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 데일리안 신년 특별 인터뷰
“정치 양극화 문제 대통령 단임제 등서 기인”
“총선 전 ‘개헌절차법’ 제정해 기틀 마련해야”
“선거구 획정 규범력 강화해 지연 근절해야”
대한민국 정치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진영 간의 갈등, 양극화를 부추기는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증오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장·차관과 부총리를 합해 다섯 번, 국회의원 선수만 5선, ‘대한민국 정치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러한 정치 상황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의장은 “20년 가까이 정치를 해오면서 들은 말 가운데 참 가슴 아픈 말이 있다. 바로 ‘딱 하나, 정치만 빼고 우리 사회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영·팬덤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승자독식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진단은 김 의장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 국회의장 등이 내렸다. 하지만 개헌이 수반돼야 해, 정치적 열망에도 매번 무위에 그쳤다. 이에 헌법은 36년 전 개정된 그때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
김 의장은 “역대 대통령이 거의 예외 없이 선거 기간에는 반드시 개헌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정권을 잡으면 ‘블랙홀 논리’ 때문에 미루다 36년 간 한 번도 개헌을 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36년 전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다. 그런데 마치 30~40년 전 옷을 지금 G20(주요 20개국)이 되어서 G7이나 G5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억지로 입고 있으라는 것”이라며 이제는 낡은 헌법 체계를 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에게 남은 임기는 4개월여. 그는 총선 전까지 ‘개헌절차법’ 제정으로 개헌의 기틀이라도 마련해 개헌의 정당성과 국민적 수용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 의장집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일문일답.
―대한민국 정치가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정쟁만 남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20년 가까이 정치를 해오면서 들은 말 가운데 참 가슴 아픈 말이 있다. ‘딱 하나, 정치만 빼고 우리 사회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는 말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해 진영을 결집시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양당 모두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국회를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선전장으로 하면서 정쟁은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흉기 테러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립과 갈등이 너무 심해지다 보니, 이제 정치가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하고 배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정치인들이 진영정치, 팬덤정치와 결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소수의 극단에 끌려다니는 지금의 정치는 정당과 국민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진영·극단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정치 지도자들이 책임 있게 대응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복원시켜야 한다. 여와 야가 상대방을 파트너로 생각할 수 있는 정치의 제도화, 대화와 타협의 정치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협치의 토대를 다지고 성숙한 정치문화를 정착시킨다면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극한 정치 대립의 원인 중 하나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온다. 의장께서는 한국 정치 체질을 개선하려면 4년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는데, 여전히 그 생각은 유효한가.
“한국 정치의 양극화 문제는 결국 단임제와 소선거구제가 결합한 현행 제도에서 기인한다. 상대방을 악마화해 진영을 결집시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구조이기에 ‘5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야 모두 정쟁에만 몰두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많은 이들이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재신임의 기회가 없는 현행 단임제 구조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다. 재선을 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성과를 의식해 일방적 통치를 강행할 가능성이 있고, 또한 일관성이 필요한 중장기적 정책 시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4년 중임제 도입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한 번 더 평가받을 기회가 부여된다면 더욱 책임있는 정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헌 문제는 블랙홀과도 같아서 정치권이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실현가능한 개헌’, 특히 여야와 대통령, 국민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헌’을 하자고 언급해왔다. ‘국민 투표’가 가능한 총선이 3개월도 남지 않았다. 가능하다고 보는가.
“1987년 개헌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보인다.
아쉽게도 이번 국회에서의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여 국민들에게 송구하지만, 총선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 ‘개헌절차법’ 제정으로 개헌의 기틀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이나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한 이후 처리 절차만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개정기초안을 작성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개헌의 정당성과 국민적 수용성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개혁이다. 다만 개헌 추진이 불필요한 사회갈등을 유발해서는 안된다. 시대 변화와 미래를 담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되 대통령도, 여야도, 국민도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개헌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절박한 문제인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동안 단임 대통령제 하에서의 분절된 정책추진과 그로 인한 제도 간 혼선이 있었다.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고 과감한 저출생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공동규범인 헌법에 목표와 의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문제는 정치 개혁의 단골 내용이지만, 개헌이 필요해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의장께서 제안하신 ‘최소한의 개헌’에도 이 사안이 포함돼 있다. 실현 가능한 복안이 있나.
“불체포특권은 원래 과거 독재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의원들의 자유로운 입법활동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현재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됐고, 정치적 자유를 위협받는 상황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국민들은 불체포특권을 과도한 특혜로 본다. 작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불체포특권 폐지에 찬성했다. 국민 절반 이상의 공감이 확인된 만큼 불체포특권, 면책 특권에 대한 수정이나 폐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불체포특권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이다. 그래서 제한적으로 임시국회를 열지 않는 등 현행법 내에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으나, 확실히 폐지하려면 결국 개헌이 필요하다. 불체포특권 폐지에 대해 정치권 모두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차후 개헌논의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의장께서는 한국 정치 체질 개선의 시작을 ‘선거법 개혁’으로 꼽은 바 있다. 이번 선거제 논의도 선거에 임박해서 확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의장의 입장은.
” 선거법 개정은 이미 지금도 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여야 모두 서둘러야 한다. 작년 12월 12일에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등, 22대 총선을 위한 선거사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도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지 않아 많은 후보들이 선거지역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선거운동을 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돼 국민께 송구하다. 반복되는 선거구 획정제도의 파행은 국민의 참정권과 선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선거제가 신속히 확정될 수 있도록 그동안 의장으로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작년 4월에는 선거제를 논의하기 위해 20년만에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했고,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 공론조사도 실시했다. 선거제도 전문가들과 정치부 기자 대상으로 웹조사도 실시하여 각계각층의 의사도 확인했다. 의장으로서 말을 물가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한 셈이다. 물을 마실지 말지는 말의 선택에 달렸다. 여야가 국민에게 박수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이 법정 시한을 넘기는 상황이 되풀이 되는 건 별다른 제재나 강제 조항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선거구 획정에 대한 규범력을 강화해 매번 반복되는 문제를 근절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기한을 현행 선거일 전 1년에서 6개월로 현실화하고, 선거제도는 그보다 먼저 정하도록 못박아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미 시행중인 선거제로 선거를 치르도록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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