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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명 해부했다”…독립군 ‘마루타’로 죽이고, ‘벼룩 폭탄’ 만든 악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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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9·11 테러 뒤 한동안 미국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또 다른 테러가 있었다. 독자 분들이 기억하시듯, 그 테러의 이름은 ‘탄저균 테러’였다. 2001년 10월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톰 대슐 의원, 대중지 <선>(Sun) 사진부장, NBC 방송사 앵커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에 백색 가루가 담긴 우편물이 배달됐다. 백색 가루엔 치명적인 생물무기(BW)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탄저균이 들어 있었다.

9.11 테러 뒤 퍼진 탄저균 공포

탄저균은 호흡기나 피부 그리고 음식물로 감염된다. 일단 이 세균에 감염된 사람은 혼수상태에 빠지고 치사율도 높다. <선>의 사진부장을 비롯, 탄저균 우편물을 받아 감염된 22명 가운데 5명이 숨졌다. 미국 사회가 불안에 떨었다(그 무렵 필자는 뉴욕 맨해튼에서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 이웃 할머니가 1층 로비의 우편함을 열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모습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탄저균 테러의 진범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몇 해를 끌었다. 2008년 미 연방수사국(FBI)이 용의자를 찾아냈다. 미 메릴랜드주 포트 디트릭에 있는 미 육군 생화학무기연구소에서 35년째 근무하던 브루스 이빈스(62)였다. 이빈스는 FBI 요원이 다가오자 자살해버렸다. 동료들로부터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남성’이라 여겨졌던 모범생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그 뒤로 여러 이야기들이 따랐다. 탄저균 백신 개발로 떼돈 벌려는 제약사 연구자들의 소행이라는 음모론(?)도 나돌았다.

2015년 한국에서도 탄저균이 논란이 됐다. 주한미군은 오랫동안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고 탄저균을 오산 공군기지로 들여와 훈련용으로 실험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우리 국민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확인된 것만도 2009년부터 무려 16차례 탄저균을 들여왔다고 했다. 미군은 몸에 해가 없는 탄저균 사균(死菌)이라 주장했지만, 9.11테러 직후의 탄저균 테러를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은 탄저균의 ‘탄’ 자만 들어도 걱정이 들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탄저균의 원조는 ‘죽음의 부대’ 또는 ‘악마의 부대’라 일컬어지는 731부대의 수괴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59)다. 미국-이시이 사이의 더러운 비밀거래는 걸음마 단계에 있던 미국의 세균전 능력을 크게 높였다(이에 대해선 다시 살펴봄).

▲ 731부대는 세균 무기로 중국 농촌과 도시들을 공격해 많은 사망자를 냈다. 1939년 1월1일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 군의소장이 정수기 필터를 점검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말뚝에 사람 묶고 탄저균 생체실험

일찍이 이시이 시로의 731부대는 문제의 탄저균 개발에 나섰다. 731부대가 ‘악마의 부대’라 비난을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 산 사람을 생체실험으로 희생시켰다는 사실이다. 아래에 옮긴 글은 만주 벌판의 야외시험장에서 이뤄졌던 탄저균 실험 상황이다. 이 글을 간추린 ‘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는 이른바 ’15년 전쟁'(1931년 만주침공~1945년 패전) 동안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와 책임을 규명하려는 양심적 의학자·의사들의 모임이다.

[대부분은 사람을 말뚝에 묶고 헬멧을 씌우고 갑옷을 입혔다. 지상에서 고정해 폭발하는 것, 비행기에서 투하된 시한 기폭 장치가 설치된 것 등 각종 폭탄으로 실험했다. (한 실험에서) 10명 가운데 6명의 혈액에서 균이 발견됐고, 이 중 4명은 호흡기로부터 감염됐다고 추정했다. 4명 모두 사망했다. 이 4명과 일제히 폭발한 9개의 폭탄과의 거리는 25m였다](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 <731부대와 의사들>,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4, 32-33쪽).

생체실험을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저공비행을 하면서 세균폭탄, 또는 페스트를 비롯한 세균에 감염된 벼룩을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마루타'(피실험자)를 기둥에 묶어놓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전기 장치를 이용해서 폭탄을 터트리는 방식도 썼다. 야외실험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약 2시간 정도 관찰을 한 뒤 피실험자를 (731부대 안의) 감옥에 다시 가두고 계속해서 병세를 관찰하였다. 피실험자가 감염되어도 치료해주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다 죽으면 실험자에게는 제일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731부대는 이렇게 각종 세균의 효력을 검사하기 위해 사격장(야외실험장)에서 생체실험을 하였다. 자주 사용한 세균은 (페스트균과 더불어) 탄저균, 탄저열균, 콜레라균과 장티푸스균이었다] (진청민, <일본군 세균전>, 청문각, 2010, 195쪽).

731부대의 야외 생체실험은 실제 전투 지형지물과 비슷한 야외 사격장에서 주로 이뤄졌다. 하얼빈 동북부의 안다(安達), 청쯔거우(城子溝), 자무쓰(佳木斯), 타오라이자오 등이었다. 가끔은 동북 산간지대와 후룬베이얼 초원 등지에서도 실험을 했다. 야외실험을 할 때엔 생물무기인 세균뿐 아니라 화학무기인 독가스 실험으로 ‘마루타’들을 죽였다. 실험장 주변의 환경을 오염시켰음은 물론이다.

‘특이급'(特移扱)된 ‘마루타’들

731부대로 ‘마루타’를 데려오는 것을 일본인들은 ‘특이급'(特移扱)이란 용어를 썼다. 특별 이송이란 의미를 지닌 마루타 수송은 관동군 헌병의 삼엄한 눈초리 아래 비밀리에 이뤄졌다. 8.15 패전 뒤 소련군에 붙잡혀 하바롭스크 전범재판(1949)의 피고석에 섰던 가와시마 기요시 세균제조부장은 ‘특이급된 마루타 가운데는 여성과 어린이들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가와시마 세균제조부장은 계급이 군의소장으로, 서열상 이시이 군의중장 바로 아래였다. 그는 징역 25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던 1956년 일본·소련 국교 회복 뒤 풀려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하바롭스크 재판에 대해선 다음 주 글에서 살펴봄).

‘마루타’는 대부분이 반일 성향의 비(非)일본인들이었다. 중국인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 독립투사들, 소수의 러시아인 포로들도 생체실험의 희생양이 됐다. ‘마루타’ 숫자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3000명에서 5000명쯤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270명쯤으로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마루타’로 있다가 살아서 나간 이는 없다. 생체실험 자체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실험이 아니라, 죽음을 전제로 한 실험이었다. 일단 마루타로 붙잡혀 들어가면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에 얹혀 온갖 가학적인 실험에 시달려야 했다. ‘인간 모르모트’가 된 그들은 죽음의 공정을 밟으며 짧든 길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죽었다.

▲ 일본 관동군 헌병대가 731부대에 생체실험용 ‘마루타’로 희생시킨 사람들 가운데엔 심득룡(沈得龍)을 비롯한 조선 독립투사들도 있었다. ⓒ심득룡 열사의 결혼식 사진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조선 독립투사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731부대의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 조선 독립투사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일본 군부는 1945년 패전 무렵 전쟁범죄 증거가 될 만한 서류들을 불태워 폐기했다. 731부대도 그랬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숨졌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1949년 12월 소련 하바롭스크 전범재판, 1956년 6월과 7월에 산시성 타이위완(太原)과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열린 특별군사법정 등으로 731부대의 범죄 사실이 부분적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아침이면 해가 솟듯이 진상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1990년대 들어 특이급 관련 문서들이 잇달아 발견됨에 따라 731부대의 죄악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1997년 한 중국 방송국이 731부대 관련 다큐를 만들려고 헤이룽장성의 당안관(문서보관실)를 뒤지다가 관동군 헌병대의 ‘특이급’ 문서 66건을 찾아냈다. 2001년에는 중국 지린성의 당안관에서도 ‘특이급’ 문서들이 발견됐다. 이들 문서에는 731부대로 끌려간 조선인 고창률(高昌律), 김성서(金聖瑞), 한성진(韓成鎭), 이기수(李基洙) 등 4명의 이름과 나이, 본적이 적혀 있었다.

관동군 헌병이 작성한 이들 문서의 ‘최종 처분’ 항목을 보면, ‘이용가치가 없으므로 특이급으로 함이 적당하다’는 문구가 공통적으로 보인다. ‘이용가치’가 없다는 것은 이들을 미끼로 다른 독립투사들을 잡아내거나 ‘전향’을 시켜 일제 침략의 나팔수로 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 관동군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았을 이들 투사들은 (정식 재판도 없이) 생체실험이란 이름의 또 다른 고문을 731부대에서 받다가 숨졌다.

‘남한 출신 마루타’ 혼령이 한국에 온다면…

그 뒤로도 여러 명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심득룡(沈得龍), 김성배(金成培), 김용권(金龍權), 조복원(趙福元), 장혜충(張慧忠), 조종박(趙宗博), 주지영(朱之盈), 손조산(孫朝山), 오전흥(吳澱興), 경은서(敬恩瑞) 등이다(이들이 모두 731부대로 끌려가 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증언은 있지만, 관련 문서는 부족하거나 없다). 위에서 이름이 드러난 마루타는 270명뿐이라 했다. 이름도 남김없이 죽어간 또 다른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있었을 것은 틀림없다.

몇몇 투사들은 만주 일대에서 소련 첩자로 활동한 혐의를 받았다. 이를테면 심득룡(1911-1943)이 그러했다. 그는 1929년 공산당에 입당해 동북항일인민혁명군 소속으로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에 맞서 싸웠고, 1940년대엔 다렌의 사진관을 근거지 삼아 소련 적군 참모부에게 일본군의 동태를 무전으로 알려주었다. 일본군의 전파 탐지에 걸려 함께 붙잡힌 3명의 동지와 함께 심한 고문을 받다가 731부대로 ‘특이급’됐다(심득룡에 대해선 한원상, ‘731부대 생체실험 대상된 조선인 마루타 있었다’,「민족 21」2002년 9월호. 김효순,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서해문집, 2020, 398-402 참조 바람).

김성배와 김용권, 이 두 독립투사들은 2016년 초에 방영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731부대, 남한 첫 마루타 피해자를 찾다’에서 ‘남한 출신 마루타’로 소개됐다. 이들의 혼령이 만주 벌판을 지나 압록강을 건너 멀리 남쪽 고향을 찾아온다면,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신친일파’들이 궤변을 늘어놓는 대한민국을 보며 어떤 탄식을 내뱉을까.

731부대의 핵심은 1-4부

731부대는 모두 8부로 이뤄졌다. 생체실험을 통한 세균전 준비라는 점에서 731부대의 핵심은 1~4부였다(그밖에 총부무, 교육부, 자재부, 진료부가 있었다). 제1부는 세균연구부로 페스트, 탄저 등 세균에 따라 몇 개 과로 나뉘어졌다. 제2부는 세균 실전 연구부로 곤충반, 항공반, 식물반으로 이뤄졌다. 페스트균을 옮기는 벼룩도 이곳 곤충반에서 번식시켰다.

제3부는 이시이가 설계해 특허를 낸 이른바 ‘이시이식 정수기’를 만들었다. 하얼빈 시내의 일본 육군병원 바로 옆에 공장과 사무실을 둔 제3부는 대외적으로 731부대가 ‘방역급수’에 전념을 하는 부대로 위장하는 역할을 맡았다(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 공장에서는 정수기뿐 아니라 벼룩을 이용해 페스트균을 넣는 도자기 폭탄의 용기를 만들었다).

문제의 제4부가 세균제조부였다. 제조부장 가와시마 기요시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제4부의 제조능력은 2개월 동안 페스트균 300kg. 티푸스균 800~900kg, 콜레라균 1톤이나 됐다(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 29쪽). 특히 731부대가 악명을 떨친 것은 벼룩을 이용한 페스트 탄 개발과 생산이었다. 1945년 일본 패전 뒤 731부대원들을 조사하려고 미국에서 파견된 한 요원은 1947년 6월30일 이렇게 보고했다.

[벼룩 번식법과 쥐를 통해 벼룩을 감염시키는 방법을 방대하게 연구했다. 페스트 벼룩은 최선의 조건 아래서 30일 생존하는데 그동안 감염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1㎡ 당 벼룩 20마리가 있는 방에다 마루타(수감자)를 놔두었는데, 10명 중 6명이 감염돼 그 가운데 4명이 죽었다](전쟁과 의료윤리 검증추진회, 30쪽).

▲ 1941년 야외 실험장에서 731부대원들이 실험용으로 쓰이다 죽게 될 중국인 ‘마루타’들을 감시중이다. ⓒ위키미디어

‘이시이 기관’으로 중국 전역 아우르다

‘방역급수부’로 위장한 일본의 세균전 부대는 731부대 하나만 아니다. 1938년부터 1942년 사이에 베이징(1855부대), 난징(1644부대), 광둥(8604부대)에 방역급수부 기지가 들어섰다. 1942년 2월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하자, 그곳에도 방역급수부(9420부대)가 생겨났다. 말이나 동물에 대한 생물전을 연구하는 부대로 1936년에 만든 관동군 군마방역창(100부대, 장춘시)도 731부대의 자매 부대였다. 이름이 ‘군마방역’이지 가축뿐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해부 실험도 했다.

731부대는 관동군 사령관의 지휘를 받았고, 1855부대는 북지나파견군, 1644부대는 중지나파견군, 8604부대는 남지나파견군 사령관의 지휘를 각각 받았다. 이들 부대들은 각기 부대장이 있었지만, 사실상의 최상급 지휘관은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였다. 일본 군부에서는 이들 5대 부대와 육군군의학교 방역연구실까지 합쳐 ‘이시이 기관’이라 일컬었다.

이들 부대들은 적게는 500명에서 1500명 규모였고, ‘이시이 기관’ 전체 인원은 1만 명에 이르렀다. 부대 지휘관들은 이시이 시로와 긴밀히 정보를 주고받으며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생체실험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731부대 요원들이 파견 근무를 하거나 출장을 가서 거들었다. 페스트 균을 실어 보내기도 했다.

“나는 1940년 9월 초순, 재료반원 3명과 함께 세균 대량생산대 2대대장 스즈키 히로유키 소령의 명령에 따라, 연구실에서 패트폰의 공병에 들어있는 티푸스균 약 10kg을 2개의 상자에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포장해서 밀봉하고, 항공반으로 운반해서, 난징으로 가는 비행기에 실었다”(한민족문화교류협의회, <일본관동군 731부대 생체실험증거자료집>, 2009, 211-212쪽).

난징으로 페스트 균을 보냈다면, 받는 곳은 1644부대였을 것이다. 위 증언은 731부대에서 방역진료 조수로 일했던 다무라 요시오(田村良雄) 병장이 자신의 전쟁범죄를 뇌우치고 세균전 비밀을 폭로하는 공술서의 일부다. 지난 주 글에서 봤듯이, 다무라는 페스트에 걸려 다 죽어가던 일본인 731부대원이 생체 해부 당했던 충격적 상황을 폭로했었다(연재 54 참조).

“하루에 5명 해부했다”

[1943년 초 나는 731부대 감옥의 수감자에게 장티푸스균을 감염시키는 실험에 처음 참가하였다. 나는 미리 1kg의 장티푸스균을 넣은 단맛이 나는 물을 준비하여 일반 식용수로 희석시킨 뒤, 50명의 중국인에게 나누어 마시게 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그들 모두 전쟁포로였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은 장티푸스 병균을 예방하는 주사를 맞았다](<전 일본 육군군인이 세균무기를 준비하고 사용한 혐의에 대한 재판자료>, 모스크바외국문서출판국, 1950, 77쪽. 진청민, 172쪽에서 재인용).

731부대 위생병이 하바롭스크 전범재판을 받으며 털어놓은 고백이다. 731부대원들은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등 각종 세균을 음식물에 넣어 수감자들에게 먹였다. 음식을 받아먹은 수감자들은 (예방주사를 맞은 일부를 빼고는) 세균 감염으로 대부분 1주일 안에 죽었다. 세균이 들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음식을 거부할 경우, 731부대 소속 헌병들이 강제로 입에 부어넣었다. 반항하면 때리거나 총으로 쏴 죽였다. 세균에 감염돼 죽으면 그 다음 절차는 해부였다. 그 작업을 거들었던 한 일본군 오장의 훗날 증언을 들어보자.

“내 이름은 오가와 후쿠마쓰(大川福松)이다. 1940년 육군위생부에 입대했다. 베이안 육군병원에 있다가 731부대로 옮겨온 것은 1944년이었다. 그때 나는 아주 평범하지 않은 곳에 들어왔다는 것을 느꼈다. 실험용 사람들은 모두 이름도 없이 번호만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무거워서 작업을 제대로 못했지만, 며칠 지나면서 하루에 2~3명 정도 해부할 수 있었다. 많을 때는 하루에 5명을 해부하기도 했다. 동상, 매독, 페스트, 콜레라 등의 실험으로 감염성을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병균 독을 유리병에 넣어 혈액으로 세균을 배양하고 날마다 부화기로 세균번식 작업도 했다. 나의 본명은 무라다 후쿠마쓰(村田福松)였는데, 일본에 온 뒤 이름을 바꾸고 숨어살았다”(진청민 183쪽).

이시이, “눙안 페스트 살포가 가장 효과적”

1940년 6월~11월 사이에 만주 눙안(農安) 지역에서 페스트가 크게 번졌다. 범인은 물론 이시이 시로였다. 그는 페스트 세균무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살상력을 지녔을까 궁금했을 것이다. 1940년 6월4일 독극성이 강한 페스트균 무기(PX) 5g를 극비리에 뿌렸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 5g은 1만 마리쯤이다. 눙안 지역이 실험지역으로 꼽힌 까닭은 무엇일까. 서이종(서울대, 사회학)교수의 글을 보자.

[눙안 지역이 선정된 것은 위장전술 때문이었다. 눙안은 만주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페스트가 창궐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이미 1910년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확인된 사망자 수가 449명에 이르며, 1929년부터 1932년에도 559명, 1933년에도 624명이 사망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눙안은 (731부대의) 대규모 세균실험에 적합한 곳이었다. 세균실험을 하고도, 마치 자연적으로 발생한 페스트 유행으로 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서이종, ‘일본제국군의 세균전 과정에서 731부대의 눙안·신징 지역 대규모 현장세균실험의 역사적 의의’,「사회와 역사」2014, 제103집).

731부대의 세균전 실험으로 눙안 지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일본 관동군 방역부는 353명이 감염돼 298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사망자 숫자에 견주어 턱없이 적었다. 감염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그 중국인의 집은 불태워졌고, 감염자는 살았건 죽었건 간에 일본군이 데려갔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가족의 시신을 몰래 묻고 쉬쉬 했다(실제로 환자는 목숨이 붙어있어도 731부대에서 연구용으로 해부를 당한 끝에 죽었다). 따라서 눙안지역 페스트 사망자 수는 일본 당국의 발표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시이 시로도 731부대원들이 만주 눙안 지역에 세균전을 펼쳤음을 숨기지 않았다. 1943년 11월 1일 육군성 의무국 회의에서였다. 그날 회의에 함께 있던 육군성 의무국 의사과장 오쓰카 후미오(大塚文郞) 대좌가 남긴 비망록에 따르면, 이시이는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눙안 현에서 다나카(田中) 기사 등 6명이 비밀리에 (살포)했던 것이 가장 (인명 살상에) 효과적이었다”

오쓰카의 비망록에 적힌 이시이 시로의 발언은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대 명예교수, 일본사)가 일본군 장교의 업무일지를 바탕으로 쓴 논문(‘陸軍中央と細菌戰’)에 실려 있다.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의 공동대표인 요시미 교수는 ‘위안부’ 성노예를 비롯한 일본의 전쟁범죄를 철저히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성사관(自省史觀)을 지닌 연구자다(요시미의 논문은 ‘731부대 국제심포지엄 실행위원회’, <日本軍の細菌戰·ガス戰>, 明石書店, 1996에 게재).

▲ 세균무기 개발에 미친 이시이 시로가 ‘악마의 소굴’로 썼던 731부대 본부 건물. ⓒ위키미디어

페스트 균으로 중국 도시들 공격

중국 농민들을 상대로 세균무기의 성능을 실험했던 731부대는 이어 중국 동부와 중부의 도시들을 겨냥한 같은 실험을 거듭했다. 이런 사실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피해 보고나 전쟁 뒤 소련 하바롭스크 전범재판에서도 확인됐다. 1993년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도서관에서 발견된 <이모토 일지>(井本日誌)에도 그와 관련한 기록이 있다. 이시이 시로의 고향마을 카모(加茂)부터 중국 하얼빈까지 731부대를 추적했던 일본작가 아오키 토미키코(靑木富貴子)의 글을 보자.

[<이모토 일지>에 따르면, 1940년 6월5일 참모본부 작전과의 아라오 오키카츠 중령, 중지나방면군 방역급수부 부장대리 마스다 도모사다 중령 등이 모여 계획을 짰다. (세균전) 실시 부대는 지나파견군 총사령부 직할이지만, 직접적 책임자는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가 맡았다. 이 작전을 위해 ‘나라(奈良) 부대’가 임시로 편성됐다](靑木富貴子, <731 石井四郞と細菌戰部隊の闇を暴く>, 新潮社, 2008, 136쪽).

[구체적 공격 방법은 비 오는 날 4000m 이상 고도에서 세균액을 뿌리고, 저공에서 페스트에 감염시킨 벼룩을 뿌리는 것이었다. 1940면 9월18일부터 10월7일 사이에 6회의 공격이 저장성(浙江省) 주요도시들인 닝보(宁波), 진화(金华) 등지에서 이뤄졌다. 스파이를 이용하여 공격목표 지구에 콜레라와 티푸스 균액을 뿌리는 모략작전도 펼쳐졌다. 콜레라나 티푸스 균이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10월 하순 닝보에, 11월에는 진화에 뿌렸다](靑木富貴子, 136-137쪽).

이시이 시로는 페스트 벼룩을 이용한 작전의 성과에 크게 만족했다. 기록 필름을 만들어 일본군 내부에서 크게 선전을 하는 한편으로, 그 뒤 펼칠 세균작전에서 페스트 균을 퍼뜨릴 벼룩 생산에 더욱 열을 올렸다. 해를 넘긴 1941년 11월에는 후난성(湖南省) 창더(常德)를 세균으로 공격, 페스트 전염병을 일으켰다.

쥐벼룩 페스트 담은 도자기 폭탄

잇단 생체실험 끝에 이시이 시로는 페스트 균이 다른 균(콜레라, 장티푸스)보다 독성이 강하고 따라서 치사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면서 페스트에 감염된 벼룩을 이용한 도자기 폭탄을 만들었다. 소련 하바롭스크 전범재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 받았던 관동군 군의부장 가지쓰카 류지(梶塚隆二, 군의중장)의 진술을 들어보자.

“이시이 시로는 나에게 폭탄에 세균을 넣으면 폭탄이 터지면서 대량의 열량을 방출하여 금속 파편에 넣은 세균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도자기 폭탄을 연구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면서 그 연구는 이미 진행 중이라 했다. 그는 또 비행기로 세균을 살포할 때 고공에서 실행하면 세균이 살상력을 잃기에 저공에서 살포해야만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시이는) 세균을 그대로 뿌리면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죽기 때문에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보호막이 바로 벼룩이었다. 그래서 대량의 페스트에 감염된 벼룩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시이의 말로는, 감염된 매개물로 강물과 음식물을 감염시키는 것도 세균무기를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전 일본 육군군인이 세균무기를 준비하고 사용한 혐의에 대한 재판 자료>, 모스크바외국문서출판국, 1950, 77쪽. 진청민, 197-198쪽에서 재인용).

이시이의 말에 나오는 ‘벼룩을 이용한 페스트 균이 담긴 도자기 폭탄’ 개발을 결정하기까지는 숱한 생체실험을 거듭한 뒤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고 헛된 죽음을 맞이했었다. 마침내 이시이는 일본군 참모본부에 이런 보고를 올렸다.

“731부대는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세균무기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해냈다. 이 연구 성과는 대규모 전쟁에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궈청저우·랴오잉창,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의 세균전 실록>, 북경 연산출판사, 1997, 41쪽. 진청민, 105쪽에서 재인용).

추악한 기록만 남긴 이시이의 세균전

이렇듯 세균폭탄 개발에 미쳐있던 이시이 시로는 1942년 8월1일 1군 군의부장으로 옮겨갔다. 새 731부대장은 도쿄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인 기타노 마사지(北野政次, 1894-1886) 소장이었다. 1군은 중일전쟁(1937)이 터지면서 만들어진 북지나방면군의 주력으로, 산시성 타이위안에 사령부를 두었다. 화북지역에서 중국군(국민당군, 공산당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면서 이시이의 세균전 솜씨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시이가 1군에 머문 기간은 1년쯤이다. 그 뒤로 도쿄 육군군의학교로 옮겨갔다가 1945년 3월 731부대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때 이시이의 어깨엔 별이 하나 더 늘어나 3개가 됐다. 731부대장 복귀와 더불어 육군 군의관으로는 최고계급인 군의중장으로 올랐다. 한마디로, 이시이를 빼고 731부대와 일본의 세균전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731부대의 세균전은 전쟁범죄라는 비난만 불렀을 뿐 정작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그토록 많은 ‘마루타’를 희생시켜가며 생체실험을 했지만, 승리는커녕 기울어진 전쟁의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없었다. 1945년 5월 도쿄의 일본 육군 참모본부는 731부대의 세균폭탄 생산을 멈추도록 했다. 패전을 앞둔 마당에 세균전을 펼쳐 그들의 전쟁범죄 목록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패전을 내다 본 이시이는 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의 생존 전략은? 승자인 미국과의 ‘더러운 거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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