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옥곤)가 지난달 31일 ‘고발사주 의혹’ 핵심 인물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에게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 핵심은 2020년 4월3일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수정관실, 현 범죄정보기획관실) 소속 손준성 검사가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를 통해 MBC의 ‘채널A 검언유착 의혹’ 보도 등과 관련, “선거 개입을 목적으로 한 일련의 허위 기획보도를 처벌해달라”며 기자들과 유시민‧최강욱 등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느냐다.
재판부는 1심 판결에서 고발장이 대검 수정관실에서 작성했다고 판단했으며 손 검사가 김 후보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사실도 인정했다. 무엇보다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 실행에 관한 암묵적인 의사의 결합 및 공모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통하는 대검 수정관실 소속 현직 검사에게 총선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 초안의 작성 및 전달 자체만으로는 선거 과정 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유형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고발장은 선거일 전까지 수사기관에 접수되지 않았고, 고발장과 관련해 언론 보도가 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칠만한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며 “고발장 전달 행위만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기수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 미수범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검찰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으로서 영장청구권을 비롯한 수사권‧공소제기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검사의 권한 행사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므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고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그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뒤 “특히, 이 시대에 국민들이 검사에게 더욱 중요하게 요청하는 것은 검사의 정치적 중립”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한 이 사건 공무상비밀누설죄, 개인정보보호법위반죄,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위반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사건 당시 검찰 또는 그 구성원을 공격하던 익명의 제보자에 대한 인적 사항 등을 누설한 것이어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나아가 “피고인은 제보자 및 그 당시 여권 정치인들, 언론인들을 고발하는 데에 활용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그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는바, 결과적으로 피고인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의 죄책을 물을 수는 없지만, 이 사건 범행들은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검찰권을 남용’하는 과정에 수반된 것이라는 측면에서 사안이 엄중하고 그 죄책 또한 무겁다”고 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통하던 대검 수정관실 소속 현직 검사가 총선 직전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고발을 사주했다는 사실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으로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 2020년 4월 당시 대검 감찰부장이었던 한동수 변호사는 지난해 10월30일 이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손준성 검사 개인이 (고발 사주를) 혼자 했을 리 만무하다는 건 검찰에서는 누구나 동의하는 사안”이라며 “고발장 작성은 손준성 개인의 일탈이 아니고, 총장 지시하에 검사와 수사관들이 함께 작성했고 (고발장이) 나가기 전에도 총장 컨펌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채널A 사건은 고발 사주의 동기와 배경”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한동수 감찰부장은 2022년 5월 한동훈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가리켜 “(윤석열 총장이) 보수언론 권력을 배경으로 해서 야심 있고 똑똑한 부하 검사들과 함께 검찰권을 사유화해서 자신의 대권을 획득하고 검찰의 이익과 권한을 영속화하고자 하는, 검찰 개혁을 저지하고자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윤석열 대검 고발사주’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이 답할 차례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31일 논평을 내고 “고발사주 범죄는 손준성 개인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 검찰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이 확인된 만큼 ‘국기문란 범죄’라 불러야 마땅하다”면서 “공수처는 ‘윗선’으로 의심을 받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 당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연루 의혹에 대해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도 같은 날 논평에서 “대검찰청의 조직과 문화를 고려했을 때, 이 사건이 검사 개인의 일탈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손 검사를 작년 9월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결국 국회의 탄핵소추까지 이르게 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그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나아가 “이 사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개입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 그리고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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