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을 찾았다. 대학 경영자로서 교육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막 수업이 끝나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내 귀를 잡아당긴다. “강의 듣기도 바쁘고 실습도 빡빡한데 이런 거까지 꼭 들어야 하나?” 무슨 이야기일까. 귀가 더욱 학생에게 쏠렸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친구인 듯한 이의 대답을 듣고서야 풀렸다. “그러게. 안전교육 들으라고 하니까 들어야지 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두고 지난해 말부터 해를 넘긴 지금까지 여론이 뜨겁다. 거꾸로 올라가 보면, 시작은 이랬다. ‘부칙 제1조 제1항 중 공포 후 3년을 공포 후 5년으로 한다’ 지난해 9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내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공포해 2022년 1월부터 시행 중이다. 그러니까 법 공포 후 3년이 지나는 날은 이달 27일이다.
이 법은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 노동자인 김용균 씨 사망 사고를 계기로 제정됐다. 핵심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데 있다.
제정 당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불명확하다는 논란이 일면서 50인 미만 기업 대상 시행 시기를 2024년 1월로 미뤘다. 이후 영세 중소기업들은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하고 법 적용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다. 이에 여당은 지난해 9월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하자는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2022년 법 시행 후 사망 사고에는 변화가 있을까? 정부가 발표한 2023년 9월 말 기준 재해조사 대상 사망 사고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3분기(누적) 재해조사 사고 사망자는 459명(449건)으로 전년 동기 510명(483건) 대비 51명(10%), 34건(7%)으로 각각 감소했다. 유형별로는 ‘떨어짐’ 180명(24명 감소), ‘끼임’ 48명(30명 감소), ‘부딪힘’ 53명(3명 증가), ‘깔림 및 뒤집힘’ 37명(3명 감소), ‘물체에 맞음’ 57명(23명 증가)이다. 50인(억원) 미만 사업장은 감소세인 반면, 중대형 건설사의 사망사고는 대폭 증가하여 50억 이상 건설업의 사망자 수 및 사망 건수 모두 증가했다.
법 시행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유예기간 추가 연장 여부를 놓고 찬반 여론이 거세지는 형국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기술과 제도의 발전만으로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사업주나 근로자 모두 법 제도 아래 보호돼야 하지만, 산업재해는 법 제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법만 시행되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의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제도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현장 근로자의 안전의식도 높아져야 한다. 선진화된 제도 정비와 높은 안전의식은 산업안전을 이끄는 두 개의 수레바퀴와도 같다. 두 개의 바퀴가 균형 있게 돌아야 삐그덕거리지 않고 이동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얼마 전 중대재해를 숨기려고 한 현장 관리자가 재판에 넘겨졌다. 아파트 지하에서 배관 점검 중이던 작업자가 사다리가 부러져 추락하면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과실이 드러나면 더 큰 처벌을 받을 것이 두려웠던 관리자는 사고 직후 작업자가 쓰지도 않았던 안전모에 피를 묻혀 현장에 둔 것이다. 개탄할 일이다. 작업 당시 2인 1조라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은 제대로 지켜졌는지, 관리자에게는 안전의식이라는 게 과연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인 수칙과 의식조차 아쉬운 현실이다.
산업안전분야에서 회자되는 하인리히 법칙이 강조되는 이유다.
현장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안전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또 실제로 지켜져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고용시장에 들어가기 전 교육단계에서부터 안전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산업현장 근무 기간이 적은 근로자일수록 산업재해율이 높다. 지난 ’23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산업재해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입사 근속기간별 산업 재해 발생률은 휴업재해자수(근로복지공단의 휴업급여를 지급받은 재해자 수) 기준 6개월 미만이 49,714명(58.7%)으로 가장 많이 발생했다. 6개월~1년 미만은 8,157명(9.6%)으로 뒤를 잇는다. 처음 일터에 가는 근로자가 산업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작업을 위해 필요로 하는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교육이 학교에서건 직업교육 현장에서건 절실한 이유다.
특히 직업훈련단계에서 안전보건교육은 미숙련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이해향상과 보호 능력 배양을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안전보건교육이 직업훈련단계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기초해 생애 안전보건 교육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예비 근로자 단계에서부터 튼실한 안전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필자가 몸담은 한국폴리텍대학은 매년 10만여 명의 산업인력을 배출한다. 예비 산업인력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교육의 필요성이 큰 만큼 폴리텍대학은 ’24년부터 전 과정 모든 직업교육생을 대상으로 전공별 산업안전 교과를 운영한다. 안전보건공단, 대학 등 관련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집필진이 기계, 전기, 화공, 반도체 등 전공별 산업안전 교과를 제작하고, 학생은 전공에 따라 선택 수강한다. 교육생은 안전교육을 통해 산업안전과 중대재해를 이해하고 ‘누구나 안심하며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안전 수칙을 준수하는 근로자로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산업재해 발생 원인은 복잡다단해서 사고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예방 노력이 최선이다. 정부 규제에 의한 정책적 노력을 바탕으로 근로자의 안전 행동 및 경영자의 안전의식이 확산돼 사회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산업재해의 위험 요소가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내 옆을 스쳐 간 학생에게 해줬어야 하는 말 한마디가 자꾸 머리를 맴돈다. “학생, 안전교육은 들으라고 하니까 듣는 게 아니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듣는 거야” 너무나도 당연한 그 이야기를 꼭 해줬어야만 했다. 얼마 뒤 그들이 산업현장에서 맞이할 다양한 상황에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말이다.
임춘건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직무대리
〈필자〉 임춘건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직무대리는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여 년간 국회에서 근무하고,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안전행정부 장관정책보좌관과 여의도연구원 정책연구센터장 등을 역임했으며, 두원공과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했다. 임 이사장직무대리는 반도체, AI디지털, 바이오 등 신산업 인재양성을 위한 학과 신설과 뿌리산업 기술고도화 개편 등 교육훈련 품질 향상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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