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장 작성·전달에 손준성 관여 판단…’정치중립 위반’ 질타도
검찰이 뒤집은 ‘김웅 공모’ 등 논란 예상…공수처, 3전 3패 끝 첫 유죄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법원이 31일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법원은 특히 검찰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의 주요 내용을 사실상 인정했다.
검찰 내부에서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공소를 제기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직접 기소한 사건 중 처음으로 유죄 판단을 받아내면서 출범 후 3년 만에 ‘수사력 논란’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손준성→김웅→조성은 경로 인정…”검찰 정치중립 위반”
‘고발사주 의혹’은 검찰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였던 최강욱 전 의원과 유시민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범여권 인사를 고발하도록 야당 측에 사주했다는 게 골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이날 손 검사장이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였던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직접 전송했을 뿐 아니라 검찰이 고발장 작성에도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장과 김 의원 사이에) 설령 제3자가 있었다고 해도 중간에 끼어 있던 전달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연구관인 임홍석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했거나, 최소 고발장에 적힌 내용을 검토·수정하기 위해 판결문을 검색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이런 사정은 고발장의 일부 작성·검토에 손 검사장이 관여했음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고발장에 수사기관에서 주로 쓰거나 공소장에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다수 포함된 점도 거론하며 “최소한 공소장을 써 본 사람이 작성하거나 검토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특히 재판부는 고발장의 작성·전달만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객관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리적 이유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손 검사장이 고발장을 전달한 배경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장은 당시 여권 정치인이나 언론인을 고발하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그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 대선 기간 주요 공방 소재…’김웅 무혐의’ 등 두고 파장 이어질듯
재판부가 검찰의 정치 개입 의도를 사실상 인정한 만큼 정치권과 법조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고발사주 의혹은 대선을 앞둔 2021년 9월 조성은 씨의 제보로 언론 보도가 이뤄지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면서 대선 기간 내내 정치적 공방의 주요 소재가 됐다.
공수처는 8개월간의 수사 끝에 대선 이후인 2022년 5월 손 검사장을 기소하고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공수처는 손 검사장을 기소하면서 김 의원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며 사건 당시 민간인 신분이던 김 의원을 검찰에 이첩했다.
하지만 검찰은 같은 해 9월 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뒤집고 “고발장이 전달된 경로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김 의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날 법원이 공수처가 파악한 전달 경로를 사실상 인정함에 따라, 이런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아울러 손 검사장과 일부 검사들의 고발장 작성 관여 행위가 인정된 만큼, 당시 검찰의 ‘윗선’ 관여 여부를 더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현 야권을 중심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날 판결 결과는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손 검사장의 탄핵 심판 사건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손 검사장은 지난해 4월 대검 감찰에서 비위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고, 9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국회는 12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 공수처, 직접 기소 ‘3전 3패’ 끝에 첫 유죄 판단
한편 공수처는 출범 이후 직접 기소한 사건 3개 중 이번에 처음으로 유죄 판단을 받게 됐다.
기소 1호였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 윤모 전 부산지검 검사의 공문서위조 사건은 1심 혹은 2심에서 모두 세차례 무죄를 선고받은 상태다.
공수처는 고발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손 검사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1회, 구속영장을 2회 청구했다가 연거푸 기각당한 바 있다.
이에 당시에도 공수처의 수사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나, 이날 손 검사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아냄에 따라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울 계기를 마련한 셈이 됐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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