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국정농단 수사결과 인용해 ‘1천300억원 배상’ 판정 끌어내
법원 “불법승계 없다” 판단…취소소송서 정부 논거 보강 가능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기자 = 1심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불법행위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을 둘러싼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국제투자분쟁(ISDS)에도 영향이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해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이른바 ‘엘리엇 판정’에 불복해 영국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뒤 5개월째 소송절차를 진행 중이다.
PCA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압력을 행사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위반했다는 엘리엇 측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에 5천358만6천931달러(약 690억원·달러당 1,288원 기준)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엘리엇이 사용한 법률비용과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지급해야 할 금액은 1천300억원이 넘는다.
중재판정부의 결정에는 한국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인용한 엘리엇 측의 적극적인 공세가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에서 엘리엇 측은 이 회장 및 박근혜 전 대통령,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에 대한 국정농단 특검팀 등의 수사 결과를 인용하며 “한국은 자신의 형사사법제도를 통해 합병에 위법한 개입이 있었음을 스스로 명확히 주장했고, 판결로써 확인했다. 한국은 이런 증거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고 몰아붙였다.
합병에 정부가 부당한 영향력을 작용했다고 한국 검찰이 판단한 만큼, 정부가 이를 부인하는 건 ‘자기부정’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1심 법원이 이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모두 무죄로 판단하면서 정부는 진행 중인 취소소송에서 이전보다 적극적인 변론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경영권 불법 승계의 유무가 정부가 취소소송에서 제기한 주요 쟁점은 아니다. 정부는 PCA가 한미FTA에 규정되지 않은 ‘사실상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비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의 판단을 정부 책임으로 판단한 것이 잘못이란 점을 주요 논거로 들고 있다.
다만 PCA의 판단이 양사 합병 문제가 아닌 박근혜 정부 소속 일부 인사들의 일탈 행위를 ‘정부 차원의 불법 승계 지원’으로 부풀린 엘리엇 주장에 편승한 부당한 판정이었고, 한국 법원은 경영권 승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아울러 이날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점이나 비율이 불공정해 삼성물산 주주에 손해를 끼쳤다고 단정할 수 없고, 엘리엇의 반대에 대응하는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점도 정부 측에 유리한 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문제 삼아 한국 정부에 2억 달러(약2천565억원)의 배상을 청구한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과의 ISDS에서도 정부는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국가와 삼성 측을 상대로 낸 다수의 민사소송에도 이번 1심 판결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20년 삼성물산 주주 72명은 문 전 장관의 위법 행위로 두 회사의 합병이 성사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약 9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문 전 장관 행위와 주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으나, 일부 원고가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일부 주주들이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다수의 소송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심리 중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이날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lllu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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