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넥스트 라이트(Next Right·새로운 우파)’의 중심 인물로 거론하며 주목하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서 한 위원장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위원장은 연초부터 전국 각지를 돌며 신년인사회를 진행했는데 각 지역에 맞는 정책이나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를 향한 공약을 내걸기보다는 개인의 인기만 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조선일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주장하는 ‘86청산론(운동권 청산론)’의 주체로 ‘올드 라이트’와 ‘뉴라이트’는 적절치 않고 1973년생인 한 위원장이 ‘넥스트 라이트’로서 주목받는다는 기사를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 연이어 보도했다. [관련 기사 : ‘넥스트 라이트’ 대 ‘X세대 윤석열’, 한동훈을 둘러싼 프레임전쟁]
‘넥스트 라이트’에 이어 ‘팔도 사나이’도 조선일보가 한 위원장을 수식하는 말이다. 지난 12일 조선일보는 여권 내부에서 “한 위원장이 ‘강남 8학군’ 출신에서 ‘팔도 사나이’로 이미지를 바꾸려는 것 같다”면서 이 내용을 기사 제목으로 정했다. 한 위원장이 전국을 돌면서 부모 고향, 옛 거주지, 검사 시절 좌천당한 지역 등으로 방문 지역과 인연을 강조하는 모습을 긍정 평가하는 대목이다.
한 위원장이 내놓은 ‘의원 정수 축소’에 대해서도 ‘반(反)정치’, ‘포퓰리즘’이라는 대체적인 평가와 달리 조선일보는 17일자 사설 <의원 수 감축도 필요하나 특혜와 특권 폐지가 급선무>에서 비판적 지지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17일자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의 <“한동훈이 계속 셀카만 찍는다면…”>을 보면 야당과 신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한 위원장이 총선까지 계속 전국을 돌며 ‘셀카’를 찍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한 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여전히 민주당 비판과 운동권 청산”인데 “상당수 중도층은 ‘상대방에게는 가혹하고 자신들 문제에 대해 관대한 것 아니냐’고 받아들였다”고 전하면서 “한 위원장 등판 전후 별반 변화 없는 여권의 여론 지형이 이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사에선 이날 한 위원장의 전국 순회가 끝나는 사실을 알리며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시간도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던 매체 일선 기자에게서도 쓴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첫 행보인 전국 순회 일정을 마친 한 위원장에 대한 첫 성적표다. 사실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등장할 때부터 여의도에선 ‘국회 경험이 없고 국회로 올 일이 없는데(총선 불출마 선언) 한 위원장이 총선을 앞두고 여당 책임자를 맡는 게 부적절하다’는 평이 적지 않았다.
한 위원장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다. 정치 신인으로서 기존 낡은 정당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새로운 정치, 새로운 여당으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일(넥스트 라이트)과 기존 수직관계였던 대통령실에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역할(윤석열 아바타 벗어나기)이다. 특히 여당 내에서는 그가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대통령실에 바른말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한 위원장의 첫 행보를 보면 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고 보긴 어렵다. 우연히도 ‘넥스트 라이트’란 표현은 지면에서 최근 사라졌다. 한 위원장이 제시한 정치개혁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국회의원 정수 250명으로 감축하는 안은 이미 같은 당 안철수 의원, 조경태 의원, 황교안 전 대표 등 다수가 제시했다가 실패한 주장이다. 한 위원장 개인 이미지는 상승세일지 모르지만 비대위원장 역할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다음날인 18일에도 당 대표로서 그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날 정치면 기사 <한동훈, 보름간 전국 10곳서 인기몰이…당 지지율은 정체>를 보면, 한 위원장의 선호도는 올라 장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접전을 보이지만 50%가 넘는 정권 견제론과 30% 수준의 대통령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를 보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팔도 사나이 타령과 셀카만으로는 총선에서 못 이긴다”며 “전국 순회도 끝났으니 대통령과 차별화된 ‘한동훈의 진면목’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했다.
한편 한 위원장을 향한 쓴소리가 다른 보수 성향 매체에선 이전부터 나왔다. 한 예로 중앙일보는 지난 11일 정치부 기자의 칼럼 <한동훈과 ‘여의도 문법’>에서 한 위원장이 전국 순회를 하면서 해당 지역과 인연을 강조하는 한 위원장에 대해 “사실 초급 수준의 여의도 사투리는 따라 하기 쉽다”고 평가했다.
해당 기자는 ‘진짜 여의도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에 안 드는 상대와 밤새 대화해 주고 받기를 하고, 위기가 닥치면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측근도 읍참마속하는 게 여의도 문법”이라며 “여의도 사투리에 적응한 한 위원장은 최근 기자의 질문을 자주 피하고 있는데 기자들을 대거 대동하고 일정을 다니면서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는 건 여의도 문법으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이 언론의 조명을 받는 가운데 지난 17일 김경율 비대위원장을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지지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사전에 마포을 지역에서 세 번이나 출마했던 김성동 당협위원장이 현장에서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고, 인천 계양을에서도 원희룡 전 장관 출마 관련해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공정한 경선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 공천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한 위원장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국민일보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에선 시스템 공천의 신뢰를 깨고 ‘윤심 공천 논란’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한 위원장 이번 발언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지지율 변동이 없지만 한 위원장의 인기만 올라간 상황에서 둘간의 관계가 앞으로 더욱 언론의 조명을 받을 예정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