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및 미디어에 묻습니다.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특히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1월12일,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가수 윤종신씨 대독)
지난해 경찰의 마약 혐의 내사 단계부터 이름이 노출된 고 이선균 배우는 이후 소변 간이 검사, 머리카락과 체모 정밀 감정 결과에서 모두 마약류 음성 반응이 나왔다. 고인은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으며 포토라인에 섰고, 혐의와 직접적 관련 없는 선정적 보도에 이름이 올랐다. 지난해 10월 첫 보도가 이뤄진 지 70일째 되는 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0일, 고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시간’을 주제로 지난 16일 방영된 MBC 은 이선균씨에 대한 최초 보도에서 그가 사망하기까지 70일간 수사기관과 언론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다뤘다. ‘마약 사건’ 최초 제보자인 신아무개씨는 에 본인이 처음 경찰에 신고한 대상은 자신의 전 애인과 마약 전과가 있던 유흥업소 종사자 김아무개씨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해 10월18일 필로폰 등 마약 혐의로 (김씨를) 체포했고 다음날 피의자 신문을 했다.
이날 김씨 첫 조사가 끝난 시각은 오후 2시19분. 그리고 약 3시간 만에 경찰이 ‘톱스타 L씨’ 내사 중이라는 경기일보 단독 보도가 나왔다. 최초 보도 직후 여러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고, 온라인 상에선 순식간의 고인의 이름이 거론됐다.
당시 최초 보도를 한 경기일보 기자는 ‘경찰이 뭔가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이런 정보를 얻기 쉽지 않지 않나’라는 PD수첩 제작진 질문에 “(경찰을 통해) 정확하게 확인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백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경찰의) 내사는 정식으로 수사를 개시하기 전에 풍문이나 어떤 제보를 받았을 때 그러한 혐의가 개연성이 있는지를 수사기관 내부에서 먼저 조사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 사건은 입건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사 단계에서부터 관련자 진술이 언론에 알려졌다”고 했다. 류근찬 마산동부경찰서 경감도 “단순히 범죄 의심이 돼서 살피는 정도 수준인데 ‘그 대상자가 언론을 통해 밖에 나갔다’는 건 매우 부정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경찰이 이선균씨를 마약류 투약 혐의로 입건하면서 이씨는 거듭 포토라인 앞에 섰다. 10월28일 1차, 11월4일 2차, 12월23일 3차 소환 모두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이선균씨의 모습이 시시각각 전해졌다. 하루 백 건 단위 기사들이 온라인에 쏟아졌다.
특히 3차 조사 당시 이씨는 “피의자 조사, 고소인 조사 함께 진행해서 너무 늦게 끝나서 기자 분들께 기다리게 해서 진심으로 죄송하다” “다시 한 번 늦은 시간까지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언론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해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언론이 이 사람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는 본인이 모를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이 피의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하면 사회에는 이미 피의자가 유죄라는 심증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또 이것이 다시 수사, 기소,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피의사실 공표는 한편으로는 (수사기관이) 언론을 통해서 자기들이 의도하는 어떤 유죄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고 또 언론도 손쉽게 고급 정보를 받아서 보도함으로써 이제 관심을 끄는, 양자 이해관계가 굉장히 맞아떨어지는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인이 사망한 다음날 윤희근 경찰청장의 기자간담회 발언은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 청장은 이날 “안타까운 선택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선균 배우를 정말 좋아한다. 그게 과연 경찰 수사가 잘못돼서 그분의 그런 결과가 나왔느냐 이건 청장으로서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비공개로 계속 수사를 진행했다고 그랬으면 저희가 감당하기 힘들다. 잘 아실 거 아닌가. 그걸 비공개 소환으로 저희가 수사하고 했을 때 그걸 (언론이) 용납하느냐”고 했다.
지난 12일 영화감독 봉준호,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배우 김의성 등이 참여한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기자회견에서 언론 등 미디어와 수사기관 책임을 물었다. 특히 지난해 11월 고인과 유흥업소 실장 간 통화 내용을 단독 보도해, 여러 언론이 혐의와 무관한 사적 대화를 제목 등에 부각하며 재생산하는 계기가 된 공영방송 KBS 보도가 비판 받았다. 문화예술인들은 지난 15일에도 KBS에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사생활 공개 기사를 삭제하라는 성명서를 전했다.
KBS는 당시 보도에 대해 “다각적인 취재와 검증 과정을 거쳤으며 관련 내용을 최대한 절제한 것”이라며 “사용된 녹취는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관련 주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기에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며 삭제 요구에 응하지 않은 바 있다.
PD수첩 진행자 오승훈 MC(MBC 아나운서)는 이날 방송에서 “수사기관뿐 아니라 언론 또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법정에 서기도 전에 누군가를 범죄자로 낙인 찍고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사건이 수사기관의 피의 사실 흘리기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관행을 되돌아보고 바로잡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언론의 자성을 촉구한 이날 PD수첩 방송은 다수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는데 여전히 일부 매체의 자극적 보도가 눈에 띄기도 했다. 17~18일(오후 7시 기준) 네이버에서 ‘PD수첩’ ‘이선균’ 으로 검색되는 기사는 53건, 이 중 18일자 기사 9건 모두 제목에 ‘협박녀’ 또는 ‘협박범’을 썼다. 매일경제 <유흥업소 실장인줄 알았는데…‘이선균 제보’ 배우출신 협박女가 했다> 이후 이데일리, 뉴스엔,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등에서 유사한 제목의 기사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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