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ㆍ출산휴가ㆍ유연근무 모두 ‘대-중소기업 빈부격차’ 심각
‘동료 눈치ㆍ소득 감소·승진 불이익’ 등도 장애물
고용보험기금 여력 없어…”재원 마련 사회적 논의 필요”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홍준석 기자 =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들의 도입과 활용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대-중소기업 간 ‘격차’나 보이지 않는 ‘문턱’은 여전하다.
저출생 위기 해소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육아휴직 확대 등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러한 대책이 다수의 혜택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각지대’나 격차 해소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육아휴직 등 활용 늘지만…’기업별 빈부격차’ 뚜렷
21일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밝힌 사업체는 전체의 52.5%에 그쳤다.
27.1%는 ‘필요한 사람 중 일부가 사용 가능’하다고 했고, 20.4%는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5곳 중 1곳에서 육아휴직 활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이다.
이번 실태조사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7∼10월 근로자 5인 이상 표본 사업체 5천38곳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육아휴직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답한 사업체의 비율은 2017년 44.1%, 2019년 45.4%, 2021년 50.7% 등 증가 추세다.
그러나 기업 규모별로 보면 그 격차가 뚜렷하다.
300인 이상 사업체는 95.1%가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5∼9인 사업체는 그 절반인 47.8%, 10∼29인 기업은 50.8%만 그렇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여성의 출산 전후 휴가, 배우자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다른 일·가정 양립 제도도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컸다.
배우자 출산휴가의 경우 ‘필요한 사람은 모두 쓸 수 있다’는 사업장이 300인 이상 사업장 중에선 84.1%였지만, 10∼29인 사업장은 60.4%, 5∼9인 사업장은 57.9%에 불과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300인 이상 사업장 중엔 83.5%가 ‘필요하면 모두 쓸 수 있다’고 답한 데 반해, 5∼9인 사업장 중에선 54.8%만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했다.
정성미 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육아휴직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의 규모와 관계 없이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동료 눈치ㆍ소득 감소·승진 불이익’ 등도 제도 활용 장애물
이 같은 제도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유로는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인력이 제한적이어서 남은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더 커지는 작은 사업장일수록 육아휴직 등을 쓰기가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실태조사가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것임을 고려하면 대기업 내에서조차 일반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제도 활용률은 더 낮을 가능성도 있다.
유형·무형의 장애물들로 인해 제도 활용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에 따른 소득 감소는 휴직을 가로막는 결정적 이유다. 현재 육아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80%로, 월 150만원 상한이다.
승진 지연, 보직 제한 등 각종 불이익도 사라지진 않았다.
원칙적으로 육아휴직 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해야 하지만, 조사 대상 사업체 중 30.7%만 휴직 기간 전체를 승진 소요기간에 산입했다.
23.7%는 일부만 산입했고, 45.6%는 아예 산입하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쓴 만큼 승진이 늦어진다는 얘기다.
인사 담당자조차 제도에 대해 잘 몰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도입한 일·가정 양립 제도 가운데 난임치료 휴가에 대해선 42.0%, 가족돌봄휴직은 39.3%,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29.4%의 사업체가 ‘모른다’고 답했다.
더구나 일부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등을 포함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육아휴직 등의 혜택에서 아예 소외된 ‘사각지대’다.
◇ “고용보험기금만으론 지속 가능하지 않아”…재원 논의 필요
이번에 여야가 내놓은 저출생 공약들을 비롯해 각종 일·가정 양립 제도를 확대하고 지원을 늘리는 것은 모두 ‘돈’이 드는 일이다.
재원 마련 방안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현재 육아휴직 급여 등은 고용보험 가입자인 사업자와 근로자들이 낸 고용보험 기금에서 지급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 규모는 2022년 말 6조4천130억원이다. 2018년 9조7천97억원에서 코로나19로 실업급여 지출 등이 늘면서 기금도 줄다가 2022년부터 다시 회복됐다.
코로나19 기간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려온 예수금(10조3천억원)을 제외한 실적립금은 약 3조9천억원 적자다.
일상회복 후 기금 지출 등이 정상화하면서 작년 말 기준 적립금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실업급여 개편을 추진하면서 ‘기금의 재정 건전성’을 이유 중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노총 여성청년본부의 허윤정 실장은 “육아휴직 규모가 커진 만큼, 국가가 일반회계로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 고용보험기금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한정된 기금 안에서의 출산율 제고 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성미 박사는 “제도 확대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구체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며 “별도 기금을 마련하거나, 실업급여와 분리한 별도 재원으로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며, 이는 ‘결정’의 문제”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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