하고 중앙당 창당도 해야 하고 2020년 총선 때 떠올려보면 낙천한 의원도 꿔줘야 하고 코메디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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