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사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당한지 24년 만에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 전 대표는 현재의 민주당이 김대중 노무현 정신이 사라진 낯선 집이 됐다며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된 현실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잃어버린 정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떠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11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오늘 저는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을 두고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다”고 규정하면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고 성토했다. 그는 “당내 비판자와 저의 지지자들은 2년 동안 전국에서 ‘수박’으로 모멸 받고, ‘처단’의 대상으로 공격 받았다”며 “그런 잔인한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악화됐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책임도 인정했다. 그는 2021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당헌까지 고치고 후보자를 낸 것을 두고 “제가 민주당 대표로 일하면서 저지른 크나큰 실수였다”고 시인했고,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지도부의 위성정당 허용 결정에 동의한 것도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이 전 대표는 현재의 정치 현실을 두고 윤석열 정부가 1987년 이후 최악의 정부로 기록될 것이며, ‘검찰공화국’을 완성했다고 진단한 반면 민주당은 스스로의 사법 리스크로 ‘검찰폭주’를 제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둘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국가를 무너뜨린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는 “무능하고 부패한 거대양당이 진영의 사활을 걸고 극한투쟁을 계속하는 현재의 양당독점 정치구조를 깨”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이 전 대표는 △혐오와 증오의 양당제 종식, 타협과 조정의 다당제 시작 △개헌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특권 없는 정치’와 ‘성역 없는 법치’ △R&D 지원과 규제 혁파 △복지의 경우 생활 필수적인 기초 서비스부터 단계적으로 ‘중부담-중복지’로 발전 등의 신당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한 고 김대중 대통령 발언을 들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가 대한민국을 더는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 지지층을 비롯해 당내에서는 전날부터 배신의 정치, 정계은퇴하라 등의 비난이 쏟아진 데 대한 입장도 내놓았다. 이낙연 전 대표는 기자회견후 백브리핑에서 ‘민주당에서 총리까지 지냈으면서 탈당후 신당창당한다는 건 배신의 정치’, ‘신당 창당의 명분이 없다’고 비판하는 당원이나 의원들의 논리와 정서를 어떻게 보느냐는 미디어오늘 기자 질의에 “충분히 이해하고 그 점은 마음이 아프다”라며 “지금 민주당에 남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다니면서 선거에서 응원이나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새로운 정치 갈망하는 국민들에게 길동무라도 되어드리는 것이 가치있는지 중에 후자가 가치 있다고 봤다”고 답했다.
도종환 의원 등 많은 국회의원들이 만류하지 않았느냐는 질의에 이 전 대표는 “120여 명의 동료 의원이 (만류 기자회견을) 한 것을 안다”며 “나였다면 좀더 우아하고 점잖게 말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것은 단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화하지 않아서”라며 “기자회견을 목전에 둔 시점에 그런 말씀을 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평소에 당의 변화를 위해 그런 말을 했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민주당과 뭐가 다른지 의문도 나왔다. ‘새로운 정당은 민주당에서 구현할 수 없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냐’는 질의에 이 전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보다 반발짝만 앞서가라고 주문했다. 중도개혁을 추구했다. 민주당이 놓치고 있는 게 그런 노선”이라며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추진해왔는데, 지금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가.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그 길을 민주당이 잃어버리고 있다”며 “거대 양당이 사활을 걸고, 극한 투쟁만 하는 상황에서 둘다 국민을 위해 합의하고 성찰해내는 새로운 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양당이 서로 사활을 걸고 투쟁하면서 정작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에 소홀하다”며 “국민의 손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무익(無益)의 정치가 계속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정치를 한다고 했지만 지금 설명대로면 기존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차별화되지 않아 보인다는 반론은 어떻게 보느냐는 질의에 이 전 대표는 “기성 정당도 표방하는 것은 비슷하다”면서도 “실제로 (정당들이) 해온 것이 무엇인지 봐 달라. 새롭지 않은 구호라고만 하지 말고. 특권으로 뒤범벅된 현실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답했다.
타 세력과 연대와 관련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연대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에 이낙연 전 대표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 누구라도 협력해야 한다”며 “다른 경로를 다른 과정을 거친 분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제3당이 모였다가 쉽게 찢어질 가능성을 두고 “원래 대중정당은 일정정도 스펙트럼이 있게 마련”이라며 “크게 볼 것은 아니다. 공통점을 찾고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평등과 자유, 대북정책 등 이슈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두고 “지혜가 필요하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보수적인 분을 통일부장관 안기부장관(국정원장) 시켰지만 국정을 잘 운영했다. 제3지대에서 만날 사람들과 차이는 그 분들과 차이보다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영찬 의원의 민주당 잔류를 두고 이 전 대표는 “윤 의원의 고민이 현모씨(현근택 성희롱) 사건이 나오기 전부터 있었고, 공천 때문이라는 것은 지나친 규정”이라고 해명했다. 이재명 대표 쾌유를 기원한 것과 관련 추후 이재명 대표와 만나 탈당 경위 설명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 이 전 대표는 “그렇게 할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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