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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에서 ‘운동권 심판론’을 기치로 내건 후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야당이 장기집권 중인 지역구를 공략할 전략으로 ‘낡은 이념 vs 경제·민생’ 구도를 내세워 ‘중도층 사로잡기’에 나선 것이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내세운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 구호가 수도권 선거판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가운데 실질적인 표심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인다.
태영호 의원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 총선에서 현 지역구인 서울 강남갑이 아닌 구로을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이자 대표적인 ‘86(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다. 태 의원은 윤 의원을 겨냥해 “지금은 586 운동권 정치인이 아니라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로을은 민주당 출신들이 내리 5선을 당선한 여당의 ‘험지 중의 험지’로 꼽히는 곳이다. 태 의원은 “22대 총선의 시대정신은 한 지역에 너무 오래 동안 고여 있던 고인물은 빼버리고 새로운 물, 새로운 피, 새로운 바람, 새로운 정치인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역 발전을 위한 ‘새 인물론’을 제시했다.
태 의원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격전지에 출사표를 낸 여당 후보들은 저마다 “86 운동권을 타개하겠다”는 선거 표어를 내걸고 있다.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앞두고 있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도전장을 낸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으로 처음 개설된 지역구인 중·성동갑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20·21대 총선에서 연달아 당선을 안겨줬다.
임 전 비서실장은 한양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 등을 역임한 ‘86 운동권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윤 전 의원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임 전 비서실장을 가리켜 “민주화 운동 경력이라는 완장을 차고 특권의식과 반(反)시장, 반기업 교리로 경제와 부동산 시장을 난도질하는 게 껍데기, 국가가 돈만 풀면 잘 살 수 있다며 미래세대의 자산까지 끌어와 털어먹는 기만이 껍데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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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강성 운동권 출신인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에는 ‘86세대 청산’을 강조해온 김경율 비대위원이 나선다. 영입 인재로 최근 국민의힘에 입당한 호준석 전 YTN 앵커는 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인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갑에 도전장을 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민석 민주당 의원의 서울 영등포을에서는 여당의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맞붙을 예정이다. 대선 주자로 꼽히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여당 후보들이 ‘운동권 프레임’으로 야당 후보와의 대결 구도를 형성한건 한 위원장의 선거 구호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이래 이번 총선을 ‘운동권 특권 정치의 심판’으로 수차례 규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26일 취임 일성으로 “수십년간 386이 486·586·686 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위원장은 29일 당 회의에서도 “이번 총선에서는 운동권 특권 정치 심판이 시대정신”이라며 “임종석과 윤희숙,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나”라며 ‘운동권 vs 경제통’ 구도에 힘을 실었다.
‘이념 정치’에 대한 중도층의 피로감이 커진 가운데 여당의 ‘운동권 청산’ 전략이 먹혀들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무리한 프레임 씌우기’로 인식될 경우 여론의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 전 비서실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세대를 전부 묶어서 프레임을 씌우고 비난하고 중상모략을 하는 건 구태 정치 중 구태 정치”라고 여당의 ‘운동권 청산론’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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