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사전 녹화 대담이 KBS에서 방영될 예정인 가운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거부하고 짜여진 대본에 기초한 대담에만 나선다면,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조롱하고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5일 “박민을 낙하산 사장으로 꽂아 ‘땡윤방송’으로 전락시킨 KBS와의 단독 대담은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대본대로 진행되는 ‘짜고 치는’ 연극이라는 세간의 의심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과거 다른 대통령도 녹화 대담을 한 적이 있으나 즉시 대통령의 발언 전문이 공개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방송에 출연한 지 하루가 넘도록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코미디가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대통령의 발언 중에 무엇을 걸러내고 방송에 내보낼 것인지 아직 ‘편집 중’이라 그런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언론장악과 노동탄압을 앞세우고 의회·정당 정치를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독재적 행태와 영부인의 명품백 수수라는 황당한 사건들까지 잇따르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소통과 타협 대신 압수수색과 ‘격노’로 포장된 겁박을 자신의 정치적 언어로 사용해왔다”며 “대통령이 통제된 질문에 대해 정해진 답만 내놓는 모습을 우리는 보도지침을 언론에 내려보내던 전두환 군사정권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 그 시절 보도지침이 특정 언론사와의 녹화대담으로 외형만 바뀐 것 말고는 내용과 실질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언론노조는 “신년대담 녹화가 있던 날 대통령은 대국민 설 인사 영상을 위해 대통령실 직원들과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를 합창했다고 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사랑도, 노래도 아닌 민주적인 소통과 합리적인 통치”라면서 “방송독립법과 노란봉투법, 이태원특별법을 거부하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유예해야 한다고 외치는 대통령이 ‘사랑’을 운운한 그 순간, 사랑도, 이 나라도 참담해져 버렸다. 질문을 거부한 철모르는 권력의 노랫가락에 민주공화국이 흔들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브리핑에서 “취임 일성으로 ‘국민 소통’을 강조하며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던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도 끝내 ‘신년기자회견’을 ‘대담 사전 녹화’로 대체했다”며 “‘언론과의 소통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며 질문 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해놓고 ‘땡윤뉴스’만 틀어대는 방송사를 지정해 대담을 진행하다니 국민께 부끄럽지도 않나”라고 물었다.
권 대변인은 “‘녹화 대담’ 뒤에 숨는다고 ‘김건희 여사 의혹’을 피해갈 수는 없다”며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거부한 대통령의 대담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들을 더욱 키울 뿐”이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 출근길에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기자 질문을 받고 “대통령실에서는 대통령으로서 위치와 역할을 감안해서 필요한 소통의 방법을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경우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KBS 대담 출연을 “문재인 대통령이 KBS 정치부 기자와 현안에 대한 질문을 듣고 답하는 형식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정권을 홍보하는 대담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관련 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담에 앞서 국정실패부터 사과하고, 실패한 정책은 포기하고, 좌경화된 이념을 바꾸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집권 2년차라는 시기는 실력으로 말하고 알맹이를 보여줘야 할 때”라면서 “말의 성찬보다 진정성 있는 하나의 행동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있다. 취임 후 첫 신년이었던 지난해 1월에는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KBS 대담은 앞선 문 대통령 2년차 대담과 달리 생중계가 아닌 사전 녹화 형태로 방영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대담 녹화 당시 발언, 대담 편집본 방영 일시에 대한 공식 정보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