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의외였습니다.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라는 전제까지 붙였는데 4월 총선에서 기후위기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다면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응답이 62.5%나 나올지 몰랐습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정당 보고 투표한다는 선입견을 깨는 조사결과였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사진)은 “3분의 2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기후공약을 보겠다고 답했다는 부분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23일 비즈니스포스트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몇백 명 수준으로 조사한 결과가 아니다. 18세 이상 남녀 1만7천명, 대규모 조사다. 통상적인 여론조사 응답자수가 1천~2천 명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열 배 수준이다. 17개 광역시도에서 1천 명씩, 국회의원 선거구를 고려해 지난해 12월 27일간 조사했다.
조사주체는 녹색전환연구소를 비롯해 로컬에너지랩, 더가능연구소 등 ‘기후정치바람’. 이들은 대규모 여론조사로 무엇을 밝히려 한 것일까.
이 소장은 ‘기후유권자’를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기후의제에 대해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를 고려하는 유권자’가 바로 기후유권자다.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의지가 있는 유권자가 있다 해도 그것이 표로 연결되려면 기후유권자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고, 어떤 정책에 반응하는지 알아야 기후가 정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기후정치바람’은 선거 태도와 기후위기 관련 용어 등 기후정보, 개인 경험과 기후행동 참여 등 기후민감도, 본인의 자산가치에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 정치행동 및 현안 인식 등 8개 부문을 유권자별로 조사했다.
그 중 기후정보지수 3.8점 이상, 기후민감도 지수 25.6점 이상, 기후투표 의향을 가진 유권자를 골라냈다. 전체 응답자의 33.5%가 ‘기후유권자’에 해당했다.
‘기후유권자’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는 또 한 번 기존의 선입견을 깼다. 남성(35.7%)이 여성(31.4%)보다, 60세 이상이 30~50대는 물론 18~29세보다 많았다.
성별, 연령별 기후유권자 비중은 60대 이상 남성이 가장 높았다. 50대 남성과 40대 남성, 30대 남성의 기후유권자 비중은 18~29세 여성과 30대 여성, 40대 여성보다 높았다.
60대 이상 남성에서 기후유권자 비중이 높게 나타난 데에 대해 이 소장은 “60대 이상 연령층이 기후위기 경험치와 정보치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후문제에 대한 인지도, 기후민감도가 높을수록 기후투표 의향이 높았다”는 것이다.
‘경험’의 중요성은 지역별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광역시도 기준으로 기후유권자 비중은 전남(38.1%)이 서울(36.3%), 대전(34.3%), 광주(34.1%)보다 높았다. 전남 유권자들은 특히 ‘직접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응답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
이 소장은 전남이 가뭄 피해를 크게 입은 지역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광주’전남 지역 최대 상수원인 주암댐은 2022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316일 동안 가뭄을 겪었다.
“가뭄이라는 기후위기 경험이 전남 유권자들의 기후위기 경험을 높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레이 보트(gray vote, 고령 유권자)’가 기후정치의 중심에 있는 것이죠.”
이 소장은 4월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기후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봤다. 특히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 기후공약이 마음에 들면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답한 유권자들을 중요하게 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후보라면 기후 관련 공약을 내야 합니다. 특히 1~2% 표차로 당락이 결정될 곳,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지역은 기후 공약 여부가 승패를 가를 수 있습니다.”
마침 미국에서도 비슷한 분석 결과가 나왔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볼더캠퍼스의 미래사회환경센터(CSEF)가 미국 유권자 4513명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2020년 대선 때 기후변화 이슈 때문에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3%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국에서 기후변화를 중점적으로 고려해 투표한 유권자 비율은 67%, 즉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였다. 한국에서 기후공약을 보겠다는 유권자 비중과 유사하다.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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