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청정국이라 자부하던 대한민국의 혈류에 마약류가 퍼지기 시작했다. 마약은 외국인이나 조직폭력배나 하는 것이라며 쉬쉬하던 찰나 연간 마약사범 1만8395명(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 돌파. ‘범죄와의 전쟁’을 교본 삼은 정부는 지난해 1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책의 일환으로 경찰청과 관계부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NO EXIT’ 캠페인을 벌였다. 마약은 출구가 없으니 절대 시작하지 말라며 말이다. 시작하지 않는 것은 좋다. 그런데 이미 마약을 해버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약과의 전쟁 1주년을 맞아 <투데이신문>은 마약류 경험자와 치료시설, 관련 전문가 등 이 미로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투데이신문>은 경기 양주의 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에서 자신의 내면과 사회의 시선에 고군분투 중인 이들을 만나봤다.
주영씨는 과거의 자신을 ‘착한 딸’로 정의했다. 그는 일도 하고 가끔은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하는, 그러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꿈꿨다.
당시 23살 주영씨의 곁에는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마약 시작의 단초가 될 줄이야. 남자는 그에게 ‘한 번만 해 보고 하지 말라’고 했다. 주영씨 또한 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시작은 필로폰이었다. 한 번 물꼬가 트이면 물길은 점점 넓고 깊어지는 법이다. 주영씨의 손은 대마나 허브, 합성대마 등 신종마약류까지 닿게 됐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멈춰지지 않았다.
마약은 탈출도 힘들다는데, 속된 말로 ‘인생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과 정신이 모두 망가졌다. 그는 이전에 자연스럽게 누리던 일상의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고 회상했다.
해가 지면 사람이 무섭고, 공황이 왔다. 심할 때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일이 이렇게 될 때쯤엔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주영씨는 건너는 대신 가던 길로 직진하는 쪽을 택했다. 우연히 어느 건널목에서 파란 불을 만날 때까지.
집에 있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주영씨의 방까지 어머니가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영씨는 어떻게 엄마가 딸한테 그런 욕을 할 수가 있냐며 불같이 화냈다. 엄마는 집에 있지 않았는데.
와중에 지병이 있던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급하게 주영씨의 동의서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연락을 확인하지 못한 주영씨는 동의서를 건넬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가지 못한 그날을 후회하며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도 병원 측에서 자신의 마약류 투약 이력을 봤다면 승인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약을 끊어야겠다는 결심도 이때 했다. 부모님께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더 늦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착한 딸’의 투약으로 ‘날벼락’ 맞은 가족들이지만, 그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길로 주영씨는 거처를 정리하고 전라도로 내려갔다. 처음 가본 지역에서 주영씨는 지연이 끊어진 것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약을 구하기 힘든 환경이 됐다. 인근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며 생활을 꾸려 갔다.
스스로의 힘으로 약을 끊겠다고 다짐한 주영씨는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제 안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무엇 때문에 약을 하게 됐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지 참기만 하던 그는 위기를 맞았다. 다시 약이 하고 싶어졌다.
주영씨는 수도권으로 달려갔다. 약을 하기 위함이 아닌, 체계적인 단약을 위해서. 우선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대기가 너무 길었다. 몇 개월은 기다려야 했다. 그 대신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에 전화했다. 위기 상황 등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상담에 나섰다. 그러던 중 소개받은 곳이 경기도의 다르크(DARC) 센터다. 이는 마약 중독자의 회복을 돕는 민간단체로서, 24시간 상시 보호 형태로 운영된다.
어느덧 4개월 차를 맞은 주영씨. 공동체 생활에서 힘든 점도 있었다. 무엇이라 말을 꺼내려던 그는 일반인들의 시선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규칙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면 담배를 흡연구역에서 피우고,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분리수거를 하는 등 자잘한 규칙들.
주영씨는 입소자들은 약을 하면서 생활 습관이 다 무너져 기본적인 것들을 고치고 습관화하는 데까지 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다르크 입소자들이 센터에 머무는 기간은 보통 1년 남짓이다. 주영씨의 경우 앞으로 8개월 정도 남은 셈이다. 세상에 나갈 날을 기다리며 주영씨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치유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을 중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야무진 포부도 자랑했다.
그런가 하면 직장 동료에게 마약 권유를 받은 이도 있다. 또 다른 입소자 명우씨의 사례다. 그냥 약물만을 받은 게 아니다. 동료는 직접 투약까지 해줬다. 그래서 명우씨는 필로폰이라는 약물이 마약인지도 몰랐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헬스 탓인지 허리가 자주 아팠다. 허리 디스크로 장거리 운전을 동반한 업무에서 불편을 느끼던 명우씨에게 동료는 필로폰을 통증을 완화해 주고 집중도 잘 되게 해 주는 약물이라고 설명했다. 명우씨가 처음 약물을 투약한 곳도 운전대를 잠시 내려둔 휴게소였다.
몰랐던 게 죄라고 웃어 보인 그는 경찰 조사 이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명우씨의 눈에 먼저 띈 곳은 바로 마퇴본부였다. 단체는 인천에 위치한 참사랑병원을 소개했다. 역시 진료까지 3개월에서 6개월이 소요됐다. 상심한 명우씨에게 마퇴본부는 정신건강의학과 내원을 권유했다.
그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단약을 시도했다. 그러나 처방약에 녹아있는 수면제 성분은 명우씨의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힘 빠지게 했다. 결국 명우씨는 한 차례 단약에 실패했다. (그는 ‘넘어졌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명우씨는 마퇴본부 상담실로 돌아갔다. 상담사는 명우씨에게 다르크를 소개했다.
주간과 야간. 24시간 모두를 쏟아야 하는 시설에 그는 거부감을 느꼈다. 혼자 해 보겠다는 다짐이 무색해질 무렵, 결국 다르크에 입소했다. 그렇게 입소 1년 차다.
교우관계가 활발했던 명우씨는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들어가야 할지를 꽤나 고심했다. 다르크는 휴대폰 사용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명우씨는 주위에 ‘기도원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곤 떠났다. 입소 중 사실을 고백한 명우씨에게 친구들 또한 진심을 돌려줬다. “잘 회복하고, 나오면 한 번 보자.”
물론 상처가 된 말들도 많았지만 그는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고 자못 의연했다. 명우씨는 훗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돼서도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 거라고 했다. 안 좋은 시선을 돌리고 싶다면 본인과 같은 중독자들이 더 노력하면 되는 거라는 말도.
입소 기간 동안 재판이 있었다는 점도 단약에 도움이 됐다. 재판 기간 중 추가 건이 뜨면 형량이 무거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호관찰 과정에서 투약 검사를 꾸준히 해야 하기도 하고.
명우씨에게 다르크는 ‘학교’다. 센터에서 그는 약물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과 피해, 중독된 이유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다. 여전히 갈망은 있지만, 평생 참고 끊어가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지하지 못해 ‘넘어지던’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고도 강조했다. 그렇게 명우씨는 한 달 여 후 사회 복귀를 앞두고 있다.
센터는 개월 수에 따라 프로그램과 입소자의 자율성에 차별을 둔다. 명우씨는 초기 입소자와 다르게 외출이 가능하다. 사유는 등원. 그는 코딩 학원에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연(마약류 투약 제안)이 왔을 때 그것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느냐, 그저 우연으로 넘기느냐는 자신의 선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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