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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 “이선균 보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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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배우가 사망하면서 수사기관의 자료 유출 문제와 인권 침해 언론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이 높다.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를 개정하려는 정치권 움직임도 일고 있다. 법적 제도 개선이든 사회적 합의로든 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데 공감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내일이라도 당장 연예인 마약 사건이 터지면 수사기관과 언론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으로 남는다.

안준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혁 대표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펴낸 책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에서 마약 범죄를 둘러싼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수사당국의 실적주의, 피의사실공표죄 적용, 처벌보다는 치료로의 인식 변화 등 여러 방면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안 변호사는 “마치 교통사고처럼, 그렇게 평범한 누구라도 갑자기 마약 사건에 연루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중의 시선과는 상반된 인식이지만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로서 직접 의뢰 받은 사건들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특히 안 변호사는 ‘연예인’과 ‘마약’이라는 키워드가 합쳐졌을 때 그 파급력은 가늠할 수 없다며 수사당국의 자료 유출 문제, 언론 보도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마약 사건은 시작부터 편견과 억측, 비난이 함께한다. 한국에서 마약 사건은 늘 뜨거운 감자다. 유명인의 마약 투약 사건은 늘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이들을 감옥에 집어넣은 수사 담당자는 고속 승진한다. 이제는 그 대상이 일반인들까지 확대됐다. 수사기관이 공을 다투는 동안 무죄추정의 원칙은 유명무실해지고, 없는 일조차 부풀러져 자극적인 기사로 와전된다. 언론이 만든 이미지 마약 사범은 대중에게 ‘상종 못할 사람’으로 비난받는다.” (10p)

마약 자체에 대한 보도도 문제가 많다. 일례로 지상파 방송이 메인뉴스에서 마약 특집 보도를 편성했는데 첫 방송부터 실망했다고 안 변호사는 말한다. 미국 길거리 마약 투약자들이 좀비처럼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한국 사회도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식의 인터뷰를 내보내는 식이었다. 

안 변호사는 “뉴스는 마약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기자는 우리 사회에서 실제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실의 사람들과 단약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대신, 미국에 있는 유명한 마약 노숙자를 찾았다”고 지적했다. 최근 10년 마약 범죄가 증가했는데 그 10년 동안 마약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은 그대로라는 것.

안 변호사는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선균 배우와 관련한 보도에 대해 많이 비판하고 말들이 많은데 별로 놀랍지 않았다. 모든 보도를 그렇게 해왔다”고 덤덤히 말했다.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안준형 변호사.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안준형 변호사.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내용을 함께 기술했다.

– 마약 투약 사건, 특히 연예인이 연루된 사건에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사건이 터지면 일단 비난의 목소리부터 나온다. ‘마약 사건은 시작부터 편견과 억측, 비난이 함께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한국은 아직까지 마약 청정국이다. 본인이 마약을 했거나 주변에 투약한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이 드물다. 마약에 대해 정확한 정보도 모른다. 언론 매체를 통해 마약 사건을 접하다 보면 마약에 대한 두려움 내지 혐오 등이 생기게 돼있다.”

– 마약 투약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부정할 수 없지 않나.

“마약 투약 사건은 특별한 지점이 있다. 대부분 범죄는 피해자가 존재한다. 보통 피해자가 비난한다. 훔치고 때렸으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욕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고 합의하면 주변 사람의 비난은 크지 않다. 그런데 마약 사건이 벌어지면 그 가족들은 범죄를 원망하면서 가족이 투약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약 투약 사건 피의자들은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함께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이중고에 놓여 있다.”

– 구치소와 교소도는 마약 치료 측면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중독이라는 말은 의학적인 용어다. 마약 중독도 의학적인 측면에서 질병이다. 중독 역시 치료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약을 투약하고 중독된 사람이 교도소와 구치소를 가는데 우울증과 당뇨병에 걸려 치료를 원하는 사람과 같아야 한다. 그런데 교도소와 구치소 내에 중독 관련 전문 의사가 없다.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중독에 대해 치료를 받겠다고 해도 외래 진료 허가가 나지 않는다. 출소 이후 투약 재범 비율이 높은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고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고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처벌보다는 중독 치료가 우선인가.

“담배를 피고 싶고 술을 마시고 싶은 것도 마약과 같이 중독에 의한 갈망이다. 이런 갈망에 제일 중요한 것은 중독 물질에 노출이 안되게 하는 것이다. 방송에서 담배를 피고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약 투약자는 ‘뽕빵’이라고 해서 투약자끼리 가둬놓는데 그러면 물리적으로 몸은 중독에서 벗어나지만 정신은 중독돼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 일명 ‘출소뽕’이라고 해서 출소하자 마자 당일날 투약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도 이런 이유다”

– 연예인 마약 사건과 관련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수사정보 유출과 언론 보도 행태다. 수사 정보 유출 사례를 직접 경험한 내용이 있나.

“최근에 발생한 유아인 사건만 보면 투약 공범이 몇 명인지 그 사람의 직업은 무엇인지, 소변 검사 결과 양성 음성이 어떻게 나왔는지, 언제 출석해서 부인하고 어떤 내용은 인정하는지, 소변에 마약 물질이 몇 가지 나왔는지 경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민감한 정보가 언론에 보도된다. 경찰의 의도든 아니든 흘러나온 것이다.”

안 변호사는 자신의 책에서 직접 겪은 ‘흥미로운 경험’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세를 얻어 활동하던 인플루언서 L씨의 변호를 의뢰받았는데 체포 이후 “수사 과정은 변호인은 물론 당사자 L씨보다 언론에 먼저 알려졌다”는 것이다. 안 변호사는 “그녀의 소변과 모발의 국과수 감정 결과 어땠는지, 보통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당사자와 변호인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정보를 나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고 적했다.

– 피의사실 공표죄는 사문화된 관행으로 남아있고, 국민 알권리와 충돌된다는 지적도 있다. 연예인이란 이유로 수사의 표적이 되거나 피의사실이 쉽게 공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 개선책은 뭐라고 보나.

“그동안 경찰은 내부 정보 유출에 전혀 수사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이선균 배우가 사망하자 비로소 수사에 나선 것이다. 이런 조치가 진작부터 있었으면 연예인 마약 사건의 부작용은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무죄추정원칙을 가진 법치 국가에서 빈번하게 수사 정보가 유출되는 것에 대해 경찰이 우선 반성해야 한다.”

– 수사기관의 실적 경쟁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한 경찰이 ‘잔챙이 마약 사범 100명 잡는 것보다 연예인 한 명 잡는 것이 낫다’고 한 말이 상징적이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려 유착관계가 형성되는 문제도 있어 보인다.

“언론은 수사 정보를 원하고 경찰은 이를 이용해서 실적 홍보 수단을 삼는다. 언론에 노출돼 보도된 것을 성과로 보고 승진시킨다. 경찰 내부적으로 조금 더 정제되고 일관된 승진 시스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고, 기자들한테 들어온 정보를 기사화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언론에 수사과정 및 피의사실을 관행적으로 유출하는 행위만은 막아야 한다.”

▲ KBS가 지난해 11월24일 뉴스9에서 고 이선균씨와 유흥업소 실장 A씨와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9 영상 갈무리
▲ KBS가 지난해 11월24일 뉴스9에서 고 이선균씨와 유흥업소 실장 A씨와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9 영상 갈무리

– 마약 관련 보도는 어떻게 보나.

“마약에 대해 조금 더 깊이있는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 환각 상태로 돌아다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도대체 왜 길거리에 이런 모습이 늘었을까 심층적인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 오히려 마약에 대해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좋다. 어떤 마약이 위험하고 어떻게 마약이 유통되고 있는지 깊이있는 보도를 통해 기존의 단편적인 보도를 뛰어넘어야 한다.”

– 이선균 배우와 관련한 언론 보도도 문제가 많았다. 심각하게 봤던 언론 보도는 무엇인가.

“이선균 배우 관련 언론 보도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동안 모든 연예인 보도를 그렇게 해왔다.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과 관련한 녹취록 보도도 나왔지만 가장 심각하게 봤던 것은 머리털과 다리털, 겨드랑이털이 뽑혔다는 보도였다.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을 생생하게 보도해 불편했다. 신체 압수수색은 인간에 대한 기본권 침해이고 굉장히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을 보도한 언론이 가십으로 다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4월 21일 <집단 마약 환각 파티 男 60명 전원 에이즈> <60명 에이즈 남성 마약 파티...사회복무요원도 있어 충격> 등 여러 언론 보도 역시 대표적인 혐오성 보도로 지적했다. 보도만 보면 에이즈에 걸린 남성 60명이 모두 마약을 투약하고 환각파티를 벌여 경찰이 소탕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안 변호사는 위 사건에 연루된 사람의 의뢰를 받은 당사자다. 사건은 한 투약자의 자백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를 고리로 새로운 마약 투약자를 차례로 잡아들였고 그 숫자가 60명으로 불어놨다. 피의자마다 마약 범죄 행태와 시기, 경중이 달랐는데 경찰이 ‘60명 검거’라는 자료를 배포하자 그 대목을 언론이 따라 쓴 것이다.

안 변호사는 “60명이 모여 마약을 하고 섹스 파티를 한 것도 아니고 한 번에 체포된 것도 아니다”라며 “마약 사범 한명을 잡아서 2년 동안 타고 타고 올라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여러 명을 잡아 60명이 됐고, 그 중 HIV 환자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영상 캡쳐.

이선균 배우 사망에 연예계가 집단 행동에 나서 수사 정보 유출과 언론 보도 책임을 물었는데 그는 책에서 비슷한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2009년 가수 K씨가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지는 마약수사에서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고, 인권을 보호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압수 수색 영장에 근거하기는 했지만, 경찰과 검찰의 불시 단속으로 그는 지하 주차장 등에서 소변과 체모 채취를 강요받았다. 마약 검사는 모두 음성이 나와 그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수사기관은 단순히 제삼자의 제보만으로 재차 영장을 받아와 그를 괴롭혔다. 연예인 자신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수사기관의 소위 ‘연예인 털기’를 공론화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140p)

“(한 배우는)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의 이러한 수사 정보 공표 사실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역시 ‘해당 연예인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적인 기사로 송출되면서 여론만 더 안 좋아지게 됐고, 결국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처럼 수사기관, 언론, 그리고 여론까지 함께 상대해야 하는 연예인은 수사 절차에서 일반인보다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143p)

안 변호사는 “마약을 없애려면 수요와 공급을 막아야 한다. 일반 투약자는 잡기 너무 쉽다. 그런데 해외의 진짜 공급책은 잡기 어렵다. 당장 성과로 잡히지 않는다. 결국 공급이 줄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정부 정책으로) 수요자들을 일시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겠지만 치료를 병행하지 않으면 수요 역시 줄지 않는다. 해외 유통망을 잡던지 치료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 마약 범죄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언론의 자성과 변화 또한 촉구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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