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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플러스]특별인터뷰, 염재호 태재대 총장 “비판·창의·자기주도 기반 소통·화합·협력 역량 키우는 교육…수능은 자격고사, 학생선발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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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통해 요령만 익힌 아이들, 글로벌 경쟁에서 크지 못해”
“앞으로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시대…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사람 성공”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자기 주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야 미래 세대를 끌어나갈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무엇을 해 줘야 할까요.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간혹 태재대 입학 상담을 위해 부모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엄마가 찾아오지 않으면 아이는 잘 된다고 말합니다.”

함박눈이 내린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재대 총장실에서 만난 염재호 총장은 “자녀가 미래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사교육이라는 온실이 아니라 거친 들판에서 자신만의 시각을 가진 아이로 키우라”고 조언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달리, 염 총장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에듀플러스는 염 총장에게 미래 대학의 혁신,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자녀 교육법, 미래 인재상 등에 관해 물었다.

-한국 엘리트 교육의 중심인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뒤, 태재대로 옮긴 행보가 많은 관심을 모았다. 태재대를 선택한 이유는.

▲고려대 총장은 최대 영예다. 고려대 총장 할 때 다른 곳은 안가겠다고 말했는데, 말하는 대로 안 된다.(웃음) 대학을 옮기는 것이라면 안 했을 것이다. 새로운 대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태재대에 합류했다. 고려대 총장 재직 당시, 전직 대학 총장들과 미래 대학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논의를 많이 했다. 새로운 21세기 미래 학교를 만들 준비를 1년 정도 했는데 실패했다. 그러던 중 한샘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미래 대학, 글로벌 대학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이 가득한 21세기 최고 대학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지난해 9월 첫 신입생을 선발한 이후, 두 번째 신입생을 모집했다. 이번 학기 태재대 입학 지원 현황은 어땠나.

▲지난해 첫 신입생 모집에서 총 373명 지원자 가운데 27명을 최종 선발했다. 그러나 이번 모집에서는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한국 대학 입시와 모집 기간이 겹쳤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대학 내부에서는 신입생 모집을 5~6월경에 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입학한 학생들은 검정고시 출신, 외국 생활 경험자 등 이력이 다양했다. 이번 신입생 모집에 지원한 학생들은 국내 학생 대상이기 때문에 일반고, 특목고 학생 등이다.

-학생 선발 시 가장 우선으로 보는 것은.

▲다면적으로 본다. 서류 심사과정에서 성적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 성적은 성실성과 관계가 있다. 1차 서류 전형은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하지 않고, 자기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한 학생을 중심으로 선발한다. 성적 1등급 학생만 뽑는 것이 아니라, 학생회장 활동 등을 통해 공익을 위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거나 영어 발표 대회에 참여하는 등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 무언가 만들어 보려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찾는다. 학생 선발 과정에서 심리학 교수가 만든 400개 문항의 인적성 검사도 치른다. 똑똑한데 인성이 나쁘면 오히려 사회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신(修身)조차 안 된 학생이 리더로 클 수 없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미래 인재의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상상력을 꼽았다. 지식보다 상상력 있는 인재가 미래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태재대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은 뽑지 않는다고 들었다.

▲고려대 교수 재직 당시 4년간 논술 출제 위원장을 맡았다. 사설 논술 학원에서 논술 시험을 준비한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총장 부임 이후 논술 시험을 없애고 심층 면접으로 신입생 85%를 선발했다. 사교육을 통해 준비된 아이들은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답을 알려주고 기능적으로 요점만 추려서 배운 학생들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살아남기 어렵다. 사교육을 통해 요령만 익힌 학생보다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 같은 학생을 원한다.

-기존 한국 대학과 태재대 교육 커리큘럼을 비교한다면.

▲태재대는 21세기 고등 교육의 모델을 제시한다. 모든 입학생은 단일 학부인 혁신 기초학부로 입학해 역사, 철학, 영어 등 기초 교양 과목을 배운다. 학부 때 교양 과목을 공부해 기초 체력을 다져 놓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개인적 역량 가운데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이와 함께 소통, 화합, 협력 등 사회적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가르친다. 21세기 인재는 글로벌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전공 수업을 듣게 된다.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전공으로 만들어 배울 수도 있다.

태재대 커리큘럼 핵심은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학생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서 한 학기씩 생활하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4년간 다양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부와 경험을 바탕으로 캡스톤 디자인 프로젝트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로 학생을 1등부터 줄을 세우는 현행 입시 제도가 가장 큰 문제다. 현재 지방대가 왜 힘을 잃었나. 수능점수로 등수를 매기고 학교가 서열화되면서 대학 순위가 굳어졌다. 과거 고대 법대 입학생만 봐도 다양한 지역 출신 학생들로 구성됐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고치려면 수능이 바뀌어야 한다. 수능이 자격고사로 바뀌고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입시를 좌지우지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입시 상황 등 자녀 교육에 불안감을 느끼는 학부모가 많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부모가 아이의 인생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교만이다. 대다수 학부모는 자녀가 로스쿨 들어가면 장원급제했다고 착각한다. 아이가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봐라. 기존의 대학 교육에서 스스로 뛰쳐나온 사람들이다. 자기 삶에 대한 주체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자녀의 관심사를 고려하지 않고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의대 열풍, 사교육 조장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30년 뒤에 활동하게 될 것인데 왜 자신이 30년 전에 받은 교육을 자녀에게 강요하나. 세상은 넓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활동할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 무대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넓은 시야를 가지고 멀리 봐야 한다.

-아이를 공부 안 시키고 놀게 해도 되나.

▲당연하다. 아이가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 우선 사람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된다. 결국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삶을 자기 뜻대로 끌고 다니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시키는 일만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미래 인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상상력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지칭할 때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라고 말한 바 있다. 상상력이 지식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놀이하는 인간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시대가 올 것이다. 놀이하는 인간이 잘사는 세상이 온다는 말이다. 돈 버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일의 본질은 삶이고 보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학생이 지금 의대에 가면, 변호사가 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을 대체할 것이다. 로펌에서 일한다고 해도 판례 분석 등은 AI가 더 잘할 것이다. 의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요즘 영상 의학과가 인기라고 하는데 10년 이상 못 버틴다. AI가 디지털 데이터 영상 분석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질병을 찾아낼 것이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20세기 소셜 DNA를 버리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과거의 교육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여태까지 받은 교육을 벗어버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함박눈이 내린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재대에서 염재호 총장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태재대는?

한샘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30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21세기형 미래 혁신대학이다. 태재는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주역의 괘인 ‘태(泰)’와 집을 뜻하는 ‘재(齋)’로, 동서양의 조화를 바탕으로 새 문명을 탄생시키는 터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3년 4월 교육부의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9월 신입생을 선발했다. 입학생은 단일 학부인 혁신 기초학부로 입학한 이후, 4개의 전공학부인 인문사회학부, 자연과학부,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 비즈니스혁신학부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자기설계 전공과목을 통한 개인특화전공 설계를 할 수 있다.

◆염재호 총장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와 미국 스탠퍼드대학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고려대 국제교육위원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일미래포럼 대표 등을 거쳐 고려대 제19대 총장을 역임했다. 2023년부터 태재대 총장을 맡고 있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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