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후원하는 70대 노교수가 바닷가 가자면서 성추행 했다”
“5살때부터 대걸레 자루로 맞아”…보육원출신 30대중반 여성 인터뷰
[※ 편집자 주= 이 인터뷰는 보육원에 살았던 고아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보호출산제 도입을 계기로 이뤄졌습니다. 인터뷰이는 뒷모습마저도 사진 촬영을 원하지 않아 당사자 사진은 송고하지 않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나는 갓난아기 때 영아원에 버려졌다. 5살 때인 1990년대 중반쯤 보육원에 들어갔고, 2010년대 초반에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나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하루에 4차례 당한 일도 있었다. 보육원 원장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보육원에서는 피해를 본 것도 잘못한 것이라면서 때리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후원자인 70대 노교수에게 성추행당하기도 했다.”
30대 중반의 여성 김모 씨는 지난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보육원에서 당한 일을 공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5살 때부터 이유도 없이 대걸레 자루로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두들겨 맞기도 했고, 오줌을 쌌다고 해서 발가벗겨진 채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초코파이를 훔쳐먹었다는 이유로 보육원 거실 바닥에 흩뿌려진 과자를 토할 정도로 먹어야 했고, 공부를 가르쳐주는 자원봉사자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보육원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김씨가 언급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면서 “김씨의 시야 밖에서 일어난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그는 정부, 지자체, 경찰 등의 보육원 감시는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보육원장이 내부 문제로 물러나면 그의 아들, 며느리, 사위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일이 많다”면서 “시청,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과 과장이 정년퇴임 후에 보육원장 자리에 앉는 일도 꽤 있다”고 했다.
그는 “보육원의 성폭력과 후원금 횡령, 인사 비리, 정신질환 약 처방을 통한 학대 등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면서 “먼저 샘플 조사를 해본 뒤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전체 보육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면서 “최근에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된 보호출산제는 고아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30대 중반 고아 출신 여성과의 일문일답.
— 본인은 어디에서 태어났나.
▲ 서울에서 태어난 것 같다. 갓난아기 때 서울의 한 영아원에 버려졌고, 5살 때 서울의 한 보육원으로 왔다.
— 지금 하는 일은.
▲ 나는 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한때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적이 있다. 지금은 정신재활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 도와주는 일을 좋아한다.
— 부모를 찾으려 한 적이 있나.
▲ 작년 8월 경찰 실종아동팀을 통해 유전자 대조 작업을 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고모라는 분이 나를 영아원에 맡겨놨다는데, 그때 적어놓은 전화번호가 옛날 번호여서 추적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경찰로부터 들었다.
— 부모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나.
▲ 엄마가 나를 업고 있는 형상만이 기억 속에 있다. 그것이 진짜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그 형상에서 엄마의 얼굴은 뚜렷하지 않다.
— 부모를 찾으려 한 이유는.
▲ 나를 버린 분들이지만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다. 어떻게 생기셨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왜 나를 버렸는지를 묻고 싶다.
—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고통을 많이 당했나.
▲ 울기도 많이 울었고, 왕따도 많이 당했다. 자해와 극단적 선택도 여러 번 시도했다.
— 보육원 생활은 어떠했나.
▲ 너무 힘들었다. 5살 때 보육원에 와서 원장님, 총무님, 보육 선생님, 언니와 오빠들한테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맞았다. 감금도 많이 당했고,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속옷을 벗고 복도에 서 있는 벌을 받기도 했다. 한겨울에 발가벗은 채 옥상에 올라가 손을 들고 있었던 적도 있다. 이때 선생님은 옥상에서 못 내려오도록 옥상 문을 잠가버렸다. 후원자들이 나한테 선물로 준 옷, 가방 등 예쁜 것들을 선생님이 빼앗아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에게 주기도 했다.
— 보육원에서는 언제까지 폭행당했나.
▲ 중학교 때까지 맞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나를 때릴 만한 선배들이 모두 보육원에서 나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가출한 것이었다.
— 주로 선배들이 폭행했나.
▲ 언니와 오빠 외에 원장님, 총무님, 선생님들도 우리를 때렸다. 보육 선생님은 초등학생 1학년 아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 일도 있었다. 아이는 눈을 다쳤고,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그 선생님은 쫓겨났다.
— 때리는 이유는.
▲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선생님들의 기분에 따라 구타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단체로 두들겨 맞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숙제를 안 했을 때, 받아쓰기 점수가 나빴을 때, 거짓말을 했을 때도 폭행당했다.
— 어떻게 때렸나.
▲ 손바닥을 때리다 발바닥, 종아리, 엉덩이, 허벅지 등으로 옮겨갔다. 사정없이 온몸을 폭행했다.
— 무엇으로 때렸나.
▲ 각목이나 대나무 대걸레 자루, 쇠 파이프 등으로 때렸다.
— 감금당하기도 했다고 했는데, 그 장소는 어디인가.
▲ 화장실에 감금당했다.
— 이유는 무엇인가.
▲ 한번은 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훔쳐먹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육원에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렸다. 보육원으로 돌아왔더니 선생님은 과자를 바닥에 깔아놓고는 토할 때까지 먹도록 했다. 그리고 2∼3일 정도 화장실에 가둬놓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 다른 아이들이 용변을 보는데, 화장실에 계속 있었다는 것인가.
▲ 내가 화장실에 감금돼 있을 때 언니와 오빠들이 용변 보느라 들락거렸다.
— 옷을 모두 벗고 복도에 서 있도록 하는 체벌은 언제 받았나.
▲ 5살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다.
— 남자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속옷까지 벗고 서 있어야 했단 말인가.
▲ 그렇다.
— 옥상에서 벌을 받는 일은 겨울에도 있었나.
▲ 한겨울에도 발가벗은 채로 옥상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몇시간 동안 옥상에 방치됐다. 선생님은 내가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옥상 문을 잠가버렸다.
— 보육원 내에서 차별도 당했나.
▲ 보육원 선생님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용돈을 더 주고, 학원에 보내주고, 밥도 더 많이 줬다. 간식도 더 많이 챙겨줬다. 개인 후원자가 나에게 예쁜 가방, 옷 등을 선물로 주고 가면 보육 선생님이 빼앗아 자기가 예뻐하는 아이한테 주곤 했다.
— 보육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서 빼앗았나.
▲ 너는 이걸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 보육 선생님이 달라고 하면 그냥 줬나.
▲ 속상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맞을까 봐 두려워 저항하지 못했다.
— 본인은 학원에 다니지 않았나.
▲ 한 번도 못 가봤다. 보육원 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이들은 피아노, 태권도, 영어, 수학 학원에 다녔다.
— 보육원에서 간식을 제공했나.
▲ 선생님들은 외부 후원으로 간식이 들어오면 쟁여놓고 있다가 유통기한이 지난 뒤에 주는 일이 적지 않았다. 후원자분들이 구청 홈페이지에 민원을 올린 이후에는 유통기한 내에 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 보육원에서 용돈도 받았나.
▲ 지방의 농장에 가서 일을 해야 용돈을 줬다. 보육원 원장님의 소유 농장인 듯했다. 옥수수나무를 베고, 소똥도 치우고,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털기도 했다. 농장에 가서 일을 하면 점심에 짜장면을 먹여주고, 저녁에는 고기도 사줬다. 아이들 대부분이 농장에 가서 일을 하려 한 이유다.
— 평상시에는 짜장면을 안 사주고, 농장에서 일할 때만 사주는 이유는 뭔가.
▲ 노동착취 방식이다.
— 보육원에서 성폭력이 있었나.
▲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성폭행을 당했다. 나를 처음으로 성폭행한 사람은 고등학생 오빠였다.
— 그 오빠가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해서 성폭행을 했나
▲ 강당 보일러실 어두운 곳으로 오라고 해서 성폭행을 했다.
— 동일한 사람이 그렇게 성폭행했다는 것인가.
▲ 같은 사람이 그런 짓을 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그러기도 했다. 그들은 성폭행할 때 돈을 주겠다면서 달래기도 했고, 내가 거부하면 돌멩이를 던지겠다면서 겁 주기도 했다.
— 성폭행이 자주 있었나.
▲ 거의 매일 일어나다시피 했다. 나는 하루에 새벽, 아침, 오후, 저녁 등 4차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오빠들이 돌아가면서 그런 짓을 했다. 선생님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성폭행을 했다. 원장님은 보육원 바로 옆 사택에서 살았지만,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 보육원장이나 총무 등은 성폭행하지 않았나.
▲ 당시 원장님, 총무님, 보육 선생님들은 모두 여자였기에 그런 일은 없었다.
— 원장이나 총무 등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나.
▲ 한 번도 알리지 못했다. 알리면 혼나고,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맞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 성폭행 사실을 알렸다고 맞는단 말인가.
▲ 보육원에서는 피해를 본 것도 잘못이라고 때렸다. 한 여자아이가 성폭행당했다는 이유로 보육원 내 여자아이들이 단체로 맞은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 경찰이나 구청에 신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내가 외부에 신고했다면 보육원에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언론을 통해 보도될 것이고, 결국 보육원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런 걱정 때문에 외부에 알리지 못했다.
— 보육원에서는 성폭행당하는 것이 맞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 나에게는 둘 다 똑같이 괴로웠다.
— 보육원 내에서 본인만 성폭행당한 것인가.
▲ 내 또래 여자아이들과 후배들도 당했다.
— 그 정도이면 보육원장 등이 알았을 텐데.
▲ 그들은 모른 척한 것이다. 원장님과 총무님은 그 이후에 아동학대로 감옥에 갔다 왔다.
— 지금이라도 경찰에 고발할 생각이 없나.
▲ 이미 지나갔고, 신고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 본인이 있었던 곳이 유독 성폭행이 심한 것 같은데.
▲ 다른 고아 출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보육원에서도 성폭행이 많이 일어난 것 같다.
— 보육원에 성폭행이 많은 이유는.
▲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선생님이 부족해서 그런 측면도 있다.
— 한국의 보육원 전체로 보면 지금은 이전보다 성폭력이 줄어들었다고 봐야 하나.
▲ 내가 있었던 보육원의 경우 성폭력이 줄었다고 본다. 원장님과 총무님이 아동 학대로 감옥에 간 이후 층마다 선생님들이 배치됐고, CCTV도 설치됐기 때문이다.
— 후원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1년간 한 후원자가 나에게 여러 차례 그런 짓을 했다. 그는 70대였고, 교수라고 했다.
— 처음에 그를 어떻게 만나게 됐나.
▲ 그는 아이 중 한 명을 후원하겠다면서 우리 보육원에 찾아왔다. 두 명의 후보 중 내가 선택됐는데. 부모가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다른 한 명은 보육원에 살았지만 부모가 있었다. 그 노교수는 나를 본 첫날에 10만원짜리 수표를 건넸다.
— 그는 어디에서 성추행했나.
▲ 그는 바닷가에 가자고 하면서 승용차에 타라고 했다. 그는 운전 중에 “가슴이 작네”라고 하면서 나의 가슴을 만졌다. 당황스러웠다. 바닷가에서 밥을 먹고 난 뒤에 그는 나에게 승용차 뒷좌석에 타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키스하고 성추행했다. 허리가 아프니 파스를 붙여달라면서 바지를 벗기도 했다. 그는 성추행은 했지만 성폭행하지는 않았다. 한번은 시청역으로 나오라고 해서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자기를 안아달라고 하기도 했다.
— 그는 교수가 맞나. 어느 대학 교수라고 했나.
▲ 본인이 교수라고 했다. 어느 대학, 무슨 과 교수인지는 그가 말하지 않았다.
— 그가 무엇을 후원했나.
▲ 대학교 기숙사비, 책값, 용돈 등을 줬다. 한 달에 100만원 정도는 됐다.
— 후원자 외에 자원봉사자들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도 있나.
▲ 당시에는 구치소에서 수형자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우리 보육원에 자원봉사자로 왔었다. 한번은 수업 중에 20대 자원봉사자가 나한테 가까이 와서는 몸을 들이댔고, 내 가슴을 만졌다. 당시에는 1대1 수업이어서 현장에 다른 아이들은 없었다.
— 보육원에서 괴로울 때는 주로 언제였나.
▲ 매일 이유 없이 구타당할 때, 성폭행당했을 때, 보육원에서 나가고 싶을 때 괴로웠다. 슬플 때는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 몸이 아플 때, 혼자라고 느낄 때였다. 외로울 때는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랑받지 못할 때였다.
— 보육원 외에 학교에서도 고통을 당했나.
▲ 보육원에 산다는 이유로 왕따당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날에 보육원 선생님이 김밥을 싸주셨지만 먹지 못했다. 아이들이 모래를 넣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에는 빵 셔틀을 하기도 했다. 내 돈으로 먹을 것을 사 오라고 시키는 아이도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발표를 안 시켜줬고, 교실에서 물건이라도 없어지면 먼저 나를 의심했다.
—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기뻐할 때는 언제인가.
▲ 후원자가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가는 경우가 있다. 아이는 그 집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놀고, 잠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다음 날 보육원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 정부나 정치권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 보육원 내 성폭력이 없어져야 한다. 강력한 법 같은 것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 고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 나처럼 안됐으면 좋겠다. 잘 성장해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keunyoung@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