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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낙하산 사장’의 임명동의 무력화…공정방송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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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제작 종사자들이 보도 책임자의 역량과 독립성을 평가하는 제도로 자리잡아온 국장 임명동의제가 공영방송 KBS에서 무력화됐다. ‘정권 낙하산’ 논란 속에 취임한 박민 사장이 임명동의제를 무시한 국장 인사를 강행하면서 KBS 안팎의 우려가 높다.

KBS 지난 26일 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보도 관련 5개 부서 국장 인사를 냈다. 최재현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 박진현 시사제작국장, 최성민 시사교양1국장, 이상헌 시사교양2국장, 이상호 라디오제작국장 등이 임명됐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연합뉴스

국장 임명동의제는 취재·제작 자율성 보장 등을 위해 종사자들 참여권을 보장하고 관련 부문 책임자를 평가하는 제도이다. 주요 방송사 중에선 2017년 SBS가 처음 시행하면서 언론계 전반에 임명동의제 확산 분위기가 일었다. 당시 조선일보 노동조합도 “우리도 할 수 있다”며 편집국장 신임투표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KBS, MBC, SBS, YTN, MBN, 연합뉴스, 경향신문, 한국일보, 한겨레, 아시아경제 등을 비롯한 다수 언론사가 임명동의제 및 그에 준하는 보도 책임자 평가제도를 두고 있다.

KBS의 경우 양승동 당시 사장의 약속에 따라 지난 2018년 보도·시사·라디오 3개 부문 국장을 대상으로 임명동의제를 도입했다. 이후 KBS 노사간 단체협약을 통해 2019년 통합뉴스룸국장·시사제작국장·시사교양2국장, 2022년 시사교양1국장·라디오제작국장 등이 임명동의 대상으로 명시됐다. 현행 방송법이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해 취재·제작 종사자 의견을 들어 만들도록 한 방송편성규약,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KBS 방송편성규약은 단체협약으로 임명동의제 세부 내용을 정하도록 밝히고 있다.

김세원 한국PD연합회장(KBS PD)는 “(국장 임명동의제의) 취지는 제작 방향성을 제시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자질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며 “부적격자를 배제하고자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양만희 방송기자연합회장(SBS 기자)은 “임명동의는 언론 기능을 가진 방송사에서 보도의 독립성, 공정성을 기하겠다라는 노사 간의 약속이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침해된 인사상, 콘텐츠 제작 상의 부당한 개입 사례가 있었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종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라며 “단체협약에 명문으로도 규정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위태롭고 시민들과의 약속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KBS 임명동의제는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일부 한계도 지적돼왔다. 이에 지난해 KBS 사측의 요구로 이뤄졌던 단체협약 관련 보충협약 당시 KBS본부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닌 부서 구성원을 대상으로 투표권을 넓히자는 제안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 KBS 본사 사옥에서 박민 사장을 향해 국장 임명동의제 시행을 요구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서울 KBS 본사 사옥에서 박민 사장을 향해 국장 임명동의제 시행을 요구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그러나 사측은 구성원의 참여 자체가 인사권 침해라는 입장이다. KBS 사측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단체협약대로 임명동의를 거쳐 5대 국장을 임명하면 인사규정에서 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직원을 임면하는 것으로서 이는 사장이 인사규정, 정권, 방송법을 순차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임명동의제는) 사장의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만큼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청구했던 단체협약 위반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각하한 것도 근거로 내세웠는다. KBS본부는 관련 결정문에 임명동의제가 인사권 침해라는 내용이 없다며 사측 주장이 ‘법원 판단 호도’라 반박하고 있다.

KBS 내부에선 기자협회 구성원들이 릴레이 성명을 내며 국장단에 임명동의를 받으라고 촉구했다. 인사 당일 KBS 기자협회의 통합뉴스룸 협회원들은 성명을 내고 “공영방송 뉴스의 지휘자는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뉴스가 가야 할 길을 선명히 제시해야 한다. 뉴스에 개입하려는 외부 세력엔 단호한 언사도 행사해야 한다”며 “반칙으로 첫 발을 떼는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불신하는 구성원들을 어떻게 이끌고 갈 생각인가. 무슨 수로 좋은 뉴스를 만들 생각인가”라고 비판했다.

다큐멘터리, 시사, 토론, 중계 프로그램 등을 만드는 시사제작국 기자협회원들도 “제작비가 줄고, 이에 따라 제작 리소스가 축소되고, 편성 시간이 멋대로 옮겨지거나 더 나아가 프로그램 통폐합 논의가 나오는 걸 우려한다. 프로그램 구상·제작 과정에서, 소통과 설득이 생략된 일방적 결정이 내려지는 것도 경계한다. 이런 문제는 대개 제작 자율성 침해로 이어져, 중장편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사제작국에선 더 큰 파국을 낳기 때문”이라며 “시사제작국장은 그런 기자들의 우려와 경계를 해소하고, 프로그램을 지켜줄 우산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8일엔 두 부서 바깥에서 일하는 기자협회원들도 “‘임명동의제’는 우리 기자들의 총의를 모아 어렵게 만들어낸 제도이자 공정방송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앞으로 더욱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제도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시한 인사권자의 행태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번 국장 임명 강행을 “공정방송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법률 대응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29일 기자, PD 직군 조합원 등 50여명과 서울 KBS 본사에서 박 사장 규탄 시위를 진행한 강성원 KBS본부장은 “임명동의제는 KBS 뿐 아니라 교육방송 EBS도 채택하고 있으며 보수 언론사조차 시행하고 있는 언론 공정성에 기초가 되는 제도”라며 “임명동의제 형해화 시도는 언론 자유의 문제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문제”라고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 KBS노동조합 등 양대 노조 한계를 주장하며 지난해 출범한 KBS 같이(가치)노동조합도 “사측은 처음부터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하는 데만 관심있었다 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내정자들이 어떤 식으로 국을 끌어가겠다는 계획조차 지금까지 내놓지 않았다”며 “임명동의제조차 거치지 않은 국장의 리더십 누수는 명약관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25일 성명에서 “현재 임명동의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 구성원이 아닌 일부 노조원으로 참여가 제한됐고 이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며 “교섭대표노조는 이미 사측과의 보충협약에서 대상을 전 구성원으로 넓히자고 제안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미 시작했던 보충협약을 마무리짓고 이사회 의결을 거치면 될 일이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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