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위기의 월마트를 구해낸 남자.’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가 늘 듣는 말이다.
더그 맥밀런 CEO가 월마트 수장에 오른 2014년만 해도 월마트는 위기였다. 월마트가 2015년에 35년 만의 매출 하락이라는 충격적 실적을 내놨을 때 아마존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아마존이라는 전자상거래 기업의 폭발적 성장에 월마트가 설 곳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더그 맥밀런 CEO는 게임의 판세를 바꿔냈다.
그는 오프라인 기반의 월마트에 디지털 혁신을 꾸준히 입혀가며 오프라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구현하고 있다. 2015년 주당 60달러였던 주가가 꾸준히 상승해 현재 160달러 안팎을 오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그 맥밀런 CEO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짧게나마 월마트 얘기를 꺼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마트 때문이다.
이마트는 월마트와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 아마존의 공습에도 월마트가 제 살 길을 찾아낸 것과 달리 이마트는 한국 시장에서 수년째 고전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쿠팡에게 업계 선두 자리를 내줬다.
이마트의 부진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온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동시에 잡으려고 하면서 본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탓도 있을 것이고 고객들의 빠른 소비 행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탓을 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정 부회장은 그룹 부회장으로서 신세계그룹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이마트를 담당하고 있다. 이마트 사내이사를 맡지 않고 있어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오너일가의 생각이 곧 회사의 전략으로 이어지는 한국 재벌기업의 행태를 감안했을 때 정 부회장의 판단이 이마트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실제로 위기의 이마트를 구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는 이는 드물어 보인다.
경영전략실 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영진을 질타했다거나 신년사를 통해 고객 중심의 사고를 강조한다는 사실이 신세계그룹을 통해 알려지지만 ‘그래서 이마트를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유독 잦다.
그래서일까. 정 부회장이 평소 즐겨 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놓고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그는 골프나 요리, 가족 등의 주제로 자주 게시글을 올린다. 요즘에는 장난감 레고 사진을 연달아 올리고 있다.
한 개인이 SNS에서 일상 생활을 공유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 부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때때로 구설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정 부회장의 SNS 활동이 이마트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끊이지 않는다.
2022년 초 정 부회장이 이른바 ‘멸공 논란’을 일으키자 이마트 직원들이 나서 ‘기업인 용진이형은 멸공도 좋지만 본인이 해온 사업을 먼저 돌아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을까.
당시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여파가 수만 명의 신세계, 이마트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미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며 “본인 스스로 기업인이라 한다면 이제 그 경계를 분명히 하고 그간 사업가로서의 걸어온 발자취를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부회장은 이후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며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입니다”라고 사과했지만 현재도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소개글에는 ‘멸공’을 뒤집은 형태의 글자가 여전히 걸려 있다.
이마트에 ‘오너의 SNS’가 중요 리스크로 작용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정 부회장은 이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정 부회장은 18일 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SNS 활동 등과 관련한 질문에 “안티가 많은 건 너무 해피한거다”며 “왜냐하면 안티가 많으면 많을수록 ‘찐팬'(열렬한 팬)이 많다는 증거니까”라고 했다.
‘안티에 신경 쓰지 않는 오너’라는 ‘쿨한 재벌’이 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틀린 것 같다. 이 소식을 전한 기사마다 “오디션이나 보고 멸공이나 외치는 것이 경영에 어떤 도움이 될까” “SNS 좀 그만하고 회사좀 살려라, 이마트가 망해간다”는 댓글이 도배돼 있다. 한 누리꾼은 “기사 댓글에 비판밖에 없는데 찐팬이 있는 것 맞냐”고 꼬집기도 했다.
사실 정 부회장은 애초부터 이런 이미지를 가진 오너가 아니었다. 그가 과거 페이스북에서 활동할 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정 부회장은 2015년 이마트의 일렉트로마트와 피코크키친 등을 소개하면서 “구색과 가격 혜택은 기본,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움과 흥미를 줄 수 있는 우리 같은 어른과도 감성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가전매장을 만들고 싶었고….드디어 만들어버렸다” “백문(百聞)이 불여일미(不如一味)” “많은 설명보다 한 번 오셔서 드셔보시면 그 깊이와 다름을 느끼실 것”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마트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일일이 소개하며 경영에 진심인 모습을 보였을 당시 누리꾼들은 ‘이마트 아저씨’라는 애정 어린 별명으로 그를 불렀다. 일반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재벌 오너의 등장에 사람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SNS 활동이 10년을 넘어가면서 지금은 초심을 잃은 것처럼 여겨진다. ‘용진이형’을 따르는 약 84만 명의 팔로워를 제외하면 정 부회장의 SNS 활동을 응원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지 의문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고전분투하고 있는 이마트의 미래가 안쓰럽게 여겨질 때도 많다.
과거처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 부회장이 “경영은 숙명”이라고 스스로 얘기하려면 이마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좀 더 집중해주면 안 될까.
월마트를 살린 남자. 더그 맥밀런 CEO 얘기로 돌아간다.
더그 맥밀런 CEO도 정 부회장 못지않게 SNS를 자주 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정 부회장과 180도 다르다.
그의 SNS 게시글 대부분은 월마트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재의 월마트를 만들어준 직원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내용이다. “직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바쁜 휴가철을 맞아 고객과 직원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전 세계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당신에게 감사하고, 당신과 함께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계속 해보자.” 등의 격려 문구가 더그 맥밀런 CEO의 SNS에 가득 차 있다.
월마트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리는 것도 그의 몫이다. 지난해 말에는 그가 작년에 읽었던 인공지능이나 중국의 역사와 같은 책들을 공유했는데 이를 놓고 사람들은 월마트의 경영 고도화를 위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CEO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엿보인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그가 올해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2024에서 인공지능을 통한 유통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는 사실은 시장에서 이미 월마트의 방향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그의 이런 노력들이 월마트를 ‘온라인 대세’에도 승승장구하는 회사로 만든 것은 아닐까.
더그 맥밀런 CEO의 SNS를 보면서 정 부회장도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
SNS에서 핫한 ‘용진이형’으로 남을지, 아니면 재계순위 9위의 신세계그룹 후계자로서 존경받는 이마트 총수로 변할지는 앞으로 정 부회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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