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심의위, 서울경찰 수장에 ‘부실대응’ 업무상 과실치사상 인정
9대 6 “김광호 기소해야”…서부지검 “수사결과·의결 종합해 최종 처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부실 대응 책임을 물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재판에 넘길 것을 권고했다.
수사심의위 현안위원들은 15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김 청장에 대해 9(기소)대 6(불기소) 의견으로 기소하도록 검찰에 권고했다.
같은 혐의로 수사심의위에 회부된 최성범 전 용산소방서장에 대해서는 1(기소)대 14(불기소) 의견으로 불기소 권고안이 의결됐다.
수사심의위는 외부 전문가 위원들에게 검찰이 수사 결과를 설명한 뒤 안건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절차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
150∼300명의 외부 전문가 위원 중 무작위 15명으로 현안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한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심의위원장으로 한 현안위원들은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수사팀의 수사 결과 설명과 피의자·피해자 쪽 의견을 각각 1시간∼1시간30분씩 듣고 토의하는 과정을 거쳐 오후 9시를 넘겨 종료됐다.
수사심의위에 직접 참석한 유족 측에 따르면 검찰 수사팀은 이날 현안위원회에서 두 사람에 대한 수사 결과를 설명하며 ‘주의 의무’가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상 과실죄는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를 태만히 한 것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생명·신체 등에 위험이 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사람을 다치거나 사망하게 했을 때 적용한다. 경찰관과 소방관 등이 대표적이다. 위험 발생이 뒤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이에게 법적으로 고도의 주의 의무를 부과했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는 의미가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성립하려면 업무자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일정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음이 입증돼야 한다.
검찰 주변에서는 당초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권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유족 측도 개최 결정 직후부터 ‘불기소 수순’이라며 반발해왔다.
그러나 수사심의위는 이날 예상을 깨고 김 청장을 기소하는 게 맞는다고 결론 내렸다.
대검 예규인 심의위 운영지침에 따르면 주임 검사는 수사심의위의 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가 나왔지만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이번 사안은 이원석 검찰총장이 고심 끝에 직권으로 소집한 만큼 가급적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총장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외부의견을 종합적으로 충분히 검토하고 수사 절차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심의위 소집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안을 놓고선 사회적 논쟁이 불붙었던 만큼 향후 관련 정보나 의사결정 과정이 공개되거나 외부에 알려질 경우에 대비해 충분한 숙의 끝에 이뤄졌다는 명분을 쌓는 측면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수사 과정에서 이미 대검과 서부지검의 의견이 엇갈렸다는 ‘잡음’이 흘러나온 상황에서 수사팀이 심의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불기소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청장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도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사상자 규모를 키운 혐의를 받는다.
최 전 서장은 참사 발생 이후 구조 지휘를 소홀히 해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를 받아왔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월 13일 김 청장 등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은 1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수사를 이어왔다.
수사심의위 권고안과 관련해 서울서부지검은 “현재까지 수사 결과와 대검 수사심의위에서 심의 의결한 내용을 종합해 증거, 사실관계 및 법리를 면밀하게 분석한 다음 최종적인 처분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부지검이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는 경찰 내 실질적 2인자로 평가받는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재까지 경찰이 송치한 참사 연루자 23명 중 6명을 구속 상태로, 10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이중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 등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다.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장은 증거인멸교사 등 관련 문건을 사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김 청장과 최 서장을 비롯해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 정대경 전 서울경찰청 112상황3팀장, 이태원파출소 팀장 2명, 이봉학 용산소방서 현장지휘팀장 등 7명에 대한 처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중앙·지방정부 지휘 계선상에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로 처리했다. 보고체계를 통한 구체적 관여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수사준칙에 따라 검찰이 재수사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재수사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이 장관에게 규범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으나 작년 7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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